기획투데이

“봉사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죠.” [최병하 봉사자]

“봉사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죠.” [최병하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9.08.06

한 사람이 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는 최병하 봉사자는 현재 법사랑에서는 비행청소년 선도 상담, 시민경찰에서는 순찰과 청소년 경찰학교를 맡고 있다. 한편으로는 안양교도소 수용자들에게 물품을 지원하고, 수용자들을 교화하는 교육에 나서기도 한다. 주민자치위원회에 소속되어 지역 주민을 위한 봉사도 이어나가며 그는 봉사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병하 봉사자
최병하 봉사자
그 시절 내가 필요로 했던 누군가처럼
성장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최병하 봉사자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며 항상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멘토 역할을 해줬다면, 어렸을 때 나에게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았어요. 성장하고 나서 봉사에 나선 것은 그 마음 때문이었죠.”
학원을 30년 이상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을 접할 수 있는 환경 역시도 그가 봉사를 시작한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불우한 아이들이 무료로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아이들의 상담에 나섰다. 그는 한편으로는 봉사에 필요한 공부를 해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막연하게 제 경험만으로는 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리상담 1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이 아이들 상담을 하다 보니 가정의 문제점이 보여서 사회복지를 시작했어요. 야간으로 2년 과정을 마치면서 복지사 자격증도 얻었고요.”
그밖에도 학교폭력예방지도사, 교화상담사, 범죄예방지도사, 요양보호사 등 봉사하며 관심이 생긴 분야를 파고들었다. 봉사에 자격은 없다지만 스스로 더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한 일이었다.
“봉사하면서 제가 얻은 것이 더 많아요. 남들은 봉사를 어떻게 그렇게 많이 할 수 있었냐고 묻지만, 저는 봉사를 통해 제가 오히려 많이 배운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선한 멘토가 되어
이렇게 봉사를 해오는 동안, 그는 어렸을 때 자신이 필요로 했던 누군가의 역할을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가정이 불우하지는 않아도 스스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언니는 모범생이었어요. 그래서 그 아이는 부모님이 언니를 편애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밖으로 나돌게 되고, 심지어 다른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금품을 갈취하기도 했어요. 결국 기소유예도 아니고, 보호관찰 2년을 선고받았죠.”
그 아이와는 상담을 하는 동안 갈등이 심했다. 아이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큰 만큼 성인 남성인 그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아버지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는 바로 설 수 없다며 설득도 해봤다. 결국 아이와 아버지는 서로 마음을 열었고, 아이는 지금 자신의 꿈을 이뤄가며 잘 살아가고 있다.
또 다른 아이도 마찬가지다. 6개월간 복역 후 보호관찰 4년을 선고받은 아이는 그가 상담을 하기 위해 마주 앉았을 때부터 세 달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최병하 봉사자는 한 시간, 두 시간동안 그 아이에게 대답을 듣지 못해도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
“상담을 할 때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면서 공감해줘야 하는데, 사실상 상담이 아예 안 되는 상황이었죠. 매일 찾아가서 이야기를 건네니 4개월 차에 그 아이가 한 마디 하더라고요. ‘선생님 같은 분을 처음에 만났으면 제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쉬워요.’라고요.”
알고 보니 아이는 이전 상담선생님에게 큰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조용하게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임이 있을 때 불러서 질타만을 했던 상담선생님이었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대화는 상담이라기보다는 화풀이에 가까웠다. 아이는 최병하 봉사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역시 이전 상담선생님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4개월째 변함없는 모습에 이 사연을 털어놓으며 그를 믿기 시작했다.
“지금은 30대 중반이 되었겠네요. 그 이후에도 종종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여자 친구도 소개시켜줬었어요. 이사를 가면서 연락이 끊겼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보람 있었네요.”
아이들도 봉사의 기쁨 느낄 수 있길
그가 보람을 느끼는 봉사는 이 외에도 다양하다. 부모가 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면, 그 아이들을 위해 학비지원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또한 수감자들을 돌보는 봉사도 하고 있다. 수형생활이 1개월이 남지 않았을 때에는 보육원이나 양로원에서 봉사하며 사회에 적응하려는 준비를 하는데, 그때 그도 함께 가서 대화도 하고, 용기도 북돋아준다.
그는 시민경찰 역할도 하고 있다. 주변에 있는 범죄예방시설들을 점검하며 시설이 잘 관리되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잘못된 점이나 개선점이 필요하다면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매일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길을 위해 교통봉사도 진행한다. 주민자치회에서는 지역 주민을 위해 복지관에서 배식봉사도 하고, 주민자치위원회 옥상에 정원을 꾸미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봉사를 하면서 그는 자라나는 아이들 역시 자신처럼 봉사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지금 5~60대에서는 봉사를 많이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젊은 세대에서는 봉사하는 인원이 줄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성장과정에서 차이가 있어서인지 나눔이라는 기쁨을 못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는 방학 때면 청소년학교를 열어 아이들에게 봉사를 권유하기도 한다. 목표를 정해 장기적이고,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으면, 그것에 대한 공부도 하고, 일자리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봉사를 통해 진정한 자아실현을 한 그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이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