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나를 살리는 봉사 [황기자 봉사자]

나를 살리는 봉사 [황기자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9.07.10

황기자 봉사자는 뇌출혈로 쓰러진 뒤에 극적으로 회복했다. 남편은 ‘봉사하라고 살려둔 것 같다’며 그의 봉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리고 이제 건강을 되찾은 그는 봉사하려고 살아난 사람처럼 바쁘게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황기자 봉사자
황기자 봉사자
어르신들을 부모처럼 돌보는 봉사자
황기자 봉사자는 2002년부터 꾸준히 봉사를 이어왔다. 그 계기는 아주 단순했지만, 한번 봉사를 시작하니 도중에 멈추기가 어려웠다.
“그때 운동으로 수영을 다녔어요. 그래서 수영장 친구들끼리 모여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러 다녔죠. 그런데 그렇게 놀기만 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서 ‘우리 이러지 말고 좋은 일 한번 해보자’싶어서 봉사활동을 알아봤어요. 그때는 자원봉사센터가 없어서 안양시청 내에 있는 자원봉사 부서에서 봉사를 추천받았어요. 그러다가 의왕으로 이사를 오면서 의왕에서 봉사하고 있죠.”
게다가 그가 소속되어 있는 봉사단은 한 둘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해오고 있는 봉사도 적지 않다. 생활개선회, 스피치, 행복드림, 아름채봉사단, 농협봉사단 등 그의 일주일은 봉사로 빽빽하다.
“아름채 봉사단에서는 배식봉사를 하고요. 농협봉사단에서는 노인정에 주로 가요. 어르신들에게 발마사지 해드리면서 말벗도 해드리고 있어요. 혹시 지역 내에서 어린이날 축제나 백운예술제 등 축제가 열리면 자원봉사센터에서 열어두는 부스에서 봉사활동도 하죠. 사진을 찍어주는 포토부스일 때도 있고, 아이들에게 체험용 옷을 입혀주는 경우도 있고요.”
봉사하기 위해 살아난 삶
이렇게도 꾸준히 봉사해오던 그가 잠시 봉사를 쉬었을 때가 있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위해서 봉사를 못했을 때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다. 이렇게 몇 년을 쉰 뒤, 몸이 회복하자마자 생각한 것은 봉사였다.
“봉사하면서 참 좋은 일이 많았어요. 남편은 제가 뇌출혈로 아팠다가 다시 살아난 것도 ‘앞으로 봉사하라고 살려놓은 것’이라고 해요. 그뿐인가요. 제가 10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 시어머니 대소변을 받아가며 시간을 쪼개서 봉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봉사가 힘들 법하기도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신 늘 즐거웠다.
“태안에 기름 유출되었을 때, 기름 닦으러 4번을 갔었어요.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구나, 내가 열심히 닦아서 여기가 깨끗해지고 있다는 즐거움이 컸어요. 힘은 들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은 즐거워요.”
이렇게 봉사하는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타고났다’고 말한다. 봉사하면서 한 번도 힘든 내색은커녕 어려워도 저절로 힘이 난다는 모습을 보며 주변 이들 역시 봉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봉사
그가 봉사를 놓을 수 없는 데에는 그를 기다리는 수많은 어르신의 역할도 컸다. 그가 중요한 일이 있어 뒤늦게 봉사하러 가면, 어르신들은 ‘안 오나 했어, 안 왔으면 심심할 뻔 했어’라면서 그부터 찾는다.
“저희가 봉사하러 가면 어르신들은 늘 무언가를 주시려고 해요. 부침개도 해주시고, 고구마도 쪄주시고요. 엄마들이 참 정이 많아요. 갈 때마다 반겨주시고, 끝나고 나올 때는 아쉬워해주시고요.”
그가 자주 찾는 아름채복지관에서도 하루 800명가량의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신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찾다보니 어르신들은 두 번만 와도 ‘왜 그동안 안 왔냐’면서 성화다. ‘고마워’하시며 표현하실 때도 많다.
그는 오랫동안 봉사를 해오다보니 배식봉사에서도 밥을 맡는다. 처음 오는 이들은 잘 모르지만 그는 각각의 어르신들이 얼마나 드시는지를 잘 알고 있다. 어르신들은 ‘내가 이만큼 먹는 걸 어떻게 알았어’라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게다가 봉사가 모두 끝난 뒤, 먹는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봉사는 정말 나 자신을 위해서예요. 봉사하다보면 정말 행복해져요. 저도 어머님을 모시다보면 짜증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봉사를 하다보면 ‘내가 모르는 어르신도 그렇게 모시는데, 우리 어머님께 이러면 안 되지.’라면서 마음을 잡게 되죠.”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