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예술답게, 예술을 우리 마을답게” [우리마을미술관 이영식 아트디렉터]
“삶을 예술답게, 예술을 우리 마을답게” [우리마을미술관 이영식 아트디렉터]
by 안양교차로 2018.10.30
우리의 삶은 예술을 필요로 한다. 예술은 삶의 쉼표이자 느낌표를 찍는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가치관을 바꾸며 열망하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고, 책을 읽어야만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를 걷다가, 수업을 듣다가도 예술을 느낄 수 있도록 예술이 더 다가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운 좋게도, 군포에는 군포시민들의 바로 가까이에 예술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는 우리마을미술관이 있다.
우리마을미술관 이영식 아트디렉터
우리마을 아트디렉터로 자리 잡다
박물관에서, 또는 축제나 연극을 연출, 기획하던 이영식 아트디렉터에게 직업인 특강에 대한 요청이 왔다. 진로직업지원센터에서 특강을 해달라는 제안에 그는 흔쾌히 아트디렉터라는 직업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에 이어 군포, 의왕시에서 열리는 직업체험박람회에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소소하게 지역사회에서 예술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던 그에게 또 하나의 기회가 열렸다. 초등학생인 그의 아이가 한 가정통신문을 가져왔다.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학부모 연수였다. 들어가 보니 대야미 마을협동조합에서 하는 ‘꿈의학교’에 관한 내용이었고, 마침 그가 아는 고향선배가 꿈의학교 선생님으로 있는 모습에 반가운 나머지 연락을 했다.
“저도 꿈의학교 도시농부 프로그램으로 주말농장을 7년차 하고 있어요. 마침 이렇게 지역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반가웠죠.”
그 선배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꿈의학교를 제안했고,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꿈의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벌써 그것이 3년 전의 일이다.
박물관에서, 또는 축제나 연극을 연출, 기획하던 이영식 아트디렉터에게 직업인 특강에 대한 요청이 왔다. 진로직업지원센터에서 특강을 해달라는 제안에 그는 흔쾌히 아트디렉터라는 직업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에 이어 군포, 의왕시에서 열리는 직업체험박람회에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소소하게 지역사회에서 예술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던 그에게 또 하나의 기회가 열렸다. 초등학생인 그의 아이가 한 가정통신문을 가져왔다.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학부모 연수였다. 들어가 보니 대야미 마을협동조합에서 하는 ‘꿈의학교’에 관한 내용이었고, 마침 그가 아는 고향선배가 꿈의학교 선생님으로 있는 모습에 반가운 나머지 연락을 했다.
“저도 꿈의학교 도시농부 프로그램으로 주말농장을 7년차 하고 있어요. 마침 이렇게 지역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반가웠죠.”
그 선배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꿈의학교를 제안했고,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꿈의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벌써 그것이 3년 전의 일이다.
우리마을미술관이 생겨나다
2016년 곡란중학교에 야외갤러리를 만들 때의 일이다. 커뮤니티 아트로 갤러리를 꾸밀 생각 끝에 그가 예술총감독으로 초빙이 되었다. 29개의 액자가 곡란중학교 담벼락에 걸렸고, 그 길은 거리 미술관이 되었다. 이전까지 알 수 없는 그림으로 우중중한 분위기를 풍겼던 벽은 아이들이 오가며 예술작품이 걸린 거대한 캔버스가 되었다. 그 때의 TF팀이 해체되지 않고 유지가 되었고, 주민자치위원회, 주민센터, 지역 공방 세 곳이 모여 협의체를 만들었다.
그 뒤로 따복공동체 공간조성사업으로 10평정도 되는 그의 작업실을 신청해 이 공간을 거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마을미술관이라는 간판이 달렸다. 현재 이곳은 지역 아이들을 위한 예술공간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연극을 하는 이들은 그곳을 소극장으로 쓰고 있고, 공예를 하는 이들은 전시작품이 전시될 미술관으로 쓰고 있다. 게다가 간단하게 탕비실이 마련되어 마을 사람 누군가가 와서 쉽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시사회도 하고, 연극놀이 수업도 이곳에서 하고 있어요. 지금은 협의체가 임의단체로 변신도 했고요. 이곳이 우리마을의 예술이 자라나고, 우리마을의 예술이 공유되는 공간이죠.”
3개의 공방이 이렇게 우리마을미술관을 통해 자주 지역 내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것이 계기가 되어 11개의 공방, 40여명의 예술가가 모인 군포도자문화협회가 만들어졌다. 올해 5월에 군포 공예문화협회가 창립총회를 열었고, 구체적으로 군포도자거리를 만드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2016년 곡란중학교에 야외갤러리를 만들 때의 일이다. 커뮤니티 아트로 갤러리를 꾸밀 생각 끝에 그가 예술총감독으로 초빙이 되었다. 29개의 액자가 곡란중학교 담벼락에 걸렸고, 그 길은 거리 미술관이 되었다. 이전까지 알 수 없는 그림으로 우중중한 분위기를 풍겼던 벽은 아이들이 오가며 예술작품이 걸린 거대한 캔버스가 되었다. 그 때의 TF팀이 해체되지 않고 유지가 되었고, 주민자치위원회, 주민센터, 지역 공방 세 곳이 모여 협의체를 만들었다.
그 뒤로 따복공동체 공간조성사업으로 10평정도 되는 그의 작업실을 신청해 이 공간을 거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마을미술관이라는 간판이 달렸다. 현재 이곳은 지역 아이들을 위한 예술공간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연극을 하는 이들은 그곳을 소극장으로 쓰고 있고, 공예를 하는 이들은 전시작품이 전시될 미술관으로 쓰고 있다. 게다가 간단하게 탕비실이 마련되어 마을 사람 누군가가 와서 쉽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시사회도 하고, 연극놀이 수업도 이곳에서 하고 있어요. 지금은 협의체가 임의단체로 변신도 했고요. 이곳이 우리마을의 예술이 자라나고, 우리마을의 예술이 공유되는 공간이죠.”
3개의 공방이 이렇게 우리마을미술관을 통해 자주 지역 내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것이 계기가 되어 11개의 공방, 40여명의 예술가가 모인 군포도자문화협회가 만들어졌다. 올해 5월에 군포 공예문화협회가 창립총회를 열었고, 구체적으로 군포도자거리를 만드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교육과 예술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길
책 읽는 도시 군포에는 ‘사람책’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말 그대로 책을 읽듯이 다른 이들의 경험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지, 또 왜 이 사람이 이런 삶을 사는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제도에요. 저는 초등학생 3명을 둔 아빠이자, 작가로서, 자기의 꿈을 지역사회에서 펼쳐가고 있어요. 사실 예술가로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렇게 외부에서 학생들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역에 있는 작가들의 존재가치를 알려주려고 해요.”
그는 교육과 예술은 경제와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그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이들과 여유롭지 않은 이들의 교육과 문화예술의 향유는 큰 격차를 보인다. 지역의 예술가들이나 교육자들이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예술을 나눌 수 있다면, 그런 동네가 마을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면 이러한 격차는 사라질 것이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풀뿌리 문화예술이 살아있는 공동체를 선물해주고 싶어요. 아이들은 예술가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도 있다고 믿고, 만약에 자신이 예술가로서의 꿈을 꾸어도 그 꿈을 충분히 이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런 마을이죠.”
그가 꿈꾸던 마을은 이제 군포에서, 그의 작업실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마을미술관이 있기에 군포에서 예술가는 결코 외롭지도, 예술은 결코 삶과 동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취재 강나은 기자
책 읽는 도시 군포에는 ‘사람책’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말 그대로 책을 읽듯이 다른 이들의 경험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지, 또 왜 이 사람이 이런 삶을 사는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제도에요. 저는 초등학생 3명을 둔 아빠이자, 작가로서, 자기의 꿈을 지역사회에서 펼쳐가고 있어요. 사실 예술가로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렇게 외부에서 학생들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역에 있는 작가들의 존재가치를 알려주려고 해요.”
그는 교육과 예술은 경제와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그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이들과 여유롭지 않은 이들의 교육과 문화예술의 향유는 큰 격차를 보인다. 지역의 예술가들이나 교육자들이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예술을 나눌 수 있다면, 그런 동네가 마을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면 이러한 격차는 사라질 것이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풀뿌리 문화예술이 살아있는 공동체를 선물해주고 싶어요. 아이들은 예술가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도 있다고 믿고, 만약에 자신이 예술가로서의 꿈을 꾸어도 그 꿈을 충분히 이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런 마을이죠.”
그가 꿈꾸던 마을은 이제 군포에서, 그의 작업실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마을미술관이 있기에 군포에서 예술가는 결코 외롭지도, 예술은 결코 삶과 동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