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 칭찬릴레이

소외받는 난독증 아이들에게 미래를 찾아주다 [다솜치료교육센터 김은희 원장]

소외받는 난독증 아이들에게 미래를 찾아주다 [다솜치료교육센터 김은희 원장]

by 안양교차로 2018.09.05

스티븐 스필버그는 2012년 이렇게 말했다. “교실 앞에서 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특히 중학교 시절에는 심한 왕따를 당했다. 5년 전 난독증 진단을 받은 후에야 학창시절 괴로웠던 의문이 풀렸고 수치심,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난독증은 도와주면 극복이 가능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 처칠, 아인슈타인, 에디슨, 톰크루즈, 피카소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학창시절 비슷한 좌절을 겪었다. ‘천재’로 불리던 이들이었지만 한 때는 난독증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언어치료 문제에 뛰어들다
김은희 원장이 언어치료 문제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한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미국에는 발달장애아들에게 치료를 하는 언어치료사 등의 직업군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직업군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머릿속으로 번쩍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불문과를 졸업하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생활만 했었는데, 언어로서의 소질도 살릴 수 있었고, 가르치는 것도 좋아했었으니까요. 또 대학 때 소외계층을 돌보곤 했던 만큼 소외계층에 대한 애착도 강했죠. 그래서 소외받는 장애아들을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동안은 한국에 마땅한 언어치료 교육과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발달장애아치료전문가 과정이 개설이 된 것을 보게 되었다. 입학을 하게 되기까지 남편의 반대가 심했다. 일주일에 두 번, 하루 종일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끊임없이 설득한 결과 평생교육원에 다닐 수 있었다.
발달장애 전문가과정이 처음 개설이 되어 학교 측에서도 최고의 교수를 배정해 주셨고 언어뿐 아니라 심리, 뇌 생리 등 많은 것을 접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재야 언어치료사를 통해 언어치료의 기법을 배울 수 있었고 뒤이어 방학 때마다 대구대에서 언어치료사 자격증 과정이 개설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언어치료사 자격증 과정을 공부를 한 결과 4년 만에 정식으로 언어치료사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언어치료사가 된 후에도 문제아동 상담, 부모 상담을 하면서 더욱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행정학, 심리학 학위, 의학석사 등을 취득했다. 관련 자격증으로는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심리상담사,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역량을 키워낸 후에는 사회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됐고, 지역사회의 교육과 관련된 여러 위원회에 소속되어 문제를 가진 아이들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안양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교육청소년위원회 위원장, 청소년쉼터 훠유 운영위원, 안양여성자원봉사회 운영위원, 지역아동센터 운영위원, 안양시 여자쉼터 운영위원, 안양시 청소년 육성재단 이사, 경기도교육청 특수교육정책협의회 인수위원회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역사회와 연대를 맺게 되었다.
난독증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관심을 갖다
김은희 원장이 생소한 분야인 난독증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었다. 한 중학교 1학년아이는 무단결석이나 흡연 등으로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 학생은 저학년 때만해도 곧잘 공부도 하고, 학교생활도 원만했는데 5학년부터 ‘책을 보면 머리가 아프다’며 공부하라는 부모에게 대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는 “아이가 학교는 재미가 없어 가지 않으려고 한다. 양육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학원 또는 과외를 통해 학습보충도 시켜줬는데도 불구하고 비뚤어지고 있어 원인을 몰라 답답하다. 학교적응을 못하니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 입장도 비슷했다. “공부가 재미없는데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책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학습동기가 없고, 자기주도학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학교에서의 교우관계 등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고, ADHD 성향으로 인해 산만하고 충동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동안 해왔던 기존의 분석을 적용하여 상담을 하고 심리 및 학습치료를 받게 했다. 하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아이는 한 달도 되지 않아 가출까지 감행했다.
“그때부터 제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깨달으면서 ‘이 아이의 핵심적인 문제가 뭘까? 왜 책을 보는 것이 답답할까?’를 알아보다 난독증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어쩌면 그 학생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치열하게 난독증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죠.”
취약계층의 아이들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다
그녀는 현재 지자체, 학교에서 난독증 시범사업을 통해 난독증 선별검사와 심화진단을 하고 학습부진의 원인을 파악하여 신경생리학적인 도움을 통한 개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게다가 난독증 전문교육기관인 평생교육원을 창립하여 난독증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고, 교사직무연수를 통해 난독증에 대한 인식전환에 뛰어들고 있다. 또한 난독증 분야에 있어 체계적인 표준 매뉴얼을 만들고 난독증 치료 도구를 개발하기 위하여 전문가들을 취합해 난독증 협회를 구성하였으며, 전국 최초로 대학에 난독증 치료학과 개설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역할은 단순히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취약계층의 난독증 아이들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것이다. 학습에 관련된 세미나에서 당시 자양고의 김계숙 교사의 발표를 들었다. 아이들이 다른 것은 멀쩡한데도 공부만 유독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교사들끼리 모여 독서모임을 갖다가 우연히 난독증을 알게 되었고, 취약계층이 많이 몰려있는 고등학교와 부유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고등학교를 비교해 본 결과 대부분의 난독증 아이들이 취약계층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대학시절부터 소외계층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으로서 난독증과 사회적 부적응과의 연결고리에 대해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취약계층의 난독증 학생들을 돕는 정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법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에 경기도교육청에서 장학사를 비롯해 도의회교육전문위원, 교장 등이 참석하는 정책자문위원회에서 난독증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참석하신 분들이 “난독증의 중요성과 선별검사, 심화검사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했다. 그런데 만약 난독증에 대한 예산을 편성하더라고 누가 검사하고 어떤 내용을 가르치게 되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질문에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난독증 전문가라는 직업군이 배출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국직업능률개발원에 ‘학습(난독증) 전문지도사’ 자격전문과정을 등록했다.
또한 주로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에 분포되어 있는 난독증 아이들을 도우려면 정책적 도움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경기도의회에 지역의 도의원을 설득해 ‘난독증 아동 청소년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고 3년간 센터의 학부모들과 함께 노력한 끝에 드디어 2014년 3월에 최초로 입법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안양시에 ‘난독증 아동청소년 지원 조례’를 입법하게 했으며 이후 경기도 각 지자체 및 충남, 전북, 부산, 광주 등 전국으로 난독증 지원 조례가 확산되었고, 실질적으로 난독증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그녀는 난독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후진을 양성하며 난독증이 더욱 알려져 이러한 좌절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돕고 있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