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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기억을 지켜나가다 [고동윤 마을활동가]

마을의 기억을 지켜나가다 [고동윤 마을활동가]

by 안양교차로 2018.08.22

마을마다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그 마을에 살았던 이들에게만 기억되는 사소한 기억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다. 물론 마을에 대한 기억은 단순히 개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마을의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쩌면 작지만 가장 가까이 와 닿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마을활동가들은 마을의 기억을 찾아나가는 보물찾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마을에 남아있는 역사를 찾다
고동윤 마을활동가가 마을모임인 부곡향토문화연구회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다. 그간 IT계열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온 그녀는 20~30대에는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는 한 때를 보냈다. 그런데 40대 초반이 되고, 아이들이 자라고, 금전적으로도 넉넉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다고 생각할 무렵, 마음의 여유를 찾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마을에 많이 있더라고요. 자연스레 마을연구하는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유난히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마을인 부곡동, 게다가 이 마을에는 특별한 역사가 담겨있었다.
“우리 동네 삼동은 과거에 철도관사에서 시작된 마을이에요. 그런데 마을에 대해서 공부하기 전까지는 우리 마을에 철도관사가 있는지도 몰랐죠. 마치 아이가 호기심을 갖듯,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재미있게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자료조사를 해보니 그녀가 살고 있는 집 바로 뒷집이 철도관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엌에서 항상 보이는 곳이었는데, 철도관사인지는 몰랐어요. 철도관사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 보니 옛날 나무 자재와 벽돌이 그대로더라고요. 내부를 리모델링해서 그렇게 역사가 깊다고는 생각을 못했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공공기관이나 역, 철도박물관에서도 관사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제가 20년 동안 이 마을에 살면서도 그걸 몰랐다는 생각에 우리 마을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 향토회원 분들과 학교에서 우리고장바로알기 수업도 하고, 사진전을 열기도 했어요.”
현재 남아 있는 철도관사 대부분은 재개발 예정지에 포함되어있다. 그만큼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기에 이들은 기록을 남기는 활동을 이어갔다. 다행히 시에서도 철도관사에 대해 인식하고는 보존과 기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공공주택 도시개발 이야기가 오고가는 도룡마을도 마찬가지다. 마을사람들이 산책하며 잠시나마 쉬어가던 정겨운 마을 또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록하는 일이에요. 제가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자주 오던 공간인 만큼 이 마을이 그대로 사라지면 저한테도 상처로 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을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위로를 받는 것이죠.”
마을의 기록을 전달하다
사진전 기획 시 처음에는 건축물만을 다뤘다. 하지만 건축물만 하다 보니 말할 내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철도관사의 이야기를 들으러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철도관사 초기에 들어가셔서 아직도 살고 계신 철도직 종사자분들도 계세요. 물론 대부분은 연세가 많으셔서 돌아가셨지만 80세 넘으신 어르신들은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흔쾌히 들려주세요. 그러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마을의 기억을 전달하는 전달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죠.”
이 이야기들은 사진전은 물론, 책자로도 인쇄 되고, 아이들을 위한 수업자료로도 쓰였다.
사진전에서는 주로 70~80년대 사진자료가 전시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진전을 보며 ‘추억할 수 있어 좋았다’,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는 말을 전했다.
나이가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도 마을 역사는 새로운 감수성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고장바로알기 수업 당시 그녀가 수업했던 모든 반을 통틀어 우리마을에 철도관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철도관사였던 곳, 철도관사가 있었던 곳을 보면 과거와는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과거에 철도관사였던 고물상은 아이들의 눈에도 이제는 단순히 고물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을의 역사를 알게 된 마을사람들은 마을에 애틋함을 품게 되었다.
마을 단위의 장학회에서 만든 마을연구소
마을 단위의 장학회였던 부국장학회에서는 꾸준히 부곡향토문화연구회에 장학금을 주었고, 그 장학금은 마을 연구를 하거나 마을 연구 결과를 마을사람과 나누는 곳에 쓰였다. 총 회원은 60여 명이지만 주요활동가는 20~30명가량이 되고, 팀별로 각기 다른 주제를 연구한다.
길 탐사 팀에서는 50~60년대 아이들이 소풍갔던 길을 지금의 아이들과 함께 걷는다. 같은 장소에서 찍은 그때의 소풍사진과 지금의 소풍사진을 비교해보기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다. 또 전래놀이 팀에서는 한 달에 한번, 체육공원에서 마을분들에게 전래놀이를 가르쳐주고 함께 놀이하는 시간을 보낸다.
왕송호수 모니터링 팀은 청소년들과 함께 왕송호수의 수질에 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계획하고 있고, 마을기억전달가 팀은 마을에 오래 사시던 분들이나 마을의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문화유적 팀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청동기 유적, 백제시대 저장공 등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 유적을 찾아 지키는 일을 맡는다.
밤마실 팀은 밤 8~9시에 삼동부터 도룡마을까지 15분간 걸어보며 마을사람들의 친목을 도모하기도 하고, 기차놀이 팀에서는 기차 두 칸으로 다른 철도마을을 견학하는 기차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부곡향토문화연구회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현재하던 연구를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너무도 빠르게 바뀌고,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 남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을모임에서는 마을만의 이야기를 찾아 이웃들과 도란도란 마을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