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 칭찬릴레이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전하는 작은 반찬가게 [최수미 봉사자]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전하는 작은 반찬가게 [최수미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8.06.12

군포에 위치한 작은 반찬가게에서는 판매수익금의 일부를 미혼모와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을 위해 기부한다. 가게에 오는 이들도 마찬가지. 이 가게에서 적극적으로 기부에 힘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십시일반 자신들도 손님이 아닌, 또 한 명의 기부자로서 기부할 물품이나 성금을 보태기도 한다. 한 사람의 작은 기부가 동네 전체의 마음을 모으게 된 셈이다.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 큰 기부
최수미 씨는 어른 반찬과 아이 이유식을 판매하는 반찬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기부를 시작해 현재 결혼이민자와 이주노동자를 돕는 ‘아시아의 창’에 이유식을 지원하기도 하고, 미혼모가정에도 성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또한 세월호 희생자 부모 치유시설에 대안학교 출신 아이들의 학부모들로서 물품과 성금으로 도움을 준다.
“저희 큰 아이가 세월호 아이들하고 같은 나이에요. 그러다보니 저도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 애틋하기도 하고요. 저희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부조리함 때문에 아이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짐을 같이 부담하는 차원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세월호도 시간이 지나면 묻힐 텐데, 단기적인 도움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 번씩 도움을 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렇게 작은 마음에서 시작한 기부는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저희만 나누는 게 아니라 이웃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부 내용을 블로그와 밴드에 올렸는데요. 생각보다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반찬가게에서 정기배달을 하는데, 그 배달하는 가방에 커피나 과일청, 생활필수품들이 들어있더라고요. 한 분은 하루에 2천 원씩 모았다며 ‘좋은 일에 써 달라’고 성금을 넣어두기도 하셨어요.”
뿐만 아니라 반찬가게에서는 경계성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직업 활동 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이 반찬가게에 오는 아이들의 경우, 반찬가게까지 오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함께 와주며 오는 길을 알려줄 정도지만, 최수미 대표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시작할 것
그녀는 반찬가게를 열고, 미래의 순간으로 기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어느 시점이 되면,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면 기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쉽지가 않아요.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죠. 기부는 언젠가 하겠다고 미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찬가게를 연 지 이제 2년. 반찬가게는 아직도 너무나 바쁘고, 수익이 높지 않다. 내 이웃이 먹는다는 생각에 전부 수제반찬으로 직접 만들고, 유정란, 콩나물, 두부 등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등 원가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가게가 안정되고, 가게의 수익이 난 뒤에 기부를 하겠다고 미뤘다면 지금처럼 고객들과의 끈끈한 정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기부를 서두른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활동만을 골라냈다. 세월호에 물품을 기부할 때도 직접 가게를 비우고 가는 대신, 대안학교 출신 아이들의 다른 학부모를 통해 물품을 보낸다.
“제가 직접 가는 대신 마음만 전해드리면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물품기부를 해주신 고객님들의 성함을 하나하나 적어서 보내요.”
고객의 성함과 고객의 기부 내용을 하나하나 적어 보내고, 간혹 고객의 엽서나 편지들까지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최수미 대표는 큰 보람을 느낀다. 한 고객은 그녀에게 명절마다 선물을 보낸다. ‘그동안 세월호 사고의 유가족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엄두가 안 났는데, 덕분에 고민을 덜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는 감사 편지와 함께였다. 최수미 대표는 그 편지 또한 자신이 간직하는 대신, 기부 박스에 넣어서 보냈다. 이를 받아 힘을 낼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주저앉힌 ‘돈’, 나를 세워준 ‘가치’
최수미 대표에게는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헤드헌팅 회사를 다니며 승승장구 해나가던 그녀는 IMF 이후 실의에 빠졌다.
“결혼해서 집을 샀는데, 대출금이 너무 부담이 컸어요. 마침 저는 임신 중이었고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 되는 상황을 마주하고 나니 끝없이 우울해지더라고요.”
스스로 한 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한 그녀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을 찾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시 세웠다. 기존의 성과지향적인 삶으로는 더 이상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해 가치지향적인 삶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그녀는 복지관에서 식당 봉사를 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나눔이 저를 살린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나누는 것이 받는 것보다도 더 어렵지만 더 기쁨이 커요. 주는 기쁨을 알면 계속 지속하게 되죠.”
그녀는 봉사를 시작하고 싶은 이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곤 한다.
“분명한 마음이 있고, 고민을 하다보면 정말 우연치 않은 기회에 봉사나 기부에 연결되더라고요. 다만 마음속에 그 고민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죠.”
그녀는 그 때 이후 ‘돈’이 아닌 ‘가치’를 향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결국 자신을 주저앉힌 것은 돈이었지만 자신을 세운 것은 ‘가치’였기 때문이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