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 칭찬릴레이

“딸 노릇하려면 더 열심히 봉사해야죠” [염규이 봉사자]

“딸 노릇하려면 더 열심히 봉사해야죠” [염규이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8.01.23

염규이 봉사자를 본 어르신은 ‘우리 딸’이라며 얼굴을 부비신다.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그녀를 ‘우리 딸’이라고 소개한 어르신은 사실 그녀의 제자 중 한 분이시다. 평생 한글을 듣고 말할 줄은 알았어도 읽고 써본 적 없던 어르신은 그녀를 딸이자 선생님으로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이렇게 엄마이자 제자인 어르신들이 한둘이 아니다.
염규이 봉사자
염규이 봉사자
노인대학 인기강사의 비결
레크레이션 강사였던 염규이 봉사자는 2003년 노인대학에 봉사를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번 어르신들 앞에서 레크레이션을 보여드린 뒤로, 노인대학의 계속된 요청으로 13년간 노인대학에서 건강체조, 율동, 웃음수업을 진행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녀가 할 수 있고,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분야라면 스포츠댄스, 꽃바구니 만들기, 한국무용 등 수많은 분야를 가르쳤다. 그러자 점점 그녀의 수업만 듣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인기강좌로 자리매김했다.
“처음 몇 분 정도 어르신이 모이시면 그 분들이 ‘우리 선생님들 잘 가르친다’면서 다음에는 다른 어르신들과 같이 오세요. 그렇게 되면서 점점 많은 어르신들을 가르쳐드리게 됐죠.”
그녀는 봉사로 시작했기에 특별히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봉사를 할 때도 자격증의 필요성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봉사를 위해 자격증 취득에 나섰다. 이 때 취득한 자격증만 해도 건강체조, 레크레이션, 실버레크레이션, 웃음치료, 민요 자격증으로 5종에 이른다.
그렇게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는 이제 나이가 제한에 걸렸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도 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젊은 강사들이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노인대학에서 인기강사로 손꼽힌다. 오랜 시간 어르신들과 소통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그녀의 강의에 그대로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박수와 사랑을 먹고 사는 봉사자
그녀는 노인대학 이외에도 의왕 한소리예술단 등 공연 봉사단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민요를 배우다가 기존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민요를 공연하는 봉사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가 들어가면서 민요 공연은 단순한 민요 공연이 아닌 종합 레크레이션 교육이 되었다. 그녀가 어르신들을 상대로 건강 체조와 웃음치료를 병행하고, 한국무용을 하면서 공연은 훨씬 다채로워졌다. 그녀는 목요일을 제외한 다른 요일에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공연 봉사를, 목요일에는 노인대학 강연 봉사를 해오고 있다. 그녀는 노인대학에서 봉사를 하다가 처음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봉사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노인대학에서는 노래만 틀고 몇 마디만 해도 모든 어르신들이 일어나셔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세요. 그런데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계신 분들은 조금 더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혼자 노래하고 혼자 얘기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죠.”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주는 듯이 그녀를 응원해주는 어르신들도 있다.
“어떤 분들은 ‘박수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박수 많이 쳐야 한다’며 큰 소리로 박수를 쳐주시기도 하고, 대부분의 분들이 저희를 참 예뻐해 주세요. 우리가 이 나이에 어디서 이렇게 많이 예쁨 받고, 사랑받을 수 있겠어요. 봉사를 하면서 얻는 보람이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
그녀가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어르신은 한글을 가르쳐드렸던 어르신들이다. 본인 이름도 쓰지 못하시던 분들 다섯 분이 그녀 덕분에 글씨를 알게 되었다.
“한글을 가르칠 때는 항상 숙제를 내드렸어요. 자기 이름을 반복해서 써오시라거나 글짓기를 해오시라거나 했죠.”
처음에는 기호나 그림처럼 한글 모양대로 그리시던 어르신들은 점차 글씨를 익히셨다. 그 다섯 분 중 한 분의 자녀는 직접 감사인사를 드린다며 전화를 주기도 했다.
“그 어르신이 저를 딸이라고 부르세요. 제가 그 분 계신 노인정으로 떡을 사들고 가면 그 어르신은 갈 때마다 우리 딸 왔냐며 저를 반겨주세요. 아마 거기 계신 분들은 저를 진짜 딸로 알고 계실 거예요.”
한편으로는 봉사를 하기 힘들었을 때도 있었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몸이 힘들어도 한 시간을 앉아계신 분들이 안쓰러워 그녀는 공연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원장에게 전했다. 하지만 원장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몇 분의 호응이 모든 분들의 호응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다른 분들도 선생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시는데도 몸이 불편하셔서 표현을 못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녀는 그 말에 마음을 돌려 다시 공연을 시작했다. 대신 자신을 보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앉아계신 분들을 위해 더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준비했다.
“두 달에 한 번씩 건강체조 교육도 받고, 더 재미있는 방법은 없는지 인터넷도 찾아보고요. 제가 율동강사를 하다 보니 가사를 듣다가 율동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러면 기억해냈다가 다음에 그 노래가 나올 때 율동을 새롭게 해보기도 해요.”
그러자 전에는 좋은 일이니 해야 했던 봉사가 어느 날부터는 교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바로 봉사현장이었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