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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지혜와 경험이 환영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시니어독서클럽 장영진 봉사자]

“노인들의 지혜와 경험이 환영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시니어독서클럽 장영진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7.10.02

예로부터 ‘노인은 지혜와 경험이 가득한 도서관이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노인에 대한 대우는 그렇지 않다. 점차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의 비중이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노인은 복지의 대상일 뿐 노인들이 실제로 인생 2모작을 꾸려나가기는 쉽지가 않다. 젊은이들이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더는 없다.
은퇴 후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다
2015년 은퇴 후, 장영진 씨는 ‘뭘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그동안 직장 다니느라 취미를 마음껏 즐기지 못한 그는 새로운 배움을 택했다.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동영상 편집 기술을 익히며 그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또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석수도서관의 석수시니어독서클럽을 찾아냈다. 독서클럽에서 책을 읽고,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동시에 독서클럽을 주제로 한 영화촬영을 준비했다. 하지만 독서클럽의 어르신들은 그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촬영에 반대하며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의 끊임없는 설득으로 영화 촬영을 허락받았을 때쯤 석수시니어독서클럽은 곤지암에 위치한 화담 숲을 찾았다.
“화담 숲에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잘 걷지도 못하셨던 분들이 정상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말을 쉽게 못 걸던 분도 신나서 대화를 주도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노인들은 혼자라서, 외로워서 그랬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실내에만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야외로 나가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니 활력을 찾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화담 숲을 올라가면서 촬영을 해서 편집하고, 내레이션을 넣으며 몇 달간 매달려 영화를 만들었어요. 독서클럽에서 독후감 대신 나왔던 노래는 이 영화의 배경음악이 됐고요.”
이 영화는 석수도서관과 성북미디어센터에서 상영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기세를 몰아 2017년도 서울노인영화제에 이 영화를 출품했다.
“석수도서관에서 저희 영화를 도와주려고 젊은 분이 내레이션을 도와주셨어요. 그런데 서울노인영화제는 노인들만 모여서 만드는 영화를 출품하는 영화제라서 내레이션만 젊은 사람이 도와줘도 입상을 못하더라고요. 이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 다시 도전할 겁니다.”
이 영화를 만든 후 독서클럽의 어르신들도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찍어달라며 부탁하게 된 것.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다만 그동안 숨기고 살았던 거죠. 그런데 한번 해보니 자신감이 생겨서 자신의 삶을 남기고 싶어졌을 겁니다.”
은퇴 후 기자활동을 시작하다
그의 은퇴 후 계획은 영화감독에 그치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소식을 주로 전달하는 ‘실버넷뉴스’의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3개월간 기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거쳐 노인들의 이야기, 독서클럽에서 겪은 이야기, 노인이 만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기사를 써내려가며 그는 한 번 더 노인의 가치를 깨달았다.
“우리 석수시니어독서클럽만 봐도 재능 있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몰라요. 우리 독서클럽 회장은 지기지우라는 책을 내기도 했어요. 읽어보니까 굉장히 많은 책을 읽고, 공부도 많이 한 것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재능이 표출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시니어들은 배운 것도, 경험도 많아요. 그런데 이런 내용을 누구와 대화를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외롭죠. 마땅한 장소도 없고, 마땅한 모임도 없으니 얘기를 못해요. 사회에서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밥 주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좀 더 나아가면 영화를 보여주거나 건강강좌를 여는 것이 고작이라고 생각해요. 배울 수 있는 방법,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은데 왜 이렇게 배운 것, 향유한 것을 활용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없는 걸까요?”
노인들에게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그는 자신이 은퇴한 뒤에 시니어들이 얼마나 활동적이고, 얼마나 지적인지 알게 되었다.
“시니어 중에 글을 잘 쓰는 분들도 많고요. 컴퓨터를 잘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물론 이런 분들은 거의 지식층이었던 분들이에요. 지식층이 아닌 시니어들은 이렇게 밖으로 나와 활동하지도 못하지만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대화에 끼지 않아요. 그렇다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없겠어요? 지식층이든 아니든 많은 대화를 하고,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죠.”
또한 그는 노인 정책이 복지정책에만 맞춰져 있어 노인들에 대한 편견이 더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시니어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신한테 맞는 일을 하면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배우고, 활용하겠죠. 그런데 노인이라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땅한 정책을 만들지 않아요. 그래서 더 노인들에 대한 편견이 깊어지는 겁니다. 노인들이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활동을 하지 못하니 방황하게 되고, 사회에서는 방황하는 노인들을 사회문제로 보니까요. 노인은 사회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 잠재계층이지요.”
그는 다행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주변에는 아직도 잠재력은 많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니어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는 이러한 노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도록 앞으로도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영화를 계속 만들어 갈 생각이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