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 칭찬릴레이

“봉사를 하는 이유와 하모니카를 부는 이유” [백영옥 봉사자]

“봉사를 하는 이유와 하모니카를 부는 이유” [백영옥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7.06.14

그녀가 중국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뱃놀이를 하는 중 약간은 심심하고, 조금은 지친 상황에서 그녀는 하모니카를 꺼내들고는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흥얼거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여기 저기서 뱃놀이를 하던 다른 배들도 그녀가 탄 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녀에게는 봉사를 하는 이유가 하모니카를 부는 이유와 같다.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배운대로 뿌린다
백영옥 봉사자가 현재 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로는 하모니카봉사단인 옥타브에 소속되어 요양원이나 시민축제 등에 나가 연주를 해주는 것과 서울대수목원에서 숲 해설을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훨씬 더 많은 봉사를 해나갔다.
“봉사를 한참 하다보니까 봉사를 한지 13년이 넘었더라고요. 그래서 65세까지만 하겠다는 생각에 중간에 그만두었었어요.”
그녀가 봉사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하모니카 덕분이었다. ‘몰래 산타’라는 봉사를 하고 있을 당시 이종혜 선생은 산타 봉사자들에게 하모니카를 가르치러 왔었다. 그때 하모니카를 접했던 백영옥 씨는 이후 시간이 지나서 악기 하나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하모니카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하모니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강좌를 등록했더니, 반갑게도 이종혜 선생이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게다가 이종혜 선생님이 같은 동갑이다 보니 쉽게 친해졌어요. 벌써 6년째 그렇게 스승과 제자처럼,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이종혜 선생에게 오랜 시간 하모니카를 배운 제자들이 청소년 수련관, 시민행사 등에 초청되어 연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기 저기에서 연주 요청이 들어왔다. 게다가 그녀의 지인이 요양원에 와서 하모니카 연주를 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 다른 회원들에게 의사를 묻자, 다른 회원들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옥타브’라는 이름으로 연주 봉사를 해주고 있다.
“한번 가려면 미리 8곡은 준비해야 하는데, 매주 한번은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한번은 봉사를 하고, 또 한 번은 이종혜 선생님 수업을 받으러가요. 확실히 배워서 봉사하려니까 연주 실력이 늘더라고요.”
많이 뿌린만큼 많이 거두는 것은 아니다
숲해설은 시작한 지 12년이 지났다. 땅을 알아야 숲 해설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직접 땅도 일구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숲해설을 할 때면 단순히 숲의 중요성, 나무 이름과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농사, 땅, 식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흔히들 자식들을 잘 키우는 것을 자식 농사를 짓는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농사를 짓다보면 농사가 자식 키우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예를 들면, 무조건 거름을 많이 준다고 농사가 잘 되지 않아요. 자식들에게 무조건 지원을 많이 한다고 자식이 잘 되지 않듯이. 필요할 때 적절한 만큼만 거름을 주는 기술이 중요해요. 너무 거름을 많이 주면 콩도 키는 굉장히 크게 자라는데 막상 열매를 제대로 맺지를 못해요. 거름을 적절히 주면 키는 작아도 가지가지마다 열매를 맺어서 한 뿌리에서 콩 한 되를 수확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꼭 필요한 숲과 땅을 주제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면서 숲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방문객들 안에는 신선한 공기가 가득 찬다. 이 중에는 숲 공부를 위해 온 이들도 있고, 아픈 몸을 치료하러 온 이들, 그냥 단순한 숲 체험을 위해 온 이들도 있지만 모두 숲 해설을 들으면서 숲의 생명력과 필요성을 배워간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의 진짜 의미
그녀가 맨 처음 봉사를 시작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십계명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늘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사회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지 말고, 사회의 봉사자가 되기를 힘써라.’ 이를 가슴에 품고 살던 그녀는 남편이 떠난 뒤에 자신을 되돌아봤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았는지 곱씹어보니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65세까지를 봉사 정년이라고 생각하고 쉴 틈없이 봉사했다.
‘이제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봉사를 정리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봉사를 하고 싶어졌다.
“손녀 딸이 어렸을 때, 내가 봉사하러 갈 때 손녀 딸이 따라왔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손녀딸이 ‘나도 나중에 크면 봉사할 거야’라고 말하더라고요. 손녀 딸 말이 할머니가 봉사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대요. 자식들도 마찬가지에요. 언젠가 한번은 ‘엄마, 우리도 이 다음에 나이 들면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잘못 산 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아도 내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자식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