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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즐거워진 이유, 모두 봉사 덕분이죠.” [책두레 최원실 봉사자]

“인생이 즐거워진 이유, 모두 봉사 덕분이죠.” [책두레 최원실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7.02.21

최원실 씨는 유치원 원감, 학원 원장을 해온 경력이 있어 사람들에게 무엇을 읽어주고, 가르쳐주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어르신께 책을 낭독해주는 활동에도 프로다운 모습을 보인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두레 회원으로, 또 같은 봉사자들에게 가장 인정받는 봉사자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그녀는 인생이 즐거워진 이유가 모두 봉사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한 장의 전단지
5~6년 전 최원실 씨는 한 전단지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당시 문화원이었던 평생학습원에서 책을 읽어주는 문화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전단지였다. 아주 오래 전 시각장애인인 지인의 남편이 책이 낭독된 테이프를 듣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나중에 저런 봉사 한 번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그런 기회가 굴러들어온 것이었다.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담당자는 이미 모집이 마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최원실 씨가 많이 아쉬워하자 담당자는 다음 해에 또 모집을 하면 바로 알려주겠다며 그녀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리고 다음해 담당자는 그녀를 잊지 않고 문화봉사단 모집을 알렸다.
문화봉사단 교육을 받으며 단체 봉사는 이루어졌지만 이 이후로도 또 와주기를 바라는 요양원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보며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한 달에 두 번씩 봉사를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낭독봉사는 첫 문화봉사단 단원이었던 송경득 대표로 인해 책두레라는 봉사단으로서 제대로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후 4~5년동안 최원실 씨도 꾸준히 책두레에서 활동하면서 책의 즐거움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처음 책두레 활동을 할 때는 생각했던 것과 달라 쉽지 않았다. 그녀는 문학작품을 읽어주는 것을 상상했는데 그림동화책을 읽어주는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대략 한 시간 동안의 낭독시간 중 처음 십분에서 십오분과 마지막 십분에서 십오분동안 간단히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는 시간이 들어가있었다. ‘이 나이에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었지만 이왕 시작한 것 끝을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노하우가 생겼다.
노하우가 더해진 책 낭독
그녀는 단순히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랜 노하우를 통해 얻은 응용력으로 책을 읽어준다. 예를 들어 우울한 결말로 끝나는 결말을 희망적으로 바꿔 각색하기도 하고, 박수 치는 시간이 있으면 박수를 쳐도 되고, 한 손으로 책상을 쳐도 된다며 자연스럽게 양 손을 잘 쓰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명절 때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명절 이후에 가서 명절을 잘 보내셨는지 절대 묻지 않는다. 가족이 보고 싶어도 못 갔거나 가족들이 안 왔던 어르신들이 태반이기에 명절 안부를 여쭤보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대신 그녀는 달 이야기를 꺼낸다. ‘옛날에는 달이 참 밝아서 달님 노래 많이 했지요?’하면서 달아달아 밝은 달아 달타령을 부르기도 하고, 시골 동산에서 밝은 달 아래서 숨바꼭질 하던 이야기, 귀신놀이 하던 이야기를 꺼낸다. 어르신도 젊은 선생님들보다는 나이가 자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은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그리웠던 옛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또 낭독시간이 끝난 후에 조용히 그녀를 찾아 요양원이 싫다며 그녀에게 선생님 집에서 같이 살면 안 되냐는 부탁을 하기도 하고 아들에게 연락을 해달라며 조르기도 한다. 60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치매에 걸린 한 여류시인은 그녀에게 자신이 쓴 시집을 수줍게 보여준다.
이번에도 작년 11월 이후 봄이 오면서 요양원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자 어르신들은 세 달간 그녀만을 기다렸다며 반가움을 표했다.
“세상에 얼마나 반가워하던지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끼죠. 제 자식이라도 그렇게 반가워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분들은 몸보다도 마음이 그리움에 사무쳐 있는 분들이거든요. 아주 잠깐이나마 제가 위로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전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봉사를 받을 나이에 가깝지, 할 나이에 가깝지는 않은데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죠.”
이렇게 일 년을 봉사를 하고 나면 그 해 마지막 봉사를 하러 가면서 그동안 읽은 책 약 12권을 그분들이 읽으실 수 있도록 기증을 하고 온다. 그 이후에는 복지사들이 읽어주거나 어르신들이 스스로 읽으면서 그때 기억을 다시 더듬곤 한단다.
요양원마다 특색에 맞춘 이야기보따리
그녀는 늘 책 낭독 한 시간이 어르신들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즐거운 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요양원마다 특색에 맞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가고 있다. 안산에 있는 사랑뜰에서는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르신들이 많아서 고향이야기를 자주 이끌어낸다. 반대로 보건소 재가요양원에서는 고향이야기보다는 과거의 영광을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를 주로 한다.
“제가 다니는 요양소에 한 어르신 별명을 개떡할아버지로 붙였는데요. 그분은 아는 얘기가 나오면 ‘그런 개떡 같은 이야기 누가 모르냐’며 이야기를 듣다가도 문을 박차고 나가세요. 그래서 복지사들이 달래가면서 다시 모셔 와서 이야기를 이어나갔거든요. 그러다 하루는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제가 이 얘기를 잘 못해서 개떡같이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옛말에 개떡같이 말하면 어떻게 하라고 했죠?’ 그러니 듣고 계신 분들이 ‘찰떡같이 들어요’라고 대답해주셨죠.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는 ‘찰떡같이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죠. 이렇게 몇 번 계속하자 그 다음부터는 개떡할아버지도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저를 반갑게 맞아주시더라고요.”
그녀는 다른 날은 아침 늦게 까지 늦잠을 자다가도 봉사가 있는 날이면 새벽에 눈을 뜨게 된다. 일어나면서부터 오늘은 나가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떻게 위로를 해줄지, 어떤 노래나 게임으로 즐겁게 해드릴지 고민한다. 그녀는 약속시간 30분 전에 함께 봉사하는 파트너를 만나 이번 봉사는 어떻게 할 지 간단한 회의를 한 후 봉사를 하러 들어가곤 한다.
“나랑 동년배인 사람들이어서 내가 봉사를 했다는 생각보다도 내가 봉사를 받은 기분이 들어요. 그 분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내가 힘이 나니까요. 나이가 많다고 봉사를 못 하는 건 아니에요. 노년이 즐거워야 인생이 즐겁다는데 저는 봉사 덕분에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