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음악으로 알게 된 즐거움,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더 커졌죠.” [이종혜 봉사자]

“음악으로 알게 된 즐거움,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더 커졌죠.” [이종혜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7.02.01

청바지에 기타가 유행이었던 시절, 중 2 소녀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 소녀는 엄마가 되었고, 동시에 낭만과는 멀어졌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하모니카를 통해 그녀는 다시 자신의 낭만을, 삶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덤으로 봉사의 기쁨도 따라왔다.
자기만족으로 배운 악기, 남을 기쁘게 하다
이종혜 봉사자는 현재 청소년수련관과 초등학교, 중학교, 복지관 등에서 하모니카를 가르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손에서 악기를 놓았던 그녀는 하모니카 대부라고 불리는 이혜봉 선생에게 하모니카를 배우면서 학교 방과후수업에 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등 학교 수업으로 길을 닦자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 안양 올림픽스포츠 타운 등 문화강좌에서도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던 때 그녀가 살고 있던 아파트 바로 앞에 수련관을 짓기 위해 땅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는 수련관이 생기면 여기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는 수련원이 생긴 직후부터 지금까지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주고 있다.
지금은 손이 아파 기타를 가르치지 못하지만 그때는 기타를 가르쳐 안양 최초의 기타 동아리였던 ‘오선지’를 만든 것도 그녀였고, 뒤이어 하모니카 동아리인 ‘옥타브’도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동아리와 함께 봉사도 이어나갔다. 병원으로 가서 환우를 위한 음악회를 했고, 복지관에 가서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하모니카를 가르쳤으며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기암환자들에게 생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해마다 열리는 안양시민축제에서도 무대에 서서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줬다. 악기를 통해 봉사를 이어나가다보니 ‘옥타브’ 동아리는 안양 우수 자원봉사단체상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
“자기 만족을 위해 배우게 된 악기가 이렇게 남을 위해 쓰이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이죠.”
가장 단순한 하모니를 내지만 가장 예쁜 제자들
그녀는 아이들이나 봉사자들에게 악기를 가르칠 때도 물론 뿌듯하지만 가장 보람이 크게 느껴질 때는 장애인을 가르칠 때라고 말한다. 그녀가 가르치는 장애인들은 모두 중증 장애인으로, 악보를 읽거나 외우기 힘든 정신지체장애인이거나 두 손을 모두 쓰기 힘든 신체 장애인이다. 원래는 양손으로 두 개의 하모니카를 불면서 하나로는 피아노의 흰 건반, 다른 하나로는 피아노의 검은 건반을 맡아 연주를 해야 하지만 중증 장애인의 경우는 한 손만을 이용해도 연주할 수 있도록 다장조 곡만을 가르친다.
“신체가 불편한 분들은 휠체어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해서 곡이 끝날 때쯤에는 허리가 다 구부러져서 무릎에 닿을 정도가 돼요. 반대로 신체적으로 두 손을 모두 쓸 수 있으면 악보대로 하모니카를 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이분들 표정을 보면 그 열정이 느껴져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제 수업에 집중을 안 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복지관이나 요양원에 가면 몸이 불편하고, 제대로 소리를 못내도 얼마나 집중력이 좋은지 몰라요. 그 모습을 보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뿌듯하고 기분 좋은지 더 많이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죠.”
12월부터 2월까지는 추위 때문에 장애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지만 이 제자들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서 배움을 재촉한다. 또 코사지를 직접 만들어 선물한 제자도 있다. 매번 코사지를 하고 가지만 매번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매번 새로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그녀의 제자들은 다른 교회 선교회에 가서 연주를 하기도 하고,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몇 년전부터는 시민축제에서도 무대에 섰다. 처음에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무대에 서기를 꺼려했던 제자들은 이제는 너도나도 무대에 서고 싶어한다.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
강좌가 없는 주말이면 힘들어서 앓아눕다가도 강좌가 있는 평일이면 제자들의 반짝반짝한 눈빛을 받아 힘이 난다는 그녀는 음악을 즐기는 제자들의 열정이 있기에 지금까지도 강좌를 계속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제자들 중에는 자식들에게 ‘나 죽으면 관에 내가 불던 하모니카만 넣어 달라’는 유언 아닌 유언을 할 정도로 하모니카에 빠진 제자들도 있다.
“기타나 색소폰, 트럼펫 등이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단하게 들고 다니면서 불 수 있는 악기로 하모니카를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하모니카가 작기 때문에 배우기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하모니카도 악기다 보니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워요. 그러니 4~5년 이상을 계속 배우는 사람들이 많죠.”
그녀는 제자들과 함께 연주회에 가고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봉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있는데 누군가 필요하다고 하면 나눠줄 수 있잖아요. 굳이 악기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봉사할 곳은 많더라고요. 요양원 목욕봉사나 보건소 잡무 등 도 할 수 있고요. 시간이 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게 되죠. 아직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반갑고 고마워요.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저번에 안양시장상을 받은 봉사자 분은 지금까지 봉사시간이 만 시간이 넘으셨다고 하는데 저는 고작 일주일에 3~5시간밖에 되지 않아요. 그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저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고요. 그래도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제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