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문제 있는 여성은 없다. 여성문제가 있을 뿐.” [ 안양 여성의전화 정애숙 사무처장 ]

“문제 있는 여성은 없다. 여성문제가 있을 뿐.” [ 안양 여성의전화 정애숙 사무처장 ]

by 안양교차로 2016.12.20

서른 셋, 정애숙 사무처장은 문제 있는 여성들을 상담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처음 ‘여성의전화’를 찾았다. 그리고 첫 강의로 여성학을 듣고 나서 깨달았다. 문제 있는 여성이 많은 것이 아니라 여성문제가 많다는 것을. 그 후 19년동안 그녀는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무자로서, 강연자로서 여성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안양 여성의전화 정애숙 사무처장 > 주체적인 여성으로 태어나다
정애숙 사무처장은 여성의전화에 들어와 강연을 듣고, 배우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그동안 여자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살아오면서 ‘내가 왜 이렇게 못났지?’라고 자책했을 때마다 사실 그녀만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부모님께서 곱고, 귀하게 자라도록 마련해주신 온실은 평온하지만 가부장적인 구조에 맞춰 커가도록 만든 틀이었고, 이 환경에서 자란 여자는 누군가의 여자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완벽을 추구하며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부끄러움과 자책감을 떨쳐내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던 자신 안에 숨어있던 힘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 힘으로 그녀는 책을 썼고, 강연을 하며 성장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녀가 쓴 책 제목은 ‘보석상자를 여는 여자’로, 그녀의 두 딸들이자 후배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

“후배 여성들은 우리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성평등한 관점에서 하는 성교육 내용을 담았죠.”
책만큼 강연 또한 알차다는 평이 자자하다. 그녀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 위촉된 강사로, 성폭력·성희롱·가정폭력·여성평등·여성차별예방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녀가 강의법을 연구해서 강연하는 강연자는 아니지만 여성운동 실무자로서 경험에서 나온 현장성과 진정성으로 많은 청중들에게 다가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학교, 학부모, 군부대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이어나가던 그녀는 자신이 강연을 잘 하고 있는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제3회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강의 경연대회에 출전했고, 양성평등교육진흥원상을 거머쥐었다.
주체적인 여성을 키워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처음 여성상담원으로 활동했을 때 받았던 전화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교회 사모님이셨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목사가 가정폭력을 20년간 휘둘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제가 ‘작은 교회도 아닌 것 같은데 교인들 중에 가정폭력을 눈치 챈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나요’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가해자인 남편이자 목사가 아내의 멍과 상처를 숨기기 위해 ‘사모는 기도원에 갔다’고 둘러댄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은 사모가 폭행을 당할 때마다 ‘우리 사모는 교인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계속 기도한다’고 생각했겠죠. 이렇게 가정폭력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 가정이 이렇게 완벽한 사각지대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상담전화를 받으면 받을수록 양성평등의 필요성이 느껴졌고, 머지않아 그녀는 상담원 교육을 맡아 자신이 선배들에게 받았던 것처럼 후배들에게 감명을 주는 교육을 하게 되었다. 그때 상담원 교육을 받은 한 여성도 그녀의 기억에 오래 간직되고 있다.
“그 분도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하신 분이세요. 여성의전화에 와서 물고기가 물을 만났듯 드디어 숨을 쉬기 시작했대요.”
그러면서 자기가 취업을 하면 첫 월급의 10분의 1으로 정애숙 사무처장의 옷을 해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정애숙 사무처장을 다시 찾아와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자신은 한 것이 많지 않다’며 봉투를 마다하는 정애숙 사무처장에게 그녀는 말했다.
“그동안 신세한탄만 하기 바빴던 제가 이렇게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게 한 건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정애숙 사무처장은 그동안 여성폭력에 고통받는 이들, 자신을 이끌어주는 선배들, 자신을 지지해주는 후배들이 있어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저는 제가 속한 그 조직이 성장했으면 좋겠고, 그 조직에 속한 저도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만나는, 혹은 저를 만나러 오는 많은 분들도 모두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활동하니까 쉽게 지치지 않더라고요.”
당당한 여성으로서 당당한 여성을 키워나가는 그녀는 앞으로도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