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삶의 반은 날 위해서 살고, 나머지 반은 남을 위해 살자" [하수찬 안양재가노인장기요양센터 소장]

"삶의 반은 날 위해서 살고, 나머지 반은 남을 위해 살자" [하수찬 안양재가노인장기요양센터 소장]

by 안양교차로 2016.09.20

하수찬 씨는 쉰이 되면서 한 가지를 다짐했다. 앞으로 내 삶의 반은 날 위해서 살고, 나머지 반은 남을 위해 살자는 것이었다. 30,40대는 먹고 사느라,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큰 만큼 정신적인 여유를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다짐대로 50이후의 6년의 삶에서 절반은 봉사를 위해 살아갔다.
사랑의 빵굼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빵
격주에 한 번 하수찬 소장이 있는 안양재가노인장기요양센터는 유독 분주해진다. 한번에 200여 개의 빵을 구워야 하기 때문. 이렇게 나온 빵은 동사무소와 노인정에 배달되어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전달된다.
“빵을 갖다드리면 어르신들이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항상 고맙다고, 맛있다고 해주시고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더 봉사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죠.”
그가 빵 봉사를 시작한 건 2000년도 3월부터였다. 노인 사업을 하면서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처음에는 도시락 배달을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도시락 봉사는 누구나 어느 기관에서나 하는 봉사였다. 이 때 도시락 대신 빵을 만들어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제빵 기술을 배우고, 천만 원이 넘는 제빵 기계를 요양센터 내에 들였다.
“집사람은 처음에 반대를 많이 했어요. 노인사업을 시작하면서 임대료도 내야 되고, 보증금도 투자해야 되는데 아내 몰래 천만 원을 들여서 기계를 들여놨으니까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집사람이 한동안 빵을 안 먹었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어렵게 배운 제빵 기술을 이용해 V터전과 성당에서 자원한 봉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빵 나눔 체험교실도 연다. 사람들에게 빵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만든 빵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즐거움도 가르쳐주기에 보람이 더 크다.
6년 전부터 하수찬 소장을 도와 빵 봉사를 하고 있다는 백현아 씨는 그 뿌듯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성당에서 하수찬 소장님을 만나서 여기에서 빵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만든 빵을 어려운 어르신들이 드신다고 생각하니까 더 정성스럽게 만들게 돼요. 이렇게 봉사를 하다보니까 제빵 기술은 없더라도 어르신들이 드실 수 있는 빵은 어느 정도 만들 수 있게 됐죠.”
재능 기부를 위해 배워나간 재능
보통 재능기부라고 하면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반대로 기부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키워나갔다. 제빵 기술에 이어 미용 기술도 마찬가지였다.
“어르신들이 바깥에 자주 나가시지를 못하니까 머리를 자르러 오는 봉사자들이 필요해요. 그런데 미용 봉사자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주기적으로 자주 올 수 있어야 하는데 서로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직접 배워서 하게 되었죠.”
미용 봉사의 매력은 자신의 손길이 닿기 전과 닿은 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 일부 사람들은 냄새가 난다며 봉사는커녕 들어가기도 거북스러워하지만 그는 어르신들을 한 분 한 분 직접 씻겨드리고 나서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이렇게 목욕과 미용을 마친 어르신들은 신사의 품격을 갖춘 어르신이 되니 미용기술을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고 한다.
그가 가진 재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성당에서 염 봉사도 하고 있는 것. 이 또한 성당에서 염 봉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듣고,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기까지 했다.
“염을 하면서 느낀 점이 많아요. 제가 시신을 자주 만져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삶과 죽음은 온도 차이에 지나지 않아요. 죽은 사람은 차갑고, 산 사람은 따뜻하죠. 결국 인생을 아등바등 살아도 그 온도 차이 뿐인 거예요.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면 편안하게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힘들게 돌아가신 분도 있는데 결국 다 똑같으니까요. 그냥 살아있는 동안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가야겠다 싶어요.”
그가 염하는 시신만 해도 1년에 40구 가량. 지금까지 3년간 염한 시신이 120구가 넘는다. 염과 입관, 출관, 장례식까지 그가 모두 필요하기에 3일은 꼬박 매달려야 한다. 어르신들의 소식이 많은 봄에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염을 해야 할 때도 있을 정도로 바쁘다.
한 발자국 떨어져 나를 관찰하는 일
돌이켜 보면 그가 처음 봉사를 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일산에 있는 장애인 센터에서 봉사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한 달에 한 번 가서 청소며, 목욕이며, 저녁반찬까지 해드리고 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50대가 되면 내 삶을 절반으로 나누어 반은 날 위해, 나머지 반은 남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는 50이 되자 바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빵과 미용 봉사를 시작했고, V터전 팀장으로 활동했다. V터전은 마을 단위의 봉사활동 센터로, 그는 매번 다른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봉사자들을 모집해 봉사하는 역할을 맡았다.
“V터전을 하면서 봉사자 코치를 구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봉사자들에게 연락을 해봐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결국 오영자 팀장님께 넘겨드렸죠. 오영자 팀장님께서 책임감 있게 잘 해주시고 계셔서 참 다행이에요.”
그는 V터전 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봉사의 즐거움을 가르쳐줄 수 있어 무엇보다도 기뻤다.
“인생은 혼자 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요즘에 나눔이니, 봉사니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봉사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요? 한 발자국 떨어져 나 자신을 볼 수 있어요.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이것들을 나눌 수 있게 되죠. 이렇게 행복을 배워나갈 수 있어요.”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