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장애가족과 그 이웃들이 서로 돕고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 홍경숙 이사]

“장애가족과 그 이웃들이 서로 돕고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 홍경숙 이사]

by 안양교차로 2015.10.13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세상에 모성을 표현한 문장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이 중에 어느 하나도 맞지 않는 말이 없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자신에게 아픈 손가락인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원더우먼이다.
아픈 손가락을 지켜봐야 하는 엄마
아이가 태어난 지 삼일 째,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병원에 다닌 지 5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아이는 희귀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아이의 뇌가 손상을 입은 후였다. 아이는 빈혈이 너무도 심했고, 재활훈련을 할 수 있는 건강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홍경숙(44) 씨의 아픈 손가락인 큰 아이 이야기이다.
그때 많은 고비를 견뎌낸 아이는 지금은 13살이 되어 재활치료를 받으며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13살이 될 때까지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를 특수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불안감이 심해 어린이집에 30분 있는 것도 힘들었다. 처음에는 30분, 다음날에는 한 시간, 이렇게 시간을 늘려나갔고, 점심시간에는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에게 직접 밥을 먹였다. 아이가 특수 어린이집에 가 있는 30분, 한 시간이 그녀에게는 아이가 태어난 뒤 6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자유 시간이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도 아이 옆에서 잠시도 떠날 수 없었던 그녀였기에 그 시간은 소중하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다.
때마침 그녀의 지인 중 한 명이 그녀에게 한 달에 7장 정도의 영화표를 주기 시작했다. 혼자서 그 많은 영화를 볼 수 없었던 그녀는 장애인부모 난타교실과 아이의 재활치료실 앞에서 만났던 엄마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전혀 갖지 못했던 여유를 조금이나마 되찾았다. 그 중 한 엄마가 말했다.
“아이가 점점 커 가는데 우리도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2012년도, ‘뇌병변 장애 자녀 부모의 열손가락’이라는 모임은 그렇게 태어났다.
엄마, 원더우먼이 되다
열 명이 모였지만 이미 아이들에게 모든 삶을 올인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엄마들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몰랐다. 그럴 때 안양시에서 하는 두드림 강좌를 알게 되었다. 강사료를 지원해주는 이 제도에서 ‘열손가락’은 ‘장애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부모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 번의 강의를 신청했다. 지역 복지관의 사회복지사에게 강좌를 듣기 시작하면서 ‘원더우먼’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사회복지사가 보여준 한 동영상에서였다. 그 영상에서는 수많은 뇌병변 장애인들이 한강 다리를 기어서 건너고 있었다. 온 몸을 짓이겨가며 그들이 원했던 소망은 활동보조서비스였다. 그리고 이 소망은 이루어졌다. 그 영상을 보며 엄마들은 생각했다. 무엇이든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고.
그 후 그녀들은 하루 24시간을 쪼개 썼다. 두드림 강좌를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한 편,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모임을 좀 더 신뢰성 있는 단체로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다가 협동조합을 생각해냈고, 안양아이쿱율목생협에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세우려는 이들을 위해 만든 착한기업가양성과정이라는 강좌를 들었다. 이 강의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컨설팅을 해주는 강좌로, 마지막 시간에는 각자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평가해 발표한 뒤 1등과 2등에게는 전문가 컨설팅을 제공했다. 그리고 유일한 무기로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던 엄마들은 1등을 차지해내며 성공적인 협동조합으로써의 첫발을 내딛었다.
원더우먼들이 모여 그리는 밝은 미래
열손가락은 그 후 점차 발전을 거듭했다. 열손가락은 방과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의 자녀만을 돌봤지만 이번 해에는 해솔학교에서 위탁을 받아 한 반을 더 운영했다. 하지만 열손가락이 상상하는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밝아져야 한다.
“갑작스럽게 중증 장애아동의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요. 정부에서도 상시 돌봄이 아니다보니 예산을 짜고 해주기가 어렵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방과후교실을 운영하면서 긴급 돌봄의 토대를 마련하는 거죠.”
동화책을 선정한 뒤 이 동화를 사진으로 찍고, 파워포인트와 그래픽 작업을 이용해 움직이는 동화를 만드는 ‘멀티동화’ 팀도 만들었다. 뇌병변을 앓고 있는 애솔이도 이 멀티동화팀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동화책 이름만 읽어주었던 애솔이는 지난 번 삼덕공원에서 멀티동화 공연을 할 때는 공동사회자로 나섰다. 여기에다가 컴퓨터 작업도 돕는다.
그뿐인가. 열손가락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모두 자라났을 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는 일터로써의 역할도 꿈꾸고 있다. 이번에도 졸업하는 친구가 두 명이나 되니 애솔이와 함께 열손가락을 이끌어나가는 인재가 될 것이다.
열손가락이 생겨난 지 2년, 생일 축하를 위해 열손가락은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10월 16일에는 오후 2시부터 장애아동 돌봄 및 이동지원기금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열고, 다음날인 17일에는 오전 11시부터 평촌 중앙공원에서 ‘친구야 사랑해’ 멀티동화공연을 선보인다. 이 자리에 이 글에서 소개된 ‘원더우먼’들이 직접 참여한다고 하니 가서 힘을 실어주는 건 어떨까.

취재 강나은 기자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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