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와 4남매, 6배로 커진 봉사활동” [유육남 자원봉사자]
“부부와 4남매, 6배로 커진 봉사활동” [유육남 자원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5.09.22
이 주변에서는 봉사로 유명한 가족이 있다. 외동이나 남매 둘이 대부분인 요즘 흔치 않은 4남매라는 점도 한 몫 하지만 부부를 포함해 온 가족이 워낙 활발히 봉사를 하기 때문에 유독 눈에 띈다. 이렇게 온 가족을 모두 봉사로 이끈 유육남 씨는 이전부터 오랫동안 많은 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가족들에게도 봉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사연 있는 아이들에게 ‘삼촌’이 되어주다
유육남(52) 씨는 지금 현재 하는 봉사와 기부만 나열해도 한 페이지가 모자랄 만큼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시민경찰, 법사랑, 방의협의회, 배식 봉사, 장학회 등으로 가족들이 하는 봉사활동을 제외하고 그 혼자서만 하는 봉사활동으로도 한 달에 25번 이상이 된다. 여기에 아내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하는 봉사도 꽤 많으니 주변에서는 그를 ‘봉사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그가 봉사를 처음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소년소녀가장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에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간 후원을 했다. 6년간 도움을 주면서도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할머니와 아이를 초대했다. 당시 생수대리점을 운영하던 그는 평소처럼 생수 브랜드가 선명하게 적힌 유니폼을 입은 모습으로, 후원해 온 아이와 몸이 불편한 할머니 대신 온 남동생을 맞았다. 하지만 이 때 그는 그 아이의 눈빛에서 실망감을 엿보았다. 아마도 그의 유니폼을 보고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실망감인 듯했다. 이어진 식사시간은 서로 서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껄끄러운 식사 시간이 지나고 그는 기부만 하기 보다는 기부와 함께 직접적인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그는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지역 사회에서 순찰을 돌고, 범죄예방을 위한 활동을 하는 방위협의회에 가입해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과천에서 방위협의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봉사한 그는 뒤이어 ‘법사랑’이라는 단체에도 가입한다. 이 단체는 기소유예, 보호관찰 대상자들이 된 청소년들과 결연을 맺어 아이들을 돌보고, 후원을 해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봉사하면서 가장 뿌듯할 때를 고르라고 하면, 저는 이 아이들이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전화할 때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특별히 해준 건 많지 않지만 이 아이들이 무슨 일이 있거나 기댈 사람이 필요할 때 저를 먼저 생각해준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제가 그동안 했던 봉사가 저에게는 별 거 아니지만 한 명 한 명에게는 큰 기쁨이 됐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연말마다 주어지는 수많은 상
그는 겸손하게 이야기하지만 이 아이들이 그를 ‘삼촌’으로 부르며 의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아이들 중 자신의 꿈을 찾았는데도 꿈을 펼칠만한 환경이 되지 않는 경우, 그가 아이들의 꿈을 실현해주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공부할 환경이 안 될 경우에는 지역에 있는 학원에 연락해 ‘이 아이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 혹시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면서 부탁하기도 하고, 태권도를 하고 싶을 때는 지역 내 태권도 도장에 연락을 취한다. 특히 그는 두 군데 장학회에도 몸 담고 있어 장학금 대상으로 추천을 해서 돕기도 한다.
“열심히 하려고 하면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잖아요. 그게 뭐든 여러 군데 연결을 해주는 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특별한 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그는 점심 때마다 복지관에서 배식 봉사를 한다. 미리 봉사일정을 잡아놓지 않아도, 11시에 일정이 비어있으면 원래 봉사하던 복지관 중 하나를 찾아가 봉사를 한다. 이렇다보니 연말에는 늘 포상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네 번의 시장상, 검찰총장상 등 봉사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고 있는 많은 봉사단체 중 이름만 올라와 있는 유령회원인 모임은 하나도 없다. 실천할 수 있는 모임에만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시간이 되고 여력이 될 때마다 봉사단체를 하나씩 늘려가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는 겸손하게 이야기하지만 이 아이들이 그를 ‘삼촌’으로 부르며 의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아이들 중 자신의 꿈을 찾았는데도 꿈을 펼칠만한 환경이 되지 않는 경우, 그가 아이들의 꿈을 실현해주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공부할 환경이 안 될 경우에는 지역에 있는 학원에 연락해 ‘이 아이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 혹시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면서 부탁하기도 하고, 태권도를 하고 싶을 때는 지역 내 태권도 도장에 연락을 취한다. 특히 그는 두 군데 장학회에도 몸 담고 있어 장학금 대상으로 추천을 해서 돕기도 한다.
“열심히 하려고 하면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잖아요. 그게 뭐든 여러 군데 연결을 해주는 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특별한 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그는 점심 때마다 복지관에서 배식 봉사를 한다. 미리 봉사일정을 잡아놓지 않아도, 11시에 일정이 비어있으면 원래 봉사하던 복지관 중 하나를 찾아가 봉사를 한다. 이렇다보니 연말에는 늘 포상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네 번의 시장상, 검찰총장상 등 봉사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고 있는 많은 봉사단체 중 이름만 올라와 있는 유령회원인 모임은 하나도 없다. 실천할 수 있는 모임에만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시간이 되고 여력이 될 때마다 봉사단체를 하나씩 늘려가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부창부수, 부전자전 봉사활동
유육남 씨에게서 가족 이야기도 빼먹을 수가 없다. 아내는 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몇 개월 안 됐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남편의 봉사를 뒤에서 열심히 응원해준 지지자이자, 이제는 동반자가 되었다. ‘오래전부터 쉽게 나서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남편이 하고 있는 봉사가 맞다고 생각했다’는 아내는 이제 어떤 봉사를 가든 함께 한다. 간혹 유육남 씨가 봉사일정이 겹칠 때마다 다른 하나를 소화하는 이도 아내이다.
네 남매도 이에 못지않다. 큰 아들은 군대 휴가를 나와서도 봉사를 할 만큼 봉사에 열정적이다. SNS에 올라온 봉사활동 사진을 보고, 군대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제대한 뒤 복학해 지난 몇 년보다도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있다.
여기에 막둥이인 넷째도 만만치 않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봉사시간이 300시간을 넘을 정도로 봉사에서는 이미 어른들에 뒤지지 않는다. 여기에 회사원이 된 둘째, 대학생인 셋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손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
“원래는 가족 6명이 모두 같이 봉사활동을 할 때가 많았는데, 둘째랑 넷째가 바빠지면서 요즘에는 모두 다 같이 봉사하기에는 쉽지 않네요.”
그는 이런 가족들의 응원을 받아 앞으로는 더 많은 봉사를 하길 꿈꾸고 있다.
“제가 지금 52세인데 62세가 되면, 지역 내 어르신들을 위해서 무료 밥차를 하고 싶어요. 그 준비를 하면서 지금 열심히 복지 분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취재 강나은 기자
유육남 씨에게서 가족 이야기도 빼먹을 수가 없다. 아내는 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몇 개월 안 됐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남편의 봉사를 뒤에서 열심히 응원해준 지지자이자, 이제는 동반자가 되었다. ‘오래전부터 쉽게 나서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남편이 하고 있는 봉사가 맞다고 생각했다’는 아내는 이제 어떤 봉사를 가든 함께 한다. 간혹 유육남 씨가 봉사일정이 겹칠 때마다 다른 하나를 소화하는 이도 아내이다.
네 남매도 이에 못지않다. 큰 아들은 군대 휴가를 나와서도 봉사를 할 만큼 봉사에 열정적이다. SNS에 올라온 봉사활동 사진을 보고, 군대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제대한 뒤 복학해 지난 몇 년보다도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있다.
여기에 막둥이인 넷째도 만만치 않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봉사시간이 300시간을 넘을 정도로 봉사에서는 이미 어른들에 뒤지지 않는다. 여기에 회사원이 된 둘째, 대학생인 셋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손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
“원래는 가족 6명이 모두 같이 봉사활동을 할 때가 많았는데, 둘째랑 넷째가 바빠지면서 요즘에는 모두 다 같이 봉사하기에는 쉽지 않네요.”
그는 이런 가족들의 응원을 받아 앞으로는 더 많은 봉사를 하길 꿈꾸고 있다.
“제가 지금 52세인데 62세가 되면, 지역 내 어르신들을 위해서 무료 밥차를 하고 싶어요. 그 준비를 하면서 지금 열심히 복지 분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취재 강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