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장애인에 대한 아픔, 장애인이 이해하겠습니다 [의왕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윤상 부소장]

장애인에 대한 아픔, 장애인이 이해하겠습니다 [의왕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윤상 부소장]

by 안양교차로 2014.12.23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줄’은 알 속의 병아리가 나오기 위해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말하고, ‘탁’은 어미 닭이 병아리가 나올 수 있도록 껍질 밖에서 쪼는 것을 말한다. 즉, 줄탁동시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본인과 조력자가 함께 맞추어가며 노력함을 이른다.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돕는 의왕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소장 정윤상(46) 씨는 이렇게 줄탁동시로 많은 부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의왕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031-344-0421)
밖에서 알을 깨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집이나 시설에 있는 장애인이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결심을 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충분하지 않았던 교육의 기회와 자유롭지 않은 이동에서 이미 많은 좌절을 겪었던 장애인에게 쉽지 않은 일. 그래서 그는 자립생활센터 독려상담으로 마음을 열고, 자립생활 기술교육으로 일상적으로 경험 하지 못했던 경험을 앞으로 잘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조해준다.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는 일, 영화를 보는 일처럼 일반인들에게는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장애인에게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훈련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그는 분기마다 한 두 번씩, 장애인에게는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비장애인대해서는 장애인식개선에 대해 강의를 다니며 의식개선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을 2년째 곁에서 지켜보았던 의왕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양식 소장은 “이 사람만큼 존경할 점이 많은 사람도 없다”고 말한다.
“우리 부소장이 20대 초반에 중도장애를 입었어요. 그 상황에서 본인 스스로 좌절감을 이겨내고 장애인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에 감동 받았죠. 또 장애인으로서 장애인 상담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기는 쉽지만,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 일처럼 나서서 방법을 찾기는 상당히 벅찬 일이거든요. 우리 부소장은 늘 모든 상담자 하나하나를 위해 굉장히 애쓰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장애인으로서 불편한 부분, 또 난관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정부를 상대로 앞으로는 바뀔 수 있도록 몸으로 뛰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아 부화하다
그가 장애인을 위해 일하게 된 것은 2005년에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의 법적 보장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이 운동을 통해 알게 된 인연으로 오산센터의 초대회장은 처음 오산센터를 만들 때, 그에게 도움을 구했다. 센터를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해줄 사람으로 그를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돕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3년 전 의왕으로 이사 온 후에는 다시 의왕센터를 세우는데 주춧돌 역할을 해내며 센터를 이끌어 오고 있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지만, 그 일들 모두 쉽지는 않았다.
“새 출발하는 단체이다 보니 편견의 벽에 부딪쳤어요. ‘기존에 있던 장애인단체와 다를 바 없는 거 아니냐’, ‘중증장애인은 힘들게 밖에 나오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편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다른 장애인단체와 다르게 중증장애인의 자립을 돕는다는 차별성과 중증장애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회를 이루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제는 전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센터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에게 있어 최고의 자랑거리는 장애인자조모임 ‘도르래’다. 12명의 장애인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지난 9월 경기 화성 전곡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곳에서 풍력발전기와 박물관, 수많은 요트들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단순히 놀러 갔다 왔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 또한 자립생활기술교육의 일환이었다. 기존에 복지관에서 미리 프로그램을 짜서 ‘오시오’, ‘하시오’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이번에 체험활동을 어디로 하면 좋을까?’, ‘어디를 가면, 어떤 점이 좋을까?’에 대해 그들끼리 모여 월례회의에서 같이 생각하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그들은 이렇게 스스로 참여해서 스스로 만든 추억을 하나 둘 늘려나가고 있다.
안에서 알을 쪼다
그에게 또 하나 기쁜 일이 있었다. 인터뷰 직전, 자조모임에 참여한 뇌병변 중증 장애인의 이번 소식지에 실릴 원고를 하나 보내왔다. “할 수 없었던 것들,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는 내용이 적힌 원고였다. 그 원고에는 이런 내용도 적혀 있었다.
“저에게 다른 사람들과 회의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회의 참여를 통해 저는 ‘나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구나’하는 소속감과 함께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기회, 더 나아가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 의왕시에 있는 장애인분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가고, 그 기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세상에 나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장애인도 인간입니다. 인간답게 세상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았으면 해요. 어려운 일이 있거나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센터에 전화를 주세요. 제가 적극적으로 상담해드리겠습니다. 장애인의 속마음, 장애인에 대한 그 아픔은 장애인만이 알고 장애인만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이 만들고 장애인이 운영하는 단체입니다. 연락주시면 언제든지 다가가 소통하겠습니다.”
그는 껍질 안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끊임없이 밖에서 알을 깨고 있었다. 언젠가는 모든 알이 부화될 날을 기다리며.
취재 강나은 기자 naeun1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