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내가 아니면 누군가 해야 할 일 [사랑의 집수리 김도성봉사자]

내가 아니면 누군가 해야 할 일 [사랑의 집수리 김도성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4.10.14

의식주 중에 가장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주’이다. 옷이나 음식은 한 끼, 한 벌에 그치지만 집만큼은 몇 년, 몇 십 년 동안 유지된다. 그래서 여기 어려운 이들에게 밥이나 옷 대신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김도성(55) 씨도 그 중 하나로, 기술을 가진 전문 봉사자로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집을 선물하고 있다.
취미로 배운 도배가 봉사로 이어지기까지
10년 전 김 씨는 자신의 집을 이사하면서 도배사가 도배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도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할 수 있다,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아자동차에 다니는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시간을 쪼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원에 다닌 지 한 달쯤이었다.
취미가 도배가 된 그는 우연히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공고를 발견했다. 그리고 동사무소를 통해 ‘사랑의 집수리’를 알게 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 그는 일반 봉사자들을 이끌며 집수리 봉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전문 봉사자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오고 있다.
사춘기에 들어서며 방황을 겪었던 자녀는 그와 같은 김 씨의 봉사를 눈으로 보고, 함께 하며 어려운 시간을 이겨냈다. 아이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여기서 보람을 찾고 의미를 깨닫는 시간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저는 제 덕이 부족해서 아이들이 마음을 잡지 못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봉사해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제 봉사를 통해 길을 찾았으니 정말 제가 봉사를 통해 준 것보다는 받은 게 참 많죠. 저희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김 씨는 ‘사랑의 집수리’의 창립 멤버로 ‘사랑의 집수리’가 자리 잡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일반 봉사자들을 구하는 것도, 후원자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각종 단체에서 봉사활동에 일손을 보태고 일반 회원들이 조금이나마 후원금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처음 1,004명이 목표였던 후원자 수는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해 1,034명이 되었다. 모임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열성을 다한 김 씨에게는 법인이사의 직함이 내려졌고, 그는 이제는 봉사정신과 책임감까지 지닌 봉사자가 되었다.
‘사랑의 집수리’가 행한 따뜻한 보살핌
사랑의 집수리는 지난 2005년부터 안양지역에서 낙후되고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곰팡이가 가득 피고, 추위에는 난방은커녕 단열도 안 되는 집, 가구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전자제품이 구비되지 않아 의생활과 식생활마저 위협하는 집에 ‘사랑의 집수리’의 손길이 닿으면 ‘진정한 의미의 집’이 되었다. 단열, 시설개조, 보일러 교체, 미장, 목공은 기본이고, 장애 어르신을 위한 화장실 개조와 이주노동자들의 쉼터 샤워실 개축, 지붕 처마 개조 등 점차 활동이 다양해졌다.
봉사는 주로 독거노인, 장애인 가정, 새터민을 위해 이루어지고, 동사무소나 복지사의 추천을 통해 실질적으로 집수리가 꼭 필요한지 심사 후에 대상으로 선정된다. 집수리는 대략 9시부터 시작하는데, 우선 미팅부터 한다. 미팅에서 전문 봉사자(기술자)는 일반 봉사자들의 역할 분담을 하고 어떻게 봉사활동이 진행될지 계획을 설명한다. 그 후 봉사자들은 각자가 맡은 일을 한다. 5시에서 7시 정도가 되면 일을 마무리한다.
최근에는 ‘황토방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황토방 프로젝트’ 중 하나로 장애어린이 전용 보육시설인 희망특수어린이집에 황토방을 시공했다. 희망특수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이용하는 휠체어 때문에 시멘트가 깨지고 장판이 뜯어져있었다. ‘사랑의 집수리’는 방법을 고민했다. 무엇보다 바닥이 튼튼해야하고, 친환경적으로 지어져야 했다. 단열효과는 최대한으로 하되 황토방으로 해도 아이들이 흙을 파내거나 벽을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균열이 난 시멘트를 모두 긁어내고 황토로 채운 뒤 철판을 덮었다. 그 후에 장판을 덮자 이제는 휠체어를 타도 걱정 없었다. 벽지 대신 한지를 이용하고 허리 아래에는 삼나무를 이용하여 벽을 훼손하지 않게끔 마감했다. 전통황토방 시공법을 재현하느라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갔지만 앞으로는 아이들이 피부병이나 실내 오염된 공기 때문에 발생하는 기관지염 등에서 벗어날 것이었다.
내가 편하면 어려운 사람이 안 보여요
김 씨는 ‘사랑의 집수리’ 봉사가 기술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아니라며 많은 이들에게 참여를 부탁했다. 이 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며, 간단한 세간 정리나 짐 나르기, 모기장 설치 등 일반인들의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가 ‘사랑의 집수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다른 사람을 도우며 느끼는 행복’을 다른 이들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 씨는 봉사활동을 마무리하고 전과 달리 깨끗하고 화사해진 집을 둘러볼 때, 그 집에서 원래 생활하던 이들이 김 씨의 손을 꼭 맞잡고 감사하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할 때 보람을 가장 크게 느낀다. 한 달에 두, 세 번 꽤 많은 주말 시간을 봉사에 투자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는 말이 진심으로 전해졌다.
“사람 마음이 그래요. 내가 편하게 살면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안 들어와요. 그런데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이 사람도 도와주고 싶고, 저 사람도 생활이 어렵겠다고 느껴져요. 봉사를 하면 할수록 앞으로 더 많은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죠. 어차피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에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 대신 제가 해야죠. 또 이 일을 할 만한 다른 사람이 있다면 제가 같이 해야 그 일이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취재 강나은 기자 naeun1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