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고 새 생명 얻었어요” [아름채 어르신 봉사단 김용자 봉사자]
“봉사하고 새 생명 얻었어요” [아름채 어르신 봉사단 김용자 봉사자]
by 안양교차로 2014.03.18
누구나 할 수 있는 밥 배식이지만, 김용자(72) 씨의 손놀림은 여느 봉사자들과 사뭇 다르다. 마치 수백 명 어르신들의 식사량을 아는 듯 먹을 만큼만 식판에 담아내는 것이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쌓아온 그녀의 봉사 내공 덕분이다.
노년의 행복과 보람을 몸소 보여주다
6년 전 어느 날, 김용자 씨는 의왕시 아름채노인복지관(이하 아름채복지관)에 첫 발을 내딛었다. 아름채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제공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즐겁고 행복했다. 어느덧 그녀는 아름채복지관의 단골손님이 되어있었다.
아름채복지관 내 어르신 봉사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도 그 즈음이었다. 아름채복지관에서의 취미 생활도 좋았지만,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봉사하고 싶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손을 놓아야만 했던 옛 기억도 떠올랐다. 그길로 봉사단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한지 어언 6년. 초보 봉사자였던 그녀는 어느새 어엿한 베테랑 봉사자가 되어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김 씨는 매주 월요일마다 아름채복지관 식당에서 밥을 배식하고 있다. 첫째 주와 넷째 주 월요일은 식재료 검사도 겸한다. 뿐만 아니라 밥 배식이 끝나는 오후 1시가 되면 식당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한다. 일주일에 한 번, 4시간여에 걸친 길지 않은 봉사지만, 일흔이 넘은 나이를 생각하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김 씨가 밥 배식을 하는 월요일이면 아름채복지관의 영양사들의 얼굴이 유독 밝아진다.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식사를 하러 오시는 어르신들의 식사량을 거의 꿰뚫고 있는 것. 각자에게 맞는 정량만 배식하니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밥 안 남겨서 좋고, 아름채복지관 입장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적게 나와 좋다.
“아무래도 귀한 음식을 아끼게 되니 영양사 선생님들이 좋아하죠. 가끔 내가 힘든 소리하면 영양사 선생님들이 ‘어르신 없으면 우린 어떻게 하냐’며 엄살을 떨어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겠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정말 좋죠.(웃음)”
아름채복지관에서 봉사하지 않는 날 중 이틀은 의왕시니어클럽에서 배즙, 양파즙 등 각종 액즙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그녀가 이 일을 통해 받는 보수는 20만 원 정도.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고, 의왕시니어클럽 운영도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여기에 교회에서의 봉사들까지 합치면 그녀의 일주일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간다.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 있는 노년을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보람 있게 보내는 법을 그녀는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6년 전 어느 날, 김용자 씨는 의왕시 아름채노인복지관(이하 아름채복지관)에 첫 발을 내딛었다. 아름채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제공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즐겁고 행복했다. 어느덧 그녀는 아름채복지관의 단골손님이 되어있었다.
아름채복지관 내 어르신 봉사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도 그 즈음이었다. 아름채복지관에서의 취미 생활도 좋았지만,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봉사하고 싶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손을 놓아야만 했던 옛 기억도 떠올랐다. 그길로 봉사단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한지 어언 6년. 초보 봉사자였던 그녀는 어느새 어엿한 베테랑 봉사자가 되어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김 씨는 매주 월요일마다 아름채복지관 식당에서 밥을 배식하고 있다. 첫째 주와 넷째 주 월요일은 식재료 검사도 겸한다. 뿐만 아니라 밥 배식이 끝나는 오후 1시가 되면 식당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한다. 일주일에 한 번, 4시간여에 걸친 길지 않은 봉사지만, 일흔이 넘은 나이를 생각하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김 씨가 밥 배식을 하는 월요일이면 아름채복지관의 영양사들의 얼굴이 유독 밝아진다.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식사를 하러 오시는 어르신들의 식사량을 거의 꿰뚫고 있는 것. 각자에게 맞는 정량만 배식하니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밥 안 남겨서 좋고, 아름채복지관 입장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적게 나와 좋다.
“아무래도 귀한 음식을 아끼게 되니 영양사 선생님들이 좋아하죠. 가끔 내가 힘든 소리하면 영양사 선생님들이 ‘어르신 없으면 우린 어떻게 하냐’며 엄살을 떨어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겠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정말 좋죠.(웃음)”
아름채복지관에서 봉사하지 않는 날 중 이틀은 의왕시니어클럽에서 배즙, 양파즙 등 각종 액즙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그녀가 이 일을 통해 받는 보수는 20만 원 정도.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고, 의왕시니어클럽 운영도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여기에 교회에서의 봉사들까지 합치면 그녀의 일주일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간다.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 있는 노년을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보람 있게 보내는 법을 그녀는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봉사 주고 건강 받은 ‘끈끈한 사이’
지금은 건강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김 씨지만, 그녀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3년여 전 청천벽력 같은 위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녀가 위암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곳은 다름 아닌 그녀의 봉사처, 아름채복지관이었다.
김 씨는 어느 날부턴가 이상할 정도로 밥이 입으로 안 들어갔다. 소화도 잘 안 되는 듯했고, 밥맛도 없었다. 식사량은 현저하게 줄어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을 정도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 큰 무리가 없었고, 건강검진에서도 이상한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그대로 일상을 이어나갔다. 그런 김 씨에게 치유의 힌트를 준 사람은 아름채복지관 영양사였다. 봉사 후 그녀가 먹는 밥이 이상할 정도로 적은 것에 의문을 품은 것. 영양사는 “왜 이렇게 못 드시냐”며 김 씨를 아름채복지관 간호사에게로 데려갔고, 간호사는 빠른 시일 내에 내과에 가서 내시경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혹시나 하며 받은 내시경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좋겠다”고 했고, 그녀는 딸과 함께 강남의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기를 여러 날. 결과는 위암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암이 1.5기 정도로 비교적 초기에 발견됐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위의 3분의 2를 잘라낸 끝에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때 영양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병을 더 크게 키웠을 거예요. 제가 여기서 봉사한 것 이상으로 큰 보답을 받게 된 셈이죠.”
수술 후 누구보다 김 씨를 걱정해줬던 사람들도 단연 아름채복지관 사람들이었다. 그 마음을 알았기에 그녀는 수술 후 한 달 만에 다시 밥주걱을 들었고, 지금껏 사랑을 담은 배식을 해나가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고 아름채복지관을 찾아 봉사할 거라는 김 씨. 그녀와 아름채복지관의 끈끈한 인연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듯하다.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
지금은 건강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김 씨지만, 그녀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3년여 전 청천벽력 같은 위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녀가 위암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곳은 다름 아닌 그녀의 봉사처, 아름채복지관이었다.
김 씨는 어느 날부턴가 이상할 정도로 밥이 입으로 안 들어갔다. 소화도 잘 안 되는 듯했고, 밥맛도 없었다. 식사량은 현저하게 줄어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을 정도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 큰 무리가 없었고, 건강검진에서도 이상한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그대로 일상을 이어나갔다. 그런 김 씨에게 치유의 힌트를 준 사람은 아름채복지관 영양사였다. 봉사 후 그녀가 먹는 밥이 이상할 정도로 적은 것에 의문을 품은 것. 영양사는 “왜 이렇게 못 드시냐”며 김 씨를 아름채복지관 간호사에게로 데려갔고, 간호사는 빠른 시일 내에 내과에 가서 내시경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혹시나 하며 받은 내시경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좋겠다”고 했고, 그녀는 딸과 함께 강남의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기를 여러 날. 결과는 위암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암이 1.5기 정도로 비교적 초기에 발견됐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위의 3분의 2를 잘라낸 끝에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때 영양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병을 더 크게 키웠을 거예요. 제가 여기서 봉사한 것 이상으로 큰 보답을 받게 된 셈이죠.”
수술 후 누구보다 김 씨를 걱정해줬던 사람들도 단연 아름채복지관 사람들이었다. 그 마음을 알았기에 그녀는 수술 후 한 달 만에 다시 밥주걱을 들었고, 지금껏 사랑을 담은 배식을 해나가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고 아름채복지관을 찾아 봉사할 거라는 김 씨. 그녀와 아름채복지관의 끈끈한 인연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듯하다.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