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로 ‘마음의 그릇’ 예쁘게 빚었어요” [삼영운수 여심회 임상미 부회장]
“봉사로 ‘마음의 그릇’ 예쁘게 빚었어요” [삼영운수 여심회 임상미 부회장]
by 안양교차로 2014.03.04
중국발 미세 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날이었다. 거리로 나선 이들이 먼지를 조금이라도 덜 먹기 위해 외투에 고개를 파묻은 가운데 어디선가 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진원지는 평촌순복음사랑의교회 2층에 자리 잡은 사랑의 양로원이었다. 그곳에서 봉사하러 가기 전날이 그 어떤 때보다도 설렌다는 그녀, 삼영운수 여심회 임상미(51) 부회장을 만났다.
설렘과 행복이 어우러진 시간
사랑의 양로원 입구로 들어서니 파란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삼영운수 여심회 회원들이었다.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오가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여심회 부회장 임상미 씨였다.
임 씨는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목욕시키던 중이었다. 욕실에 들어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할머니의 옷을 벗긴 그녀는 “물 온도 괜찮으세요?”라고 말하며 친절하게 미소 지었다. “응, 괜찮아. 어서 해.” 그녀의 정성어린 손길이 할머니의 몸 구석구석으로 찾아들어갔다. 한결 개운한 표정을 짓던 할머니가 별안간 “꺄르르” 아기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임 씨의 손이 할머니의 겨드랑이로 다가든 것이었다. 할머니의 웃음소리에 맞춰 함께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 즐거움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덩달아 행복이 솟아올랐다.
“어르신들은 가만히 보면 아기 같아요. 어쩜 그리 순수하시고 귀여우신지. 이러니 제가 어르신들을 안 뵙고 싶겠어요? 어젯밤에는 여기 온다는 생각에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잔걸요.(웃음)”
사랑의 양로원 입구로 들어서니 파란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삼영운수 여심회 회원들이었다.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오가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여심회 부회장 임상미 씨였다.
임 씨는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목욕시키던 중이었다. 욕실에 들어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할머니의 옷을 벗긴 그녀는 “물 온도 괜찮으세요?”라고 말하며 친절하게 미소 지었다. “응, 괜찮아. 어서 해.” 그녀의 정성어린 손길이 할머니의 몸 구석구석으로 찾아들어갔다. 한결 개운한 표정을 짓던 할머니가 별안간 “꺄르르” 아기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임 씨의 손이 할머니의 겨드랑이로 다가든 것이었다. 할머니의 웃음소리에 맞춰 함께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 즐거움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덩달아 행복이 솟아올랐다.
“어르신들은 가만히 보면 아기 같아요. 어쩜 그리 순수하시고 귀여우신지. 이러니 제가 어르신들을 안 뵙고 싶겠어요? 어젯밤에는 여기 온다는 생각에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잔걸요.(웃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원칙, 봉사
매달 2번 가량 사랑의 양로원을 찾는다는 여심회. 삼영운수 소속 여성 버스기사들의 모임인 여심회는 4년 전 창립된 뒤 줄곧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으며, 이는 여심회 창립 멤버인 임 씨도 마찬가지다. 임 씨를 비롯한 여심회 회원들은 사랑의 양로원 외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정기 봉사일은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봉사에 매진하고 있는 것.
사실 버스기사 일과 봉사를 병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라지만, 근무일에는 새벽에 나갔다가 다음날 새벽에 들어오기 때문에 고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 씨는 끊임없이 봉사 현장을 찾아다닌다.
“누가 시켰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봉사를 하면서 큰 보람과 기쁨을 얻고, 더불어 삶의 활력도 되찾으니 열심히 하는 거지요.”
열혈 봉사자인 임 씨도 처음 봉사를 시작할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봉사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거니와, 봉사자로 활동하면서 마주치는 일들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 그녀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처음에는 책임감으로 봉사했다”고 고백했다.
“봉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말 힘들었어요. 어르신들 기저귀 갈아드리면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데, 그런 게 싫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을 한 번, 두 번 뵈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부모님 생각도 나고, ‘나도 늙으면 별 수 없지’하면서 동정심도 들고, 또 정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친부모님처럼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죠.”
이제 봉사는 임 씨의 삶에서 일종의 ‘원칙’이 됐다. ‘쉬는 날, 어떤 일보다도 먼저 봉사를 한다’는 마음속 원칙이 생긴 것. 운전을 하다가 짬이라도 나면 봉사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정도라고. 그녀는 “봉사하면 드리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더 많다”며 봉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봉사를 하면서 이해심과 포용심이 굉장히 넓어졌어요. 매사에 감사하게 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도 생겨났죠. ‘마음의 그릇’이 아름답게 빚어졌다고 할까요?”
매달 2번 가량 사랑의 양로원을 찾는다는 여심회. 삼영운수 소속 여성 버스기사들의 모임인 여심회는 4년 전 창립된 뒤 줄곧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으며, 이는 여심회 창립 멤버인 임 씨도 마찬가지다. 임 씨를 비롯한 여심회 회원들은 사랑의 양로원 외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정기 봉사일은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봉사에 매진하고 있는 것.
사실 버스기사 일과 봉사를 병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라지만, 근무일에는 새벽에 나갔다가 다음날 새벽에 들어오기 때문에 고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 씨는 끊임없이 봉사 현장을 찾아다닌다.
“누가 시켰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봉사를 하면서 큰 보람과 기쁨을 얻고, 더불어 삶의 활력도 되찾으니 열심히 하는 거지요.”
열혈 봉사자인 임 씨도 처음 봉사를 시작할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봉사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거니와, 봉사자로 활동하면서 마주치는 일들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 그녀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처음에는 책임감으로 봉사했다”고 고백했다.
“봉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말 힘들었어요. 어르신들 기저귀 갈아드리면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데, 그런 게 싫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을 한 번, 두 번 뵈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부모님 생각도 나고, ‘나도 늙으면 별 수 없지’하면서 동정심도 들고, 또 정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친부모님처럼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죠.”
이제 봉사는 임 씨의 삶에서 일종의 ‘원칙’이 됐다. ‘쉬는 날, 어떤 일보다도 먼저 봉사를 한다’는 마음속 원칙이 생긴 것. 운전을 하다가 짬이라도 나면 봉사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정도라고. 그녀는 “봉사하면 드리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더 많다”며 봉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봉사를 하면서 이해심과 포용심이 굉장히 넓어졌어요. 매사에 감사하게 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도 생겨났죠. ‘마음의 그릇’이 아름답게 빚어졌다고 할까요?”
그녀의 ‘봉사 세상’은 언제나 무지갯빛
누구나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 임 씨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라는 제목의 사연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그녀는 결혼 직후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30년에 가까운 세월은 그녀와 시어머니를 모자지간처럼 만들어줬다. 하지만 세월은 정과 더불어 병마도 함께 키웠다. 시어머니는 모든 것을 잊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린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시어머니를 요양기관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를 거기에 모시고 오는데 눈물이 계속 나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정말 마음이 아팠죠. 돌아가신 지금도 종종 시어머니가 그리워요.”
강원도에서 사시는 친정어머니는 현재 요양시설에서 생활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봉사하는 내내 친정어머니가 생각나고, 더욱더 정성을 쏟게 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거기서도 누군가가 저처럼 봉사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이유에서라도 당연히 어르신들을 열심히 모셔야죠.”
어르신들을 돌보며, 각종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며 봉사에 전념하는 임 씨. 거센 중국발 미세 먼지가 만든 뿌연 세상도 봉사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막기 힘들어 보인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봉사할 수 있다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그녀의 세상은 언제나 무지갯빛이다.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
누구나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 임 씨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라는 제목의 사연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그녀는 결혼 직후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30년에 가까운 세월은 그녀와 시어머니를 모자지간처럼 만들어줬다. 하지만 세월은 정과 더불어 병마도 함께 키웠다. 시어머니는 모든 것을 잊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린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시어머니를 요양기관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를 거기에 모시고 오는데 눈물이 계속 나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정말 마음이 아팠죠. 돌아가신 지금도 종종 시어머니가 그리워요.”
강원도에서 사시는 친정어머니는 현재 요양시설에서 생활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봉사하는 내내 친정어머니가 생각나고, 더욱더 정성을 쏟게 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거기서도 누군가가 저처럼 봉사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이유에서라도 당연히 어르신들을 열심히 모셔야죠.”
어르신들을 돌보며, 각종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며 봉사에 전념하는 임 씨. 거센 중국발 미세 먼지가 만든 뿌연 세상도 봉사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막기 힘들어 보인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봉사할 수 있다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그녀의 세상은 언제나 무지갯빛이다.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