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안양호스피스선교회 권경란 봉사실장 - “미소 한 송이면 그걸로 족해요”

안양호스피스선교회 권경란 봉사실장 - “미소 한 송이면 그걸로 족해요”

by 안양교차로 2013.10.14

연분홍 가운과 단아한 외모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오늘도 호스피스 병동 이곳저곳을 바쁘게 오간다. 환자들의 마지막을 행복과 편안함으로 장식하기 위한 아름다운 움직임이다. 고된 하루에도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봉사실장 권경란 씨의 입술은 여전히 바른 호선을 그리고 있다.
환자를 위한 그녀의 열정
권경란 씨는 메트로병원 호스피스실의 터줏대감이다. 150여 명의 봉사자들을 총괄 관리하여 호스피스 병동 환자 개개인에게 맞춤식 봉사를 제공하는 것이 그녀의 주요 임무다. 병원에 도착한 봉사자들은 먼저 호스피스실에 들러 경란 씨에게 건강, 심리상태, 요구사항 등 환자에 대한 전반적인 브리핑을 받고 나서야 환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이를 위해 경란 씨는 의료진과 함께 오전, 오후 회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환자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주일새 여러 가지 특이사항이 발생할 수 있거든요. 봉사자들이 환자분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드리는 거죠.”
호스피스 병동 봉사자들은 여타 기관과는 다르게 환자들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안양호스피스선교회에서는 ‘호스피스 봉사자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과정을 총괄 관리하는 이도 경란 씨다. 1년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 과정은 총 13주에 걸쳐 진행되며, 매주 3시간씩의 이론 교육 및 20시간의 실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기수당 30여 명의 봉사자들이 교육을 받는데, 누적 교육생만 해도 2,00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실제 봉사여부를 떠나서 이 과정에는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교육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리죠. 이것만으로도 참 의미 있는 시간인 것 같아요.”
우연이 운명으로 꽃피다
경란 씨는 지난 2000년 안양호스피스선교회와 연을 맺었다. 늦깎이 음대생 시절, 한 교양 과목 교수가 호스피스에 대한 과제를 내준 것이 계기가 됐다. 그녀는 안양 지역의 호스피스 병동을 찾기 시작했고, 때마침 눈에 띈 곳이 안양호스피스선교회였다.
“당시 간사님을 찾아뵙고 인터뷰해서 과제를 제출했는데,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때마침 ‘호스피스 봉사자 양성 과정’ 교육생을 모집하기에 바로 신청했죠.”
교육 수료 후 대학원 진학, 음악 강의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면서 미처 봉사하지 못했다는 경란 씨.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봉사에 대한 열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뜻을 펼칠 기회는 2005년에 찾아왔다. 당시 안양호스피스선교회에서 간사를 모집하고 있었던 것. 우연히 모집 공고를 발견한 그녀는 곧바로 책임목사와 만나 면접을 봤고,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5년 9월 1일, 첫 출근도장을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함께할 인연이었어요. 조금 늦게 이곳을 찾은 것뿐이죠.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나요?(웃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
경란 씨는 ‘사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환자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며 담담하게 고백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도 환자들을 이해하고 아끼며 사랑한다고.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마음에 와 닿는 무언가가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 인생이 그리 긴 게 아니잖아요. 그 짧은 인생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내왔는데 이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시간을 아끼게 되고,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조금 더 보람 있는 일을 찾게 되고. 이 모든 것이 제게 마음을 열어준 환자분들 덕분이에요.”
햇살 좋은 가을날, 경란 씨는 환자들의 마지막 길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는 ‘행복 동반자’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자신의 손을 잡은 환자들의 얼굴에 가을날처럼 따스한 미소가 가득 들어차기를. 그녀는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를 신에게 바친다.
“이 일은 저의 분신(分身)이에요. 환자분들을 빼놓고는 제 후반기 인생을 말할 수 없죠. 저는 그저 환자분들의 아름다운 미소 한 송이면 그걸로 족해요. 그것뿐이에요.”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