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책 읽어주는 모녀 양미영, 이은솔 “아이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어요”

책 읽어주는 모녀 양미영, 이은솔 “아이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어요”

by 안양교차로 2013.08.27

이들의 목소리가 아이들 귓가에 도달하기까지의 걸리는 시간, 1초. 그리고 그 목소리가 아이들의 기억에 뚜렷이 남는 기간, 일생. 양미영, 이은솔 모녀는 이야기의 위대한 힘을 믿기에 오늘도 책을 들고 아이들에게 달려간다. 그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고백을 위해.
고백 하나. 미안해요
은솔 양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충훈부지역아동센터에 처음 방문한 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따라갔던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은솔 양은 당시의 심정을 솔직하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봉사점수가 필요하기도 했고, 엄마가 함께 해보자고 권하기도 해서 갔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친동생처럼 느껴지고 정이 가더라고요. 이제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처음에 그런 마음으로 갔던 게 아직도 미안해요.”
미영 씨와 은솔 양은 비단결 같은 마음씨 못지않게 남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미영 씨는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동화 읽는 어른 모임’ 활동을 꾸준히 해온 책 읽기 베테랑이고, 은솔 양은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닐 만큼 영어실력이 출중하다. 이를 바탕으로 모녀는 매주 한 시간씩 아이들을 찾아가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저는 한글 동화책을, 딸아이는 영어 동화책을 각각 30분씩 읽어주고 있어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가끔씩 못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정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고백 둘. 고마워요
미영 씨가 충훈부지역아동센터를 알게 된 건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은솔 양과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안양지역의 여러 공부방을 알아봤지만 녹록치 않았던 것. 미영 씨는 이신애 센터장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고, 드디어 아이들과 함께할 기회를 얻었다.
“센터장님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꾸준한 활동이었어요. 봉사도 아이들과의 약속인데,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뜨리면 결국 아이들이 상처받으니까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곳을 찾은 지도 벌써 3년. 미영 씨와 은솔 양은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는지 모르겠다며 미소 지었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아이들과의 정도 돈독해졌을 터. 모녀는 “아이들에게 고맙다”며 하나로 입을 모았다.
“처음에 겸연쩍어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무릎에 앉아서 같이 책을 읽어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는 게 쉽지 않은데 참 고마운 일이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백 셋. 그리고 사랑해요
이제 아이들과의 만남은 모녀에게 삶의 일부분이 돼버렸다.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아이들이 생각나 빙그레 웃게 되고, 새로운 동화책이 없나 한 번 더 찾아보게 된다고. 미영 씨는 아이들에게 봉사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가 아이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거죠. 빨리 가는 것보다는 천천히, 하지만 많은 아이들과 함께. 이것이 제가 아이들과 만나는 이유예요.”
미영 씨가 가정도서관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도서관에 가기 여의치 않은 동네 아이들이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 미영 씨는 이러한 노력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한편 은솔 양은 자기 또래의 사람들을 모아 봉사동아리를 만들고 싶단다. 이미 모녀의 삶 깊숙이 봉사가 스며들어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을 주되 동정심, 우월감을 갖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에게 다가가면 마음을 여시거든요. 서로의 마음을 여는 것. 이것이 봉사의 첫걸음인 것 같아요.”
오늘도 모녀는 책을 들고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스치는 인연이 아닌, 진정 행복하고 즐거운 인연을 만들어가기 위해. 사랑하는 아이들을 더욱더 사랑하기 위해.
취재 강진우 기자 bohemti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