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P도슨트 작품해설팀 김희경 씨 “봉사만 열심히 해도 10년은 젊어 보이죠”
APAP도슨트 작품해설팀 김희경 씨 “봉사만 열심히 해도 10년은 젊어 보이죠”
by 안양교차로 2013.07.15
“내가 몇 살로 보여요?” 지난 21일 열렸던 안양 시민축제 현장에서 만난 김희경 씨는 현장에서 가장 인기 많은 봉사자였다. 나이가 벌써 환갑을 넘기고도 40대처럼 아이들에게 페이스페인팅을 해줄 만큼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어 통역, 예술작품 해설, 장애인 차량 봉사까지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그는 “시간이 없어서 봉사를 못한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다”며 “80살까지 봉사하면서 살 것”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있을 때 봉사해두라
시작은 법무부 범죄예방위원회 동안지구협의회에서 출소자들을 돕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갱생’을 돕는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하면 할수록 봉사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과천에 살다가 2000년 안양으로 이사 온 뒤부터는,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1365콜 차량봉사도 병행했다. 매주 한 번씩 자기 차를 운전하면서 장애인들의 발이 되어주는 일이다.
“주변에서 ‘마음이 있을 때 봉사해두라’고 하는데 그 말이 오래 남더라고요. 어려운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시작했던 게 차량 봉사였어요.”
이후로는 시간이 남는 걸 못 견딜 만큼 봉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수원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위해 통역 봉사를 하기도 했다. 대학 때 배웠던 일본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따로 자격증을 딸 만큼 열성을 보였다고. 그러고도 일주일에 1~2일 비는 것을 못 참아서 “남는 게 시간인데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다”며 예술작품 해설 봉사자에 도전했다. 2005년 안양에서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그는 도슨트 1기생으로 뽑혔다.
마음이 있을 때 봉사해두라
시작은 법무부 범죄예방위원회 동안지구협의회에서 출소자들을 돕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갱생’을 돕는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하면 할수록 봉사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과천에 살다가 2000년 안양으로 이사 온 뒤부터는,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1365콜 차량봉사도 병행했다. 매주 한 번씩 자기 차를 운전하면서 장애인들의 발이 되어주는 일이다.
“주변에서 ‘마음이 있을 때 봉사해두라’고 하는데 그 말이 오래 남더라고요. 어려운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시작했던 게 차량 봉사였어요.”
이후로는 시간이 남는 걸 못 견딜 만큼 봉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수원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위해 통역 봉사를 하기도 했다. 대학 때 배웠던 일본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따로 자격증을 딸 만큼 열성을 보였다고. 그러고도 일주일에 1~2일 비는 것을 못 참아서 “남는 게 시간인데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다”며 예술작품 해설 봉사자에 도전했다. 2005년 안양에서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그는 도슨트 1기생으로 뽑혔다.
봉사 취미생활은 아니지만 보람 커
“저는 작품해설 봉사도 일본인 관광객을 위주로 했어요. 조금 특별한 경우죠. 일주일 전에 예약이 들어오면 준비를 했다가 안양예술공원에서 작품해설을 해줬어요.”
예술 문외한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작품해설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6주간의 양성교육을 거치고도 현장에서 여러 번 트레이닝을 거쳤다. 나이가 많으니 2배로 노력하자고 결심하고 도전한 결과 최고령 도슨트로 활약하게 되었다.
“봉사를 하고 보니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하게 됐나’ 후회가 될 때가 있어요. 젊어서는 애들 키우느라 바빴지만, 나이가 마흔이 넘고 시간이 많아지면 당연히 봉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돈과 시간이 투자되는 일이니 취미생활은 아니죠. 하지만 보람을 생각하면 봉사만큼 가치 있는 일이 없어요.”
나이가 들면 육체를 생기 있고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게 만드는 일이 흔치 않다. 봉사란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겁고 건강해지기 때문에 하는 것. 김희경 씨 “봉사를 하면 우울증이 없어지고, 빈둥댈 시간이 없으니 생활의 밀도가 더욱 커져서 사는 게 사는 것 같다”고 가 말했다.
“저는 작품해설 봉사도 일본인 관광객을 위주로 했어요. 조금 특별한 경우죠. 일주일 전에 예약이 들어오면 준비를 했다가 안양예술공원에서 작품해설을 해줬어요.”
예술 문외한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작품해설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6주간의 양성교육을 거치고도 현장에서 여러 번 트레이닝을 거쳤다. 나이가 많으니 2배로 노력하자고 결심하고 도전한 결과 최고령 도슨트로 활약하게 되었다.
“봉사를 하고 보니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하게 됐나’ 후회가 될 때가 있어요. 젊어서는 애들 키우느라 바빴지만, 나이가 마흔이 넘고 시간이 많아지면 당연히 봉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돈과 시간이 투자되는 일이니 취미생활은 아니죠. 하지만 보람을 생각하면 봉사만큼 가치 있는 일이 없어요.”
나이가 들면 육체를 생기 있고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게 만드는 일이 흔치 않다. 봉사란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겁고 건강해지기 때문에 하는 것. 김희경 씨 “봉사를 하면 우울증이 없어지고, 빈둥댈 시간이 없으니 생활의 밀도가 더욱 커져서 사는 게 사는 것 같다”고 가 말했다.
“바쁘다고요? 봉사자들도 시간 쪼갠답니다”
취재 오혜교 기자봉사를 하는 주부들은 집안일을 소홀히 하기 쉬운데, 김희경 씨는 “둘 다 잘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한 생활을 좋아해서 봉사가 성격과도 잘 맞는다고. 그는 몇 해 전부터는 매년 안양시민축제 때마다 페이스페인팅 봉사도 겸하고 있다.
“축제 때 작품을 가져와서 해설할 수는 없으니 뭔가 특별한 재능을 또 발견한 거죠. 여자들은 화장도 하고, 눈썹도 그릴 줄 아니까 이게 딱 맞더라고요. 사람들은 우리가 페이스페인팅 전문가인 줄 아는데 작품해설사라고 하면 깜짝 놀라요(웃음).”
물론 봉사를 하면서 늘 좋을 때만 있는 것은 아닐 터. 때로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는 건 봉사단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딱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오히려 배움을 얻을 때가 많기에 즐기면서 하고 있다고.
“저는 30~40대에 봉사 안 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저와 같은 또래인 분들도 봉사를 하루 빨리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부터 시작하세요. 설거지면 설거지, 음식 만드는 것도 봉사가 될 수 있죠.”
시간이 없어서 봉사를 못한다는 말은 핑계란다. 하루 24시간은 봉사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 봉사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것이지 남는 시간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희경 씨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봉사하며 지내는 삶이 너무 행복해서 연휴가 제일 싫다”며 “살기 좋은 도시 안양에서 살면서 80살까지 봉사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봉사를 하는 주부들은 집안일을 소홀히 하기 쉬운데, 김희경 씨는 “둘 다 잘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한 생활을 좋아해서 봉사가 성격과도 잘 맞는다고. 그는 몇 해 전부터는 매년 안양시민축제 때마다 페이스페인팅 봉사도 겸하고 있다.
“축제 때 작품을 가져와서 해설할 수는 없으니 뭔가 특별한 재능을 또 발견한 거죠. 여자들은 화장도 하고, 눈썹도 그릴 줄 아니까 이게 딱 맞더라고요. 사람들은 우리가 페이스페인팅 전문가인 줄 아는데 작품해설사라고 하면 깜짝 놀라요(웃음).”
물론 봉사를 하면서 늘 좋을 때만 있는 것은 아닐 터. 때로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는 건 봉사단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딱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오히려 배움을 얻을 때가 많기에 즐기면서 하고 있다고.
“저는 30~40대에 봉사 안 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저와 같은 또래인 분들도 봉사를 하루 빨리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부터 시작하세요. 설거지면 설거지, 음식 만드는 것도 봉사가 될 수 있죠.”
시간이 없어서 봉사를 못한다는 말은 핑계란다. 하루 24시간은 봉사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 봉사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것이지 남는 시간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희경 씨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봉사하며 지내는 삶이 너무 행복해서 연휴가 제일 싫다”며 “살기 좋은 도시 안양에서 살면서 80살까지 봉사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