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윤민식·헬렌 부부 “다문화가정도 봉사한다는 인식 심어줘야죠”

윤민식·헬렌 부부 “다문화가정도 봉사한다는 인식 심어줘야죠”

by 안양교차로 2013.07.15

윤민식?헬렌 부부 금요일 저녁, 안양 9동 한 빌라 지하실의 현관문이 열렸다. 안에서는 젊은 엄마와 아이가 밥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누추하긴 한데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으니까.” 윤민식 씨가 필리핀에서 온 아내 헬렌을 소개했다. 수줍어하는 헬렌은 왜 인터뷰를 하는지 어리둥절해했다. 취지를 설명하자 “우리가 하는 일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중장비기사와 영어강사의 첫 만남
두 사람은 요즘 말로 하면 ‘국제결혼’을 한 다문화가정이다. 지금부터 약 10년 전, 홍콩에서 공사 일을 하던 윤민식 씨가 현지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던 헬렌을 만나 연애를 했다. 두 사람은 첫 눈에 반했고, 1년 동안 홍콩에서 지내며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다.
윤민식 씨는 헬렌의 나라인 필리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장인?장모님을 직접 찾아뵙고 그곳에 함께 머물렀다. 관광이 아닌 수많은 식구들을 소개받고 필리핀의 생활상, 풍토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선택한 결정이었다.
“국제결혼이지만 물건을 교환하는 거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거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상대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하죠. 수저를 왼손에 드는지, 오른손에 드는지, 사고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었고 그게 도리라고 생각했어요.”(윤민식 씨)
하루를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인데, 남의 나라에서 몇 달을 머무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우리나라로 치면 군산 쯤 되는 필리핀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처가에서 그는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그리고 헬렌과 결혼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든 뒤에, 결혼식을 치르고 한국에 돌아왔다.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 시작한 봉사
처음에는 다문화가정으로서 안양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이들을 낳아서 기르면서 헬렌과 아이들이 한국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하는 게 남편의 숙제였다. 이번엔 헬렌의 차례였다. 헬렌은 안양전진상복지관의 도움을 받으며 한국 문화를 조금씩 익혀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봉사를 접하게 된 것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자는 것이 제 생각이었죠. 처음에 왔을 때 한국말도 모르고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는데 복지관에서 도움을 받았으니, 저도 안양시민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었어요.”(헬렌)
헬렌은 매달 한 번씩 안양시청 가족사랑봉사단을 통해 반찬배달을 하고 지역 아이들에게 필리핀 문화를 가르쳐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일이 바쁘고 불규칙적인 남편도 아내의 손에 이끌려 봉사에 발을 들였다. 봉사를 하면 할수록,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는 부부.
“처음에는 봉사를 어디에서 해야 할지 기준이 분명하지 않았어요. 시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봉사를 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곳에는 굳이 우리가 봉사를 하지 않아도 봉사할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우리처럼 없는 사람, 소외된 사람을 찾아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죠.”(윤민식 씨)
“작은 동네가 아니라 지구를 생각하며 살죠”
형편이 넉넉지 못한 환경이지만, 봉사는 부부가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고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법도 알려주었다. 한국과 필리핀의 만남이지만, 봉사를 통해 안양과 대한민국, 나아가서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살게 되었다는 부부.
“다문화가정은 대부분 형편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애들 엄마한테 일 나가라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렇게 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게 더 나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윤민식 씨)
처음엔 왜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냐며 불평하던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봉사를 다니면서 부쩍 철이 들었다고. 누가 보면 “지하실 방 살면서 무슨 봉사를 다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부부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보다 더 나은 가치를 선택했다고 믿는다.
“제가 헬렌에게 늘 말해요. 여보, 우리 작은 동네를 생각하지 말고 지구를 생각하자고. 당신이 나를 사랑해서 한국말을 배웠듯이, 우리도 어려운 사람을 생각해서 봉사를 해보자고.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밥 한 끼 먹는 건 똑같잖아요. 그러니 불평보다는 행복이 더 많죠.”(윤민식 씨)
다문화가정을 꾸린 그에게 주변에서 “국제결혼이 어떻냐”고 묻는 이들도 많다. 윤민식 씨는 “결혼은 거래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남편이 직장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나라에 가서 한 달 간 살아보라는 것. 윤민식 씨는 “왜 봉사를 시작했는지 되돌아보면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때문”이라며 “안양에 다문화가정들 중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