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사랑나눔 해병대 봉사단 주명식 단장 “항해사 은퇴하고 봉사로 새출발 합니다”

사랑나눔 해병대 봉사단 주명식 단장 “항해사 은퇴하고 봉사로 새출발 합니다”

by 안양교차로 2013.07.15

주명식 단장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2월 의왕시 해병대전우회 김기 씨를 인터뷰하면서였다. 해병대 모자를 눌러쓴 채 조용히 앉아있던 그가 왕년에 잘 나가던 항해사였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현재 ‘사랑나눔’이라는 봉사조직을 이끌고 있는 주명식 단장은 안양과 의왕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뱃사람의 순수함으로 봉사를 하다 보니 순수하게 공익을 위한 단체로 이끌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으니 봉사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관계를 떠난 순수한 봉사를 꿈꾸며
주명식 단장은 배를 타는 ‘마도로스’였다. 20년 전, 고기잡이배를 타고 유럽과 중동 지역을 누볐다. 바다의 고기길, 밤하늘 별무리까지 헤아리던 그는 당시 연봉 4만 불을 받던 잘 나가는 항해사였다. 해외의 선진 문물을 일찍이 접한 그는 성공한 기업들이 봉사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인상 깊게 보았다.
“외국에는 봉사단체가 참 많습니다. 나라마다 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어서 알고 보니 번 돈을 사회에 봉사로 환원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더라고요. ‘봉사’라는 개념을 몰랐던 저에게는 무척 생소한 모습이었죠.”
항해사로 퇴직한 뒤에 본격적으로 봉사에 뛰어든 것도 공익에 헌신하는 삶이 가치 있고 멋있어 보였기 때문. 뱃사람 출신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에 뛰어든 주명식 단장은 정치적 색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내 봉사문화에 실망하기도 했다. ‘이해관계를 떠나서 순수한 봉사를 위한 봉사’를 꿈꾸며 만든 조직이 바로 ‘사랑나눔 해병대 봉사단’이다. 전우애, 동료애로 뭉쳐 각계 전문가들이 좋은 일 한 번 해보자고 만든 조직이다.
“저처럼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 돈으로 봉사하는 사람, 교수님, 사장님 등 80여 명의 면면이 무척 다양합니다. 공통점이 있죠. 봉사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조직을 만들어보자는 겁니다.”
봉사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청계사 소속 녹향원 장애우들의 산행을 돕거나 벧엘의 집 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일, 복지관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드리는 일 등 사랑나눔 봉사단의 영역은 매우 넓다. 주명식 단장은 “단체 안에 실버봉사단을 비롯해 10여개 봉사 소모임이 있다”며 “내세우고 알리기 위한 봉사가 아니라,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손길로 돕자는 게 취지”라고 말했다.
신생 조직인 만큼 회원들 모두가 봉사에 대한 의욕이 넘친다. 소년소녀가장 돕기 활동, 장애인 관련 행사를 비롯해 지난해 12월에는 용산 전자회관에서 다문화가정을 위한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태원 상가에서 사업을 하는 회원을 통해 옷과 지갑 등을 공수해 선물로 전달한다. 어떤 행사든 진행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지만, 사랑나눔 봉사단은 십시일반 회원들의 도움의 손길로 매년 성공적으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단장이라고 해서 제가 돈을 제일 많이 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는 주로 몸으로 때웁니다(웃음). 돈에 대해 부담을 갖게 되면 봉사를 할 수가 없어요. 모든 행사는 할 수 있는 한 조력하고,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끌어가는 거죠.”
“봉사는 결코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게 주명식 단장의 생각이다. 아무리 능력이 좋고, 돈을 많이 갖고 있어도 봉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혼자서 소화해낼 수 없다는 것. 회원들 역시 이런 그의 생각에 동의해 봉사를 나갈 때마다 5~6명씩 팀을 이뤄 움직이고 있다.
“빚보증으로 26억 잃었지만…봉사하는 삶에 만족”
주명식 단장은 현재 주중에는 건물관리인으로 일하며 주말에 봉사에 전념하고 있다. 항해사로 퇴직한 뒤 많은 돈을 벌었지만, 빚보증을 잘못 서 26억을 날린 적도 있단다. 평생을 외길 걸어 번 돈을 하루아침에 날린 뒤, 허탈한 마음에 아내와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96년도의 일이었다. 한국에서 할 일은 더 이상 없다고 판단, 중국에서 농산물 장사를 하면서 눌러앉으리라 마음먹었다.
“2002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사람이 싫었지만 내 조국 아닙니까. 어떻게든 한국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자식과 사회에 보란 듯이 떳떳하게 사는 게 남은 제 인생의 꿈입니다.”
태평양을 안방처럼 드나들던 뱃사람의 기질로 무슨 일이든 못하랴. 거기다 험한 일까지 당했으니 봉사에 걸림이 될 것도 없다. 리더이지만 섬김의 자세로 궂은일에 솔선수범하는 것도 지난날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하면서 살 겁니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진입한 선진국이 되었다지만, 봉사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가 외국에 비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제 목표는 우리 봉사단이 안양, 의왕을 넘어 전국에서 ‘봉사의 멋’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는 겁니다. 칭찬릴레이에서도 더 많은 봉사자들이 발굴됐으면 좋겠네요.”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