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한국철도공사 황일상 과장 “지하철 기관사도 봉사합니다. 아무도 모르지만요.”

한국철도공사 황일상 과장 “지하철 기관사도 봉사합니다. 아무도 모르지만요.”

by 안양교차로 2013.07.15

황일상 과장은 올해로 입사 27년 차 된 베테랑 기관사다. 정년을 앞두고 은퇴 후 새로운 인생 계획을 준비하다 봉사에 투자하기로 했다. 우연히 복지관에서 목욕 봉사를 경험한 이후, 마사지와 때 밀기에 베테랑으로 어르신들에게 인기 있는 봉사자가 되었다. 그는 “연세 드신 분들이 혼자서 외롭게 사는 분들이 많다”며 “근무를 쉬는 날 어르신들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봉사에 남녀가 따로 있나요?”
제주도가 고향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선배들과 함께 동네 환경정화 활동을 벌였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빗자루를 들고 매일 새벽 동네 앞마당을 쓴 것이 최초의 봉사가 되었다. 고향을 떠나 안양에 올라온 뒤에는 결혼을 하고, 매일매일 생활에 매여서 한동안 봉사를 잊고 살았다.
“회사에서 봉사팀을 모집하는데 귀가 솔깃하더라고요. ‘아, 내가 한동안 봉사를 잊고 살았구나’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가입한 다음에는 이곳저곳 봉사처를 발굴하면서 봉사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저녁근무를 한 다음날인 휴일, 그는 복지관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만나고 있다. 안양수리장애인복지관도 그의 고정 봉사처 중 한곳. 주방에서 밥솥 들기 같은 힘쓰는 봉사는 모두 그의 몫이다. 직원들도 나서서 못하는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이제는 복지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고.
“식당봉사자들 중에 여자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무거운 건 남자가 들어야 하니까. 같이 설거지해주고 그러면 ‘남자가 여자 몫까지 다 한다’면서 놀라시라고요. 저로서는 뿌듯하고 보람 있죠.”
1천 시간 봉사로 사내에서 실버배지 받아
평촌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안양에서 아파트 동대표를 하며 봉사를 했다는 그. 아파트 관리를 잘해서 주민들 박수 한 번 받아보자고 시작한 봉사였는데, 보이지 않는 비리가 많아서 실망한 적도 많단다. 겉으로 멀쩡한 사람들이 자기 잇속을 차리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어르신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배울 점이 많다고.
지난해에는 사내에서 봉사를 1천 시간 넘게 한 공로로 실버배지를 받기도 했다. 복지관에서 목욕 봉사를 할 때 때밀이처럼 등을 밀어주자는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노인들은 뼈가 약하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미는 것보다 제가 살살 밀어드리는 걸 좋아하세요. 더불어 발마사지랑 지압도 해드리는데 인기가 최고입니다. 어떤 분들은 줄 게 없는데 고맙다고 사탕을 주기도 하세요. 그럴 때는 참 뿌듯하죠.”
봉사는 일을 하는 그의 태도도 바꾸어놓았다. 발차 전, 손님을 하나라도 더 태우려고 애를 태우게 된 것도 봉사를 하고 나서 생긴 변화다. 황일상 과장은 “어르신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이나 승객들을 대하는 마음이 같다”며 “출퇴근 시간대에는 미안한 마음에 방송을 한 번 더 하게 된다”고 말했다.
봉사는 골프만큼 즐거운 여가활동공공서비스직에 몸담고 있는 그는 봉사를 할 때도 강한 책임감을 갖는다고 했다. 배식을 할 때다 위생장갑을 철저하게 끼고, 청소를 워낙 꼼꼼하게 해서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배식을 끝내면 재빨리 개수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고, 공익요원들의 점심까지 일일이 챙긴다. “내가 즐거우니까 봉사를 하죠. 집에서도 봉사에 워낙 열심이다 보니 솔선수범하는 가장이 되어버렸죠. 지금도 아내 대신 시장에서 장을 봐와서 재료를 다듬는 일까지 제가 다 해요. 그러니 집사람도 그 모습을 보고 봉사에 동참할 수밖에요.”
황일상 과장은 봉사를 취미생활로 접근하면 재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서 적극적으로 나서면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골프만큼 즐거운 여가활동’이 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공공기관에서 봉사의 의미와 가치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 봉사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은데 기회를 못 찾은 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지하철이나 구청 같은 데서 봉사자를 모집하는 홍보지를 적극적으로 비치했으면 해요. 안양교차로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참 의미 있고 보람된 일입니다.”
황일상 과장은 또 “봉사는 삭막한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등불 같은 것”이라며 “앞으로 은퇴하게 되면 어르신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