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아시아의 창 이영아 소장 “봉사는‘기부’가 아니라 ‘나눔’입니다”

아시아의 창 이영아 소장 “봉사는‘기부’가 아니라 ‘나눔’입니다”

by 안양교차로 2013.07.15

낡은 공부방처럼 보이기도, 동네 주민들을 위한 사랑방 같기도 하다. 군포시 당동에 위치한 ‘아시아의 창’은 그러나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지원 단체다. 지난 69년도부터
시작돼 이어져온 명맥만도 벌써 40년이 넘는다. 센터를 총괄하는 이영아 소장은 “공장지대가 많은 안양과 군포에 머물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소통의 창구”라며 “일방적
인 ‘구제’가 아닌 ‘나눔’을 목적으로 한 다문화공간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의 삶을 대변하다
아시아의 창은 원래 안양의 유서 깊은 전진상 복지관에 있던 이주노동자 지원부서에서 출발했다. 지난 2007년 복지관이 폐관하면서 관장의 제안을 통해 이영아 소장을 비롯한 실 무자들이 독립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주노동자들의 도움으로 센터가 설립된 것이 지금은 여러 사람들의 후원과 봉사를 통해 안양과 군포 지역을 대표하는 이주노동자 지원 기관이 되었다.
“한국에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88년 아시안게임 이후예요. 동남아시아 국가에 한국이 비로소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지면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들이 몰 려들기 시작한 거죠.”
하지만 관광비자로 한국에 머물다 취업한 외국인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히면서 사회적 약자가 되었다. 초창기 인권침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각종 산업재해로 인한 피 해를 겪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늘었다. 아시아의 창은 이들에게 필요한 각종 법률 상담은 물론, 다문화 인권교육 프로그램과 한국어 교실 등을 운영하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아직까지 이주노동자의 삶이라는 건 제도적으로 굉장히 불안해요. 인권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껴안으려는 노력이 부족하죠. 우리는 군포지역 이주노동자 실태 조사를 통해 이들의 복지 현황을 지자체에 알리는 노력도 하고 있어요.”
타인의 삶을 전면적으로 만나는 일
‘아시아의 창’이라는 말처럼 서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온 이들을 위한 소통의 창구다. 딱딱한 지원 센터라기보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랑방’ 구실을 하며 남녀노소 편
안하게 머물다 가는 곳.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열등감 등을 담소로 풀어내기도 하고, 각자가 만든 음식을 가져와 나눠먹기도 한다. 100% 후원자들의 회비로
운영되다보니 그야말로 너나 없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꾸려가는 셈.
“2001년에 제가 네팔에 가서 1년 동안 살았어요. 그동안 모은 돈을 싹싹 긁어모아서 1천 만 원 들고 갔죠. 거기서 비로소 알게 된 거예요. 제3세계가 왜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
네팔은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어서 도로가 뚫릴 수가 없어요. 사회적으로 재투자가 안 되는 시스템인 거죠. 그 나라 청년들은 성공을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삶을 택해요. 그런 이들이 한국으로 오는 거예요.”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던 그에게 아시아의 창은 삶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노동법을 잘 안다는 이유로 시작했던 일이지만, 단순한 임금 체불상담뿐 아니라 교통사고 등에 연루된 사람을 돕는 일, 심지어 헤어진 애인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를 위로하는 일도 맡았다. 이영아 소장은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 사람이 살면서 겪는 전반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것”이라며 “이주노동자의 삶을 전면적으로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진 재능 나눌 때 성숙한 봉사 가능해”
이영아 소장은 올해 65년생으로 미혼이다. 일에만 파묻혀 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또래 친구들은 어느덧 가장이거나 살림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자유롭게 사는 삶이 좋지만, 때로는 그들이 부러운 적도 많다고. 풍족한 집에서 자라지 못했기에 어려운 젊은 나날을 보냈고, 노동운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키웠다. 그가 만난 노동자들은, 인생의 값진 의미를 알게 해준 반면교사다.
“공장에서는 아주머니들을 통해 딸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서는 특유의 낙천적인 삶을 배웠어요.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비록 사회적 약자지만, 에너지가 굉장히 넘쳐요. 그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기운을 얻고 큰 보람을 얻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이영아 소장을 보면서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 아니라,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옆집 필리핀 주부가 가져다준 과일과 한 끼 점심 식사 초대로 풍성해질 수 있는 공간. 아시아의 창은 그를 비롯한 여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운영될 수 있었다.
“실은 밖에서 캠페인을 진행할 때 도와주실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필요해요. 단순히 몸을 써서 돕는 것보다는 캠페인의 특징을 이해하고, 이주노동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젊은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네요. 꾸준히 봉사할 수 있는 분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이영아 소장은 또 “봉사는 자선하듯이 하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며 “내가 가진 재능을 남과 함께 나눌 때 성숙한 봉사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