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달팽이상담센터 정현숙 소장 “모래놀이치료로 아픈 마음 어루만져요”

달팽이상담센터 정현숙 소장 “모래놀이치료로 아픈 마음 어루만져요”

by 안양교차로 2013.07.15

달팽이상담센터는 소외되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무료 심리치료실이다. 안양제일교회 맞은편 건물 3층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센터는 정현숙 소장과 자원봉사자들의 전적인 헌신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관이나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센터가 3년째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봉사의 힘 때문이었다.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유행인 요즘, 자원봉사로 치료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달팽이상담센터를 만나보도록 하자.
‘60대 노인, 모래 만지다가 어머니 떠올리며 통곡’
어림짐작으로 20여 평 남짓한 공간.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실내에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소리 없는 ‘모래놀이치료’가 진행되고 있다. 피규어와 모래로 이뤄지는 모래놀이치료는 언어치료와 달리 상담자가 내담자의 행동과 놀이 분석만으로 심리를 파악하는 치료법이다.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을 앓는 아동 및 청소년, 심지어는 마음의 병을 앓는 노인들까지 모래놀이치료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60대가 넘은 분들이 순전히 모래 놀이를 하고 싶어서 오는 경우도 있어요. 어떤 분들은 모래를 만지면서 놀다가 갑자기 통곡을 하기도 해요. 모래에는 어머니를 상징하는 의미도 담겨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어린 시절의 설움이 떠오른 것이죠.”
센터를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상담료를 받지만,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들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에게는 무료로 상담을 해준다. 별다른 수익원이나 정부 지원금도 없이 민간 형태로 운영되는 센터는 인건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 센터를 운영하는 정현숙 소장을 포함해 6명의 치료사들이 자원봉사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2009년 사랑의 집수리 운동본부에 소속된 상담실에서 독립을 하게 된 센터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모래놀이 치료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지금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안양에서 모래놀이치료를 민간으로 운영하는 곳은 달팽이상담센터가 유일하다.
석사학위 가진 봉사자들…‘받은 재능의 10분의 1 나눈다’
“요즘은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다보니, 다양한 종류의 학생들이 센터를 찾아요. 가정 폭력이 있거나 우울증을 앓는 아이, 정서불안이 있는 아이들은 기성세대에게 진심을 털어놓지 않거든요. 모래치료는 말을 하지 않고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용하죠.”
봉사자들이 상담을 한다고 해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모래놀이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은 대부분 6~10년 차 경력자들이다. 일정한 대우를 받고 전문 상담사로 나서도 될 일이지만, 자신이 가진 재능을 조금씩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센터에 봉사로 헌신하고 있는 것.
“봉사하는 분들한테 늘 미안하죠. 충분한 사례를 하고 싶은데, 제가 거의 강제로 부탁을 드린 거니까(웃음). 그래도 돈으로 보상받지는 못하지만, 정기적으로 모여 스터디 모임을 꾸리면서 지식을 나누고 있어요. 공부하는 즐거움,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더 큰 거죠.”
정현숙 소장은 가족치료를 전공했지만, 아동?청소년 상담에 매력을 느껴 모래놀이 치료를 공부하게 되었다. 비록 큰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지만,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인격적 성장이 이뤄지는 것이 모래놀이치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그는 “봉사를 통해 가치 있는 인생을 산다는 느낌으로 큰 보람을 느낀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내담자를 돕지만 실은 그들 덕분에 내 삶에 의미가 풍요로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는 사랑’의 행복 알게 해준 봉사
센터의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하다보니 아쉬운 점도 있다. 상담할 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비상벨이나 CCTV 등의 안전장치가 없어서 마음이 쓰인다는 정현숙 소장. 최근 언론에서 내담자의 폭력적 행위로 복지사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안전장치 설치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위험 부담을 안고 상담을 하면서도 행복한 이유는 상담을 받은 이들이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하기 때문이죠.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이 몇 년 뒤 덕분에 잘 지낸다는 문자를 보낼 때, ‘아, 그래도 내가 상담을 잘 했구나’라는 보람을 느껴요.”
정현숙 소장 개인적으로는 상담 봉사를 통해 가족애가 돈독해지는 성과도 있었다. 그는 자녀들이 엄마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늘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는 것이 부모로서 모범이 된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봉사는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죠. 사람들은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받는 사랑은 순간적인 것 같아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먼저 마음을 주고 사랑해주면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거든요. 봉사 덕분에 ‘주는 사랑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