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교통장애인협회 노재목 회장 “방광암도 봉사 열정은 못 막습니다”
안양시교통장애인협회 노재목 회장 “방광암도 봉사 열정은 못 막습니다”
by 안양교차로 2013.07.15
노재목 회장은 올해로 안양에 정착한 지 40년이 되었다. 관내 영남향우회를 비롯해 안양시교통장애인협회 등 크고 작은 기관에서 ‘선한 감투’를 썼던 그는 봉사 영역에서는 고목나무 같은 존재다. 자신을 한사코 알리지 않기로 유명한 그라서 인터뷰 역시 어렵게 성사되었다. 대단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봉사는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자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 말년에 돌아본 지난 세월에서 봉사가 갖는 의미를 말할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경상남도에서 경찰관으로 오랜 공직생활에 있었던 그는 한때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의협(義俠)’이었다. 불의와 편법으로 가득한 사회 곳곳의 모순들은 젊은 시절의 그에겐 끊임없이 자라는 잡초 같았다. 일개 공무원에 불과할 뿐인 노재목 회장에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공언한 것이 1970년대, 그의 나이 30대 후반이었다.
안양에 터를 잡은 그는 새마을중앙회를 비롯해 지역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의로운 일에 대한 열망과 내 이웃의 더 나은 삶을 향한 헌신은 자연스럽게 봉사로 이어졌다. 관내에 생활보호대상자, 소외계층을 관내 기업과 연결해주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나라의 도움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노재목 회장을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정치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흔히들 하는 얘기잖아요. 하지만 정치는 아무나 하나요? 저는 다만 가난한 사람이건, 부유한 사람이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한데 어떤 사람에게는 개인의 이해를 추구하는 수단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활을 억누르는 억압이 된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국가보조 없이 못 사는 사람들 이렇게 많은데…
몇 년 전의 폭우가 내리치던 어느 날 그의 집 앞에 한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름을 물었더니 고개만 내저었던 남자는 연락이 닿지 않는 친인척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자기 생계를 어쩌지 못해 나라의 도움이 끊기면 곧바로 굶어죽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있어요. 그런 사람을 내치는 법과 제도는 잘못된 것 아닙니까? 저는 그런 때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요.”
노재목 회장은 그의 손을 붙들고 평소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을 찾아 갔다. 조목조목 따지는 설명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그 역시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다고 했다. ‘정치인은 무기력하구나’하는 걸 몸소 느꼈던 노재목 회장은 해당 주민센터를 직접 찾아갔다.
“호통을 쳤죠. 아마 주변에서는 ‘뭐 저런 막무가내가 있느냐’ 싶었을 거예요. 겉보기에는 제가 개인의 사익을 위해 고집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한데 기초생활수급자의 결격사유라는 게 정말 터무니없다는 걸 당사자 말고 누가 알겠어요?”
단순한 억지였다면 그의 말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당 동장은 그의 말에 수긍하며 남자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복귀시켰다. 상식이 원칙을 이긴 것이다.
“봉사는 안양의 그림자를 품는 일”
마냥 동네 이웃의 어려움을 위해 대신 싸워줄 것 같던 그에게도 어려움이 찾아왔다. 지난해 9월, 방광암으로 두 차례 수술을 한 노재목 회장은 병마와 싸우느라 몸이 부쩍 수척해졌다.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숨에 벅차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할 일이 많은데 얼른 쾌차하시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노재목 회장 역시 병마를 핑계로 수많은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천하를 다 잃어도 건강을 잃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매일 약을 한 움큼씩 먹고 있지만, 병원에서 완치되어가는 중이라는 희망적인 얘기을 들었다. 조만간 몸을 털고 일어나 다시 지역 일에 의욕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는 그에게 여전히 기개가 넘쳤다.
“안양에 독거노인이 무려 113세대입니다. 그 사람들 정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생계가 막혀요. 아무리 우리 사회가 잘 살게 되었다고 해도,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모른 척하면서 갈 수는 없습니다. 저라도 나서서 힘써서 일해야지요. 시장님을 뵐 때마다 제가 그럽니다. 안양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데, 그림자도 품어야 시가 발전하는 거라고요.”
그런 노재목 회장이지만 안양시의 봉사 문화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도 많다. 자기 명예나 이해를 떠나 진정으로 남을 위하는 봉사활동을 찾기 힘들다는 것. 그는 “결국 봉사를 움직이는 힘은 관내 곳곳에 숨겨진 인재 덕분”이라며 “칭찬릴레이가 그런 분들을 꼭 발굴해 안양시 봉사문화를 계승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
가난하든 부유하든,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경상남도에서 경찰관으로 오랜 공직생활에 있었던 그는 한때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의협(義俠)’이었다. 불의와 편법으로 가득한 사회 곳곳의 모순들은 젊은 시절의 그에겐 끊임없이 자라는 잡초 같았다. 일개 공무원에 불과할 뿐인 노재목 회장에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공언한 것이 1970년대, 그의 나이 30대 후반이었다.
안양에 터를 잡은 그는 새마을중앙회를 비롯해 지역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의로운 일에 대한 열망과 내 이웃의 더 나은 삶을 향한 헌신은 자연스럽게 봉사로 이어졌다. 관내에 생활보호대상자, 소외계층을 관내 기업과 연결해주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나라의 도움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노재목 회장을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정치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흔히들 하는 얘기잖아요. 하지만 정치는 아무나 하나요? 저는 다만 가난한 사람이건, 부유한 사람이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한데 어떤 사람에게는 개인의 이해를 추구하는 수단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활을 억누르는 억압이 된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국가보조 없이 못 사는 사람들 이렇게 많은데…
몇 년 전의 폭우가 내리치던 어느 날 그의 집 앞에 한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름을 물었더니 고개만 내저었던 남자는 연락이 닿지 않는 친인척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자기 생계를 어쩌지 못해 나라의 도움이 끊기면 곧바로 굶어죽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있어요. 그런 사람을 내치는 법과 제도는 잘못된 것 아닙니까? 저는 그런 때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요.”
노재목 회장은 그의 손을 붙들고 평소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을 찾아 갔다. 조목조목 따지는 설명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그 역시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다고 했다. ‘정치인은 무기력하구나’하는 걸 몸소 느꼈던 노재목 회장은 해당 주민센터를 직접 찾아갔다.
“호통을 쳤죠. 아마 주변에서는 ‘뭐 저런 막무가내가 있느냐’ 싶었을 거예요. 겉보기에는 제가 개인의 사익을 위해 고집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한데 기초생활수급자의 결격사유라는 게 정말 터무니없다는 걸 당사자 말고 누가 알겠어요?”
단순한 억지였다면 그의 말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당 동장은 그의 말에 수긍하며 남자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복귀시켰다. 상식이 원칙을 이긴 것이다.
“봉사는 안양의 그림자를 품는 일”
마냥 동네 이웃의 어려움을 위해 대신 싸워줄 것 같던 그에게도 어려움이 찾아왔다. 지난해 9월, 방광암으로 두 차례 수술을 한 노재목 회장은 병마와 싸우느라 몸이 부쩍 수척해졌다.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숨에 벅차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할 일이 많은데 얼른 쾌차하시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노재목 회장 역시 병마를 핑계로 수많은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천하를 다 잃어도 건강을 잃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매일 약을 한 움큼씩 먹고 있지만, 병원에서 완치되어가는 중이라는 희망적인 얘기을 들었다. 조만간 몸을 털고 일어나 다시 지역 일에 의욕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는 그에게 여전히 기개가 넘쳤다.
“안양에 독거노인이 무려 113세대입니다. 그 사람들 정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생계가 막혀요. 아무리 우리 사회가 잘 살게 되었다고 해도,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모른 척하면서 갈 수는 없습니다. 저라도 나서서 힘써서 일해야지요. 시장님을 뵐 때마다 제가 그럽니다. 안양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데, 그림자도 품어야 시가 발전하는 거라고요.”
그런 노재목 회장이지만 안양시의 봉사 문화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도 많다. 자기 명예나 이해를 떠나 진정으로 남을 위하는 봉사활동을 찾기 힘들다는 것. 그는 “결국 봉사를 움직이는 힘은 관내 곳곳에 숨겨진 인재 덕분”이라며 “칭찬릴레이가 그런 분들을 꼭 발굴해 안양시 봉사문화를 계승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