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 박복순 씨 “잃어버린 아들 되찾은 인연, 봉사로 꽃피웠죠”
자원봉사자 박복순 씨 “잃어버린 아들 되찾은 인연, 봉사로 꽃피웠죠”
by 안양교차로 2013.07.15
박복순 씨가 봉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아주 특별하다. 30여 년 전, 시어머니 제삿날을 하루 앞두고 세 살배기 아들을 안양에서 잃어버렸는데, 그 이튿날 안양유원지 인근의 한 고아원에서 찾았다. 부모 없는 아이들 틈에서 웃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본 순간, 그는 “이곳이 내가 평생을 헌신해야 할 곳”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부모 자식은 모두 한 마음, 숨 쉬는 곳만 다를 뿐
원장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그는 주기적으로 빠짐없이 고아원을 찾아 필요한 물품을 사주고, 일을 거들다 돌아오곤 한다. 무려 30년의 세월 동안 인연을 맺은 것만 봐도 박복순 씨에게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들을 데리고 있다기에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아들이 너무 방긋방긋 웃고 있는 거예요. 그때 같이 있던 다른 아기들이 너무 고맙더라고요. 내 아들과 하룻밤을 무사히 함께 지내줬으니까. 찬바람 불 때인데 얇은 옷을 입고 있는 아기들이 너무 가슴 아파서 아들 옷을 전부 내어주고 돌아왔어요.”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아준 데 대한 감사표시로 이후로도 고아원을 찾았다는 그. 결혼하기 전부터 틈틈이 봉사를 했던 터라 환경이 낯설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안양시 관내에 있는 고아원과 노인복지관 등을 찾아다니면서 봉사의 삶을 계속 이어나갔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남의 자식도 내 자식, 남의 부모도 내 부모라고요. 서로 숨 쉬는 공간이 다를 뿐이지 마음은 다 똑같은 거 아니겠어요? 스치듯 맺은 인연도 소중한데, 봉사로 알게 된 인연이니 더욱 마음이 갈 수밖에 없죠.”
형편이 넉넉해서 봉사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30여 년 전 충남 청양에서 안양에 올라와 둥지를 튼 뒤 결혼생활을 하며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봉사와 가까이 할 수 있었다고.
부모 자식은 모두 한 마음, 숨 쉬는 곳만 다를 뿐
원장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그는 주기적으로 빠짐없이 고아원을 찾아 필요한 물품을 사주고, 일을 거들다 돌아오곤 한다. 무려 30년의 세월 동안 인연을 맺은 것만 봐도 박복순 씨에게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들을 데리고 있다기에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아들이 너무 방긋방긋 웃고 있는 거예요. 그때 같이 있던 다른 아기들이 너무 고맙더라고요. 내 아들과 하룻밤을 무사히 함께 지내줬으니까. 찬바람 불 때인데 얇은 옷을 입고 있는 아기들이 너무 가슴 아파서 아들 옷을 전부 내어주고 돌아왔어요.”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아준 데 대한 감사표시로 이후로도 고아원을 찾았다는 그. 결혼하기 전부터 틈틈이 봉사를 했던 터라 환경이 낯설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안양시 관내에 있는 고아원과 노인복지관 등을 찾아다니면서 봉사의 삶을 계속 이어나갔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남의 자식도 내 자식, 남의 부모도 내 부모라고요. 서로 숨 쉬는 공간이 다를 뿐이지 마음은 다 똑같은 거 아니겠어요? 스치듯 맺은 인연도 소중한데, 봉사로 알게 된 인연이니 더욱 마음이 갈 수밖에 없죠.”
형편이 넉넉해서 봉사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30여 년 전 충남 청양에서 안양에 올라와 둥지를 튼 뒤 결혼생활을 하며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봉사와 가까이 할 수 있었다고.
평온한 삶의 소중함 일깨워준 봉사
“집에 누가 찾아오면 휴지를 선물하잖아요. 그게 쌓여서 양이 좀 많기에 같은 아파트 사는 독거어르신 가져다 드리려고 했는데, 동장님이 명함을 한 장 주시더라고요. 찾아가보라고. 누군가 했더니, 지금 남부시장 김내과에서 장애인 아이들을 돌보는 신옥자 선생님이었어요.”
아이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 아이들은 누군가의 손길이 없으면 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건강한 아이들 말고도 세상에 소외된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박복순 씨의 가슴을 울렸다.
“보통 아이들은 곰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도 질리면 아무 데나 두거든요? 그런데 장애인 아이들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뭐든 일단 갖고 놀다가 나중에 꼭 그 자리에 다시 갖다 놔요. 흐트러진 모습이 없고 정리정돈을 너무 잘하는 거죠.”
몇 해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안양 초등생 유괴사건 때도 그는 몸소 나서서 아이들을 찾는 데 앞장섰다. 비산동 이마트 사거리에 커다란 현수막을 직접 걸기도 했다.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애타는 마음 조금이나마 헤아려주기 위한 일들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고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삶이 지루하다고 불평불만하고, 사소한 일에도 싸우고 다투며 살아요. 저는 봉사를 통해 평온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감사함을 배우곤 해요.”
“안양은 봉사자들 많아서 더 아름다운 동네죠”
이제는 두 자녀의 분가 이후 비로소 홀가분하게 봉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는 박복순 씨.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결국은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도 배우게 됐다.
“말없이 고아원에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가는 선생님들이 있어요. 내 자식, 내 부모도 챙기기 어려운 세상에 남을 위해 헌신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그런 천사 같은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다 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죠.”
박복순 씨에게 행복이란 단순한 것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봉사의 삶을 이어가는 것. 욕심을 버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세상사람 모두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인단다. 안양에 30여 년을 넘게 살았지만, 봉사하는 인구가 많아서 다른 어떤 곳보다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동네라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세상 살다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죠. 그런데 좀 손해 보면서 사는 게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잔뜩 채우고 욕심 부리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잖아요. 하지만 손해 보는 사람은 손에 쥔 건 없어도 마음은 늘 홀가분해요.”
그는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안양이 살기 좋은 동네로 이름난 것”이라며 “칭찬릴레이가 안양에 훈훈한 미담을 전파하는 창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
“집에 누가 찾아오면 휴지를 선물하잖아요. 그게 쌓여서 양이 좀 많기에 같은 아파트 사는 독거어르신 가져다 드리려고 했는데, 동장님이 명함을 한 장 주시더라고요. 찾아가보라고. 누군가 했더니, 지금 남부시장 김내과에서 장애인 아이들을 돌보는 신옥자 선생님이었어요.”
아이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 아이들은 누군가의 손길이 없으면 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건강한 아이들 말고도 세상에 소외된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박복순 씨의 가슴을 울렸다.
“보통 아이들은 곰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도 질리면 아무 데나 두거든요? 그런데 장애인 아이들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뭐든 일단 갖고 놀다가 나중에 꼭 그 자리에 다시 갖다 놔요. 흐트러진 모습이 없고 정리정돈을 너무 잘하는 거죠.”
몇 해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안양 초등생 유괴사건 때도 그는 몸소 나서서 아이들을 찾는 데 앞장섰다. 비산동 이마트 사거리에 커다란 현수막을 직접 걸기도 했다.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애타는 마음 조금이나마 헤아려주기 위한 일들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고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삶이 지루하다고 불평불만하고, 사소한 일에도 싸우고 다투며 살아요. 저는 봉사를 통해 평온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감사함을 배우곤 해요.”
“안양은 봉사자들 많아서 더 아름다운 동네죠”
이제는 두 자녀의 분가 이후 비로소 홀가분하게 봉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는 박복순 씨.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결국은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도 배우게 됐다.
“말없이 고아원에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가는 선생님들이 있어요. 내 자식, 내 부모도 챙기기 어려운 세상에 남을 위해 헌신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그런 천사 같은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다 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죠.”
박복순 씨에게 행복이란 단순한 것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봉사의 삶을 이어가는 것. 욕심을 버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세상사람 모두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인단다. 안양에 30여 년을 넘게 살았지만, 봉사하는 인구가 많아서 다른 어떤 곳보다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동네라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세상 살다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죠. 그런데 좀 손해 보면서 사는 게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잔뜩 채우고 욕심 부리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잖아요. 하지만 손해 보는 사람은 손에 쥔 건 없어도 마음은 늘 홀가분해요.”
그는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안양이 살기 좋은 동네로 이름난 것”이라며 “칭찬릴레이가 안양에 훈훈한 미담을 전파하는 창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