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월례포장마차 최월례 씨 “포장마차 운영하는 국악인, 본 적 있으세요?”

월례포장마차 최월례 씨 “포장마차 운영하는 국악인, 본 적 있으세요?”

by 안양교차로 2013.07.15

안양7동에서 ‘월례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최월례 씨는 낮에는 경기민요 공연 봉사를, 밤에는 장사를 한다. 하루 24시간이 쉴 틈 없이 돌아가지만, 적잖은 나이에도 그는 청년처럼 기력이 왕성해보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포장마차 장사”였다고 말하는 그의 숨겨진 봉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제 직업은 봉사입니다”
경기민요를 20년 동안 해온 그는 직업이 봉사라고 말한다. 노인복지를 위한 기금 마련 공연을 포함해 매년 어버이날 정기 공연까지, 관내에서 초청이 들어오는 공연은 대부분 무료로 해주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넉넉지 않은 생활로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거기서 나온 돈으로 자비량으로 지방 공연까지 소화해내는 그의 열정은 무엇일까.
“제가 민요를 처음 배운 게 93년도예요. 경기도 안양 종합시장에서 한 원장님께 배우다가 2000년대 들어서 무형문화재인 묵계월 선생님께 사사를 받았죠. 제가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입니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국악인이라니, 잘 안 믿겨지시죠?(웃음)”
그는 연예계 인맥도 꽤 넓다. 꾸준한 공연 봉사를 통해 이런저런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봉사 공연을 전문적으로 하는 ‘파랑새’라는 단체도 만들었다. ‘칠갑산’을 부른 가수 주병선과 ‘소양강처녀’를 부른 한석영 등이 주요 멤버다. 매년 10만 원씩 회비를 모아 평창을 비롯한 지방 곳곳에 순회 공연봉사를 다니는 한편, 어르신 복지를 위한 기금 마련 공연도 정기적으로 펼치고 있다.
“가수들 중에는 봉사를 하면 뭔가 공연 하나라도 들어올까 가입하는 이들도 있어요. 순수한 봉사의 재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죠. 지금은 멤버가 고정돼 있어요. 진짜 봉사를 할 사람만 남은 거죠. 봉사는 뚜렷한 자기신념 없이는 안 돼는 분야잖아요.”
자비로 혼자 지방공연 다녀…마음에서 우러나온 것
파랑새는 어르신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주민센터, 양로원, 복지관 등 반주기가 없는 곳에서도 개의치 않고 민요를 구성지게 불러낸다. 지난해 11월 11일에는 공연에서 모인 기금으로 독거노인을 위한 쌀과 반찬, 양말 등을 구입해 전달하기도 했다. 최월례 씨가 가장 신경 쓰는 곳은 거주지인 안양7동주민센터와 호계동 노인복지관이다.
“제가 사는 동네니까 해마다 어버이날 행사 때 공연 좀 해달라고 하면 두 말 않고 가죠. 보통 공연 초청이 겹치는데 그럴 때는 사회자와 연예인을 붙여서 저 대신 보내기도 해요. 교통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 계신 곳도 가리지 않고 가요. 봉사라는 것은 진정 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가능한 거니까요.”
가끔 가게 문을 닫고 봉사를 가면 손님들은 돈 벌러 간 줄 안다. 하지만 그가 공연 봉사에서 돈을 받는 경우는 없다. 정식으로 회갑 공연이나, 관내 행사에 초청받지 않는 한 모든 공연 봉사는 무료로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이런 봉사에 여러 사람이 동참해주면 좋으련만, 자부심이 강한 국악인들은 대가성이 없는 봉사에 고개를 저을 때가 많다.
“저보고 미쳤대요. 내 차비 들여서 지방을 돌며 무료로 공연하니 그런 말 나올 법도 하죠. 예전에는 같이 가자고 몇 번 권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혼자 다녀요. 안 믿겨지세요? 혼자서도 곡 잘 불러서 박수 많이 받아요. 이것저것 챙길 필요도 없고 그냥 맨몸으로 가서 민요 불러드리는 거예요.”
팍팍한 현실이지만, 봉사할 수 있어서 행복해
그래도 현실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남들처럼 번듯한 자산이 있는 것도 아닌 그는 포장마차를 놓을 수 없는 현실을 그저 묵묵히 감내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봉사를 하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포장마차를 하는 그의 속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제가 포장마차를 20년 했는데 만날 밤을 새다보니까 체력이 뚝뚝 떨어져요. 저를 가르치셨던 묵계월 선생님이 ‘너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하시는데, 그 분은 사실 잘 모르죠. 주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니까. 생계란 것이 힘들어도 유지시켜야만 한다는 걸. 우리 같은 현실에 놓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알겠어요?”
안양3동에서 리어카로 포장마차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포장마차를 하며 딸자식을 다 가르쳤고, 하고 싶은 공연도 실컷 했다. 그러면 족한 것 아닌가, 최월례 씨는 도로 반문한다.
“원래는 딱 1년만 장사하려고 했어요. 그 후에는 정말 봉사에만 전념하겠다고…. 근데 접을 수가 없네요. 산다는 게 뭔지. 봉사하는 보람이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거예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요. 여기 재개발되면 그땐 확실히 그만두겠다고.”
그는 충남 홍성이 고향이다. 젊은 시절에는 미용실부터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고 한다. 남편과는 오래 전 헤어졌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한 지금은 봉사와 장사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홀가분하다고. 최월례 씨는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 것 같다”며 “안양에서 봉사하며 살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