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사랑나눔봉사단 전평자 씨 “저 돈 쓸 줄만 아는 여자였어요”

사랑나눔봉사단 전평자 씨 “저 돈 쓸 줄만 아는 여자였어요”

by 안양교차로 2013.07.11

“남편이 벌어다준 돈은 우리집 예산이고, 돈은 내가 알아서 쓰는 거지 뭐.” 주부라면 으레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돈을 잘 쓰는 일’만 오랫동안 하다보면, ‘돈을 어떻게 버는 건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은연 중 잊히게 된다. 전평자 씨도 그런 주부 중 하나였다. 하지만 IMF 직후 남편의 사업 부도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지금은 어엿한 공인중개소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전평자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급식업체 아르바이트 하면서 ‘나’를 발견
만년 주부였던 전평자 씨가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남편의 사업이 부도난 직후였다. IMF 시절, 부도는 흔한 뉴스였고 가장인 남편이 실직한 상처를 겪은 가정도 많았다. 전평자 씨에게도 남편의 부도 소식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저 정말 돈 쓸 줄만 알고 돈 벌 줄 모르는 주부였어요. 남편 회사 부도에 정신이 번쩍 들었죠(웃음). 처음엔 남편이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고생한 남편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반평생 손에 물만 묻히고 살아온 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전평자 씨가 시작한 일은 급식업체 배식 아르바이트. 시급 3천 원짜리 일이었다. 매일 3시간씩 일하며 남편의 고생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고,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 기뻤다. 그는 어려움을 통해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전평자 씨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지인이 운영하는 공인중개소에 사무보조원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자격증도 없고, 부동산에 대해 공부해본 적도 없었지만 내 일처럼 즐겁게 일했다. 그렇게 시작된 직장생활이 벌써 언 10년이 훌쩍 넘었다.
작은 나눔의 손길을 통해 모두가 함께 행복해져
“일을 한 지 4~5년 쯤 지나니까 어느 날 문득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보이지 않는 남편의 손길로 살아온 것처럼, 저 역시 앞으로는 누군가를 조금씩 돕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명 정치인의 팬클럽을 통해 매달 안양 보육원 봉사에 동행하기 시작했다. 팬클럽 회원 중 안양에 사는 5~7명의 회원들이 모여 봉사의 연을 맺었다. 매주 한 번씩 경기도 시흥의 ‘임마누엘 집’과 인천시 부평에 있는 ‘예림원’에서 봉사를 해왔다. 설거지, 요리부터 어르신들 목욕 봉사까지 ‘손에 물 묻히는 일’이라면 베테랑인 이들과 손발을 맞춘 지 어느덧 8년째.
“가끔 지체장애인들과 함께 외부 나들이를 가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외출도 못하는 장애인들을 보며 작은 손길이지만 나눔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매년 두 차례씩 병영체험과 갯벌체험을 가기도 한다. 활동 폭이 넓어지면서 정식으로 봉사단체 이름도 생겼다. ‘사랑나눔봉사단’은 전평자 씨를 비롯해 회원들이 정기총회를 통해 돌아가면서 회장을 뽑는다. 전평자 씨는 “오래 활동하다보니 시흥시자원봉사센터에서는 궂은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봉사단을 먼저 부를 정도”라며 “단원들이 전부 직장인이라서 작지만 경제적 후원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기피하는 일이라면, 내가 꼭 해야 할 일 아니겠어요?”
부녀회나 어떤 지역 단체 활동 없이 팬카페를 통해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일은 꽤 드물다. 하지만 어떠한 강제 없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봉사의 기쁨은 더욱 크다.
“봉사는 매번 하는 사람만 하죠. 인원이 늘지 않아요. 그래서 더 책임감이 뒤따르고, 힘이 들어도 최선을 다하게 되죠.”
일이 바빠 봉사를 못 가는 날이면 그 날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봉사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전평자 씨. 일과 봉사를 병행하는 그 역시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주부다. 물리치료를 받지 않으면 전기장판에서 몸도 뗄 수 없는 처지지만, 힘들어도 해야 하는 게 일과 봉사라고. 모두가 기피하는 일, 그래서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보람도 그만큼 크다.
“제가 인덕이 많은 것 같아요. 사장님과 남편이 배려를 많이 해주니 봉사하는 거죠. 이런 봉사 저라도 할 수 있으니 감사한 거고, 또 오래 봉사하면 하나님이 건강 주시지 않겠어요?”
오십을 넘긴 중년 여성의 입에서 ‘행복’이라는 말이 나오면 믿어도 된다. 봉사 다녀온 날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여행이나 취미 활동보다 더 매력 있다는 그. 함께 봉사하는 이들에게서 인품이나 언행에 대해 배울 점이 많은 것도 봉사의 장점이란다. 전평자 씨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사람은 행복을 찾아 사는 것”이라며 “저에게 남은 삶의 행복 중 하나가 봉사라면, 앞으로 행복할 날이 많아서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