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자원봉사자 조정구 씨 “봉사가 검역관 일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자원봉사자 조정구 씨 “봉사가 검역관 일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by 안양교차로 2013.07.10

조정구 씨는 식물검역관으로 30여 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했다. 공항에서 국내로 들어오고 나가는 식물을 인증해주는 일이다. 그는 5년 전에 퇴직한 뒤 봉사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봉사처를 찾아보고, 전화를 건 다음 이튿날부터 곧바로 봉사하러 나갔다. 조정구 씨는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 모진 사람은 없다”며 “지역 사회의 엑기스 같은 사람들이 봉사하러 오는 게 아닌가싶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일만 해서…다른 사람들 어떻게 사나 궁금했죠”
식물검역관은 특수 전문직이지만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이기도 하다. 현직에 있을 때 그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주식을 하거나 부동산에 투자한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취미를 키우지도 않았다. 공직에서 일하는 것을 봉사로 알고 살아온 사람이 조정구 씨다.
“만날 똑같은 일만 하면서 살다보니 사회에 여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봉사가 제격이겠다 싶었죠.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같은 단체에 일부러 가입했어요. 나랑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했죠.”
그와 함께 정년퇴임한 동기들은 취미활동을 하거나, 아파트 관리직으로 재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조정구 씨도 원래는 퇴직한 뒤 소일거리라도 해보고 싶어서 안양교차로를 열심히 봤지만 금방 접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을뿐더러, 뒤늦게 몇 푼 더 벌어보겠다고 애쓰는 것도 무용한 일 같았다.
“처음엔 봉사나 해볼까 싶었죠. 인터넷으로 뒤적뒤적 하다가 비산동에 있는 무료급식소에 불쑥 전화를 걸었어요. 처음 봉사하러 간 건데 의외로 봉사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북적북적 하는데 거들 것도 마땅치 않아서 마당 청소나 했죠. 봉사에도 ‘적재적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안 거예요.”
5년 째 노인요양원에서 봉사…일꾼 필요하면 언제든 나서
우연히 안양노인전문요양원에서 봉사자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등록했다. 주방에 들어가 식사 준비를 돕고, 허드렛일을 돕는 일이다. 공무원 시절에도 특수직이었으니 몸으로 하는 일이 낯설지는 않았을 터.
“일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다만 한국 사람은 처음 만난 사람과 낯선 게 있잖아요. 특히 나이가 좀 젊은 봉사자들은 괜찮은데, 저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이 ‘어르신, 여기 좀 주물러 드릴까요’하면 무척 낯설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전 궂은 일만 하고 있어요. 집에서도 김장 한 번 안 도와주던 남자가 고무장갑 끼고 양념하고 그러죠, 하하.”
그렇게 봉사하기를 벌써 5년째. 하루 봉사 다녀오면 몸이 찌뿌드드할 정도로 피곤하지만, 그는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일꾼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으면 언제든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걸어서 요양원까지 간다. 그런 노력을 요양원 쪽에서도 인정해주어 얼마 전엔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고.
“일을 더 잘 해달라는 뜻이죠. 제가 안 보이게 봉사하러 다닌다고 누가 추천을 해서 여기저기서 무슨 상이니, 자꾸 준다고 하는데 젊은 사람 주라고 거절했어요. 사실 그렇잖아요. 봉사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처럼 보기 안 좋은 게 또 있나….”
봉사는 자기 자신을 비우는 삶
조정구 씨에겐 바람이 있다. 아내와 함께 봉사를 다니는 것이다. 워낙 아픈 데가 많아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부른다는데, 아내도 봉사에 대한 마음은 늘 갖고 있단다.
“제가 표창장 받은 거 보고 ‘봉사 5천 시간, 1만 시간 한 사람도 있는데 그걸 갖고 상을 받냐’고 농담조로 뭐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가끔 보면 부부가 함께 봉사를 다니는 경우 있잖아요. 여건이 허락된다면 아내와 꼭 한 번 봉사를 가보고 싶어요.”
조정구 씨가 생각하는 봉사는 ‘내려놓음’ ‘자기 자신을 비우는 삶’이다. 세상에는 험한 일도 많지만, 봉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남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미덕을 지녔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저는 좀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윤리와 도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제가 걱정되는 것 중 하나는 요새 젊은이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봉사정신이 없다는 거예요. 옛말에는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처럼 자기 자신만 아는 세대가 나중에 이 나라를 어떻게 짊어지겠습니까?”
자식 교육이 누구보다 엄중했던 그는 얼마 전 딸을 시집보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딸은 청와대 공무원과 결혼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아들이 직장생활 하느라 분가하고 난 뒤, 아내 와 둘이서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그는 “아내도 안양교차로를 자주 보지만, 광고만 내지 않고 봉사자들을 칭찬하는 이런 코너가 참 소중하다”며 “좋은 봉사자들을 앞으로도 많이 소개해 지역사회에 선행을 꾸준히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