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의 꽃 김경희 사장 “봉사하는 꽃집 사장님 얘기 들어보실래요?”
샤론의 꽃 김경희 사장 “봉사하는 꽃집 사장님 얘기 들어보실래요?”
by 안양교차로 2013.07.10
김경희 사장은 의왕시 삼동에서 남편과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남편은 잘 나가던 대기업 부장이었다. IMF 이후 출판 업계가 어려워지면서 퇴직을 했다. 딸 둘에 아들 하나, 교육비가 한창 들어갈 때였고 셋 다 예체능을 전공했던 터라 살림은 점점 어려워졌다. 42평에서 25평 아파트로, 그마저 팔고 지금은 꽃집 주변에 만든 작은 집에서 산다. 김경희 사장은 “어렵게 살아보니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쉽게 들어온다”며 “작은 손길이지만 봉사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세상은 돈만 버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의 고향은 청주다. 결혼하면서 서울로 이사를 왔고, 2000년에 의왕에 자리를 잡았다. 봉사라고는 학창시절 RCY 활동이 전부였지만, 아파트 부녀회장을 맡으면서 조금씩 동네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에덴의 집에 목욕봉사를 하거나 불우이웃을 돕는 활동을 하며 “세상은 돈만 벌면서 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한다.
김경희 사장은 ‘늘푸른봉사회’라는 봉사단체도 직접 만들어 회장을 맡고 있다. 매달 독거노인 3명에서 쌀을 배달해주거나 김장철에는 김치를 배달한다. 배달은 단연 꽃집을 하는 김경희 사장 몫이다. 가게 상호도 안 적혀 있는 카렌스를 몰고 다니면서 곳곳에서 봉사를 하니, 봉사를 해도 티가 안난다.
“남편이랑 사업 시작하면서 좋은 일 좀 해보자고 시작한 봉사인데, 하다 보니 봉사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됐죠. 90세가 넘는 할아버지가 자식도 없이 혼자 사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아파요. 전화도 없어서 제가 꾸준히 찾아뵙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거든요.”
충청포럼 운영위원, 삼동 주민자치위원 등 직함이 많은 그는 말없이 일하는 타입이다. 남들은 극구 안 하겠다는 회장도, 감투보다 고생을 자처하는 심정으로 맡고 있단다. 자율방재단에서는 수해나 폭설 피해 지역을 방문해 봉사를 가기도 한다.
세상은 돈만 버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의 고향은 청주다. 결혼하면서 서울로 이사를 왔고, 2000년에 의왕에 자리를 잡았다. 봉사라고는 학창시절 RCY 활동이 전부였지만, 아파트 부녀회장을 맡으면서 조금씩 동네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에덴의 집에 목욕봉사를 하거나 불우이웃을 돕는 활동을 하며 “세상은 돈만 벌면서 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한다.
김경희 사장은 ‘늘푸른봉사회’라는 봉사단체도 직접 만들어 회장을 맡고 있다. 매달 독거노인 3명에서 쌀을 배달해주거나 김장철에는 김치를 배달한다. 배달은 단연 꽃집을 하는 김경희 사장 몫이다. 가게 상호도 안 적혀 있는 카렌스를 몰고 다니면서 곳곳에서 봉사를 하니, 봉사를 해도 티가 안난다.
“남편이랑 사업 시작하면서 좋은 일 좀 해보자고 시작한 봉사인데, 하다 보니 봉사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됐죠. 90세가 넘는 할아버지가 자식도 없이 혼자 사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아파요. 전화도 없어서 제가 꾸준히 찾아뵙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거든요.”
충청포럼 운영위원, 삼동 주민자치위원 등 직함이 많은 그는 말없이 일하는 타입이다. 남들은 극구 안 하겠다는 회장도, 감투보다 고생을 자처하는 심정으로 맡고 있단다. 자율방재단에서는 수해나 폭설 피해 지역을 방문해 봉사를 가기도 한다.
봉사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자부심
그가 꽃집을 열게 된 계기는 20년 넘게 배운 꽃꽂이 경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살림하는 동안 틈틈이 배운 꽃꽂이 실력은 이제 작품 활동과 강의를 할 정도로 전문가 수준으로 자리 잡았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도 닮아 있다.
“다들 바쁘게 사는 세상이잖아요. 내 것을 나누기보다 남의 것마저 움켜쥐려는 세상에 봉사는 마음의 문을 열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죠. 남편과 꽃집 시작하면서 그랬어요. 우리 이제 나이도 들었고, 맹목적으로 돈만 벌면서 살지는 말자고. 다행히 함께 봉사하는 분들도 제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엔 김제 만경읍과 지역교류 행사에 참석해 이런 저런 일을 거들었다. 사업을 하면서 봉사를 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봉사 있는 날은 남편에게 꽃집을 맡기더라도 꼭 참석하는 편이라고. 직원이라면 못 미더웠겠지만 남편이 뒷받침해주니 마음 편하게 봉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사업은 나를 위해 하는 거잖아요. 봉사는, 글쎄요 일종의 자기도취에 빠지는 것 같아요. 보람을 넘어서 내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랄까요. 사람들은 봉사단체 이끌고 있다고 하면 사리사욕 채우는 걸로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어깨도 무겁고 책임감도 무척 크죠.”
그가 꽃집을 열게 된 계기는 20년 넘게 배운 꽃꽂이 경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살림하는 동안 틈틈이 배운 꽃꽂이 실력은 이제 작품 활동과 강의를 할 정도로 전문가 수준으로 자리 잡았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도 닮아 있다.
“다들 바쁘게 사는 세상이잖아요. 내 것을 나누기보다 남의 것마저 움켜쥐려는 세상에 봉사는 마음의 문을 열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죠. 남편과 꽃집 시작하면서 그랬어요. 우리 이제 나이도 들었고, 맹목적으로 돈만 벌면서 살지는 말자고. 다행히 함께 봉사하는 분들도 제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엔 김제 만경읍과 지역교류 행사에 참석해 이런 저런 일을 거들었다. 사업을 하면서 봉사를 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봉사 있는 날은 남편에게 꽃집을 맡기더라도 꼭 참석하는 편이라고. 직원이라면 못 미더웠겠지만 남편이 뒷받침해주니 마음 편하게 봉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사업은 나를 위해 하는 거잖아요. 봉사는, 글쎄요 일종의 자기도취에 빠지는 것 같아요. 보람을 넘어서 내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랄까요. 사람들은 봉사단체 이끌고 있다고 하면 사리사욕 채우는 걸로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어깨도 무겁고 책임감도 무척 크죠.”
사람은 누구나 고귀한 존재…항상 주변의 어려운 이웃 돌봐야
김경희 사장은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 역시 자녀를 키우면서 생계가 어려웠던 적이 여러 번이기에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것. 얼마 전엔 둘째 딸과 함께 독거노인을 방문했다가 방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고.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고귀한 존재잖아요. 하지만 살아가는 조건이 저마다 다르니 인생은 정말 알 수 없죠. 저는 아이들에게도 늘 말해요. 우리가 어려운 삶을 거쳤기 때문에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늘 돌보며 살아야 한다고요.”
물론 그 역시 봉사하면서 늘 좋은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격과 생각이 다른 봉사자들을 이끄는 일은 리더십이 필요한 일. 하지만 김경희 사장은 말없이 묵묵히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고 있다. 방법이 다르더라도 마음을 같이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올해 수해 났을 때 광주에 있는 한 산업단지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젊은 부부가 땅을 팔아서 기계를 사고 공장을 차렸는데, 수억 원대의 기계들이 한 순간에 물에 잠겨버린 거예요.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그런데 부품을 수건으로 닦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연신 고맙다고 웃는 부부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더라고요.”
그 역시 하루하루 바쁜 삶이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봉사의 기회가 온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물론 그가 아니면 누군가는 그 일을 대신 하겠지만,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봉사에 헌신하고 있는 것. 김경희 사장은 “물건을 차로 가져다주는 심부름꾼에 불과하지만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봉사자들의 발걸음 때문에 의왕시가 더 아름다워지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
김경희 사장은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 역시 자녀를 키우면서 생계가 어려웠던 적이 여러 번이기에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것. 얼마 전엔 둘째 딸과 함께 독거노인을 방문했다가 방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고.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고귀한 존재잖아요. 하지만 살아가는 조건이 저마다 다르니 인생은 정말 알 수 없죠. 저는 아이들에게도 늘 말해요. 우리가 어려운 삶을 거쳤기 때문에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늘 돌보며 살아야 한다고요.”
물론 그 역시 봉사하면서 늘 좋은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격과 생각이 다른 봉사자들을 이끄는 일은 리더십이 필요한 일. 하지만 김경희 사장은 말없이 묵묵히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고 있다. 방법이 다르더라도 마음을 같이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올해 수해 났을 때 광주에 있는 한 산업단지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젊은 부부가 땅을 팔아서 기계를 사고 공장을 차렸는데, 수억 원대의 기계들이 한 순간에 물에 잠겨버린 거예요.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그런데 부품을 수건으로 닦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연신 고맙다고 웃는 부부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더라고요.”
그 역시 하루하루 바쁜 삶이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봉사의 기회가 온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물론 그가 아니면 누군가는 그 일을 대신 하겠지만,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봉사에 헌신하고 있는 것. 김경희 사장은 “물건을 차로 가져다주는 심부름꾼에 불과하지만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봉사자들의 발걸음 때문에 의왕시가 더 아름다워지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