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예절강사 현남수 씨 “바닥에서 생활한다는 마음 있으면 봉사가 쉽죠”

예절강사 현남수 씨 “바닥에서 생활한다는 마음 있으면 봉사가 쉽죠”

by 안양교차로 2013.07.09

노인요양원의 봉사자들은 대개 여성의 비율이 높다. 남자와 여자의 성향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주부들이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현남수 씨를 보면 그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싶다. 자영업을 하면서도 한 달에 20여 회 봉사를 다니고 예절강의, 웃음치료, 치매 어르신 봉사까지 금남의 봉사 영역을 가리지 않는 그는 문화해설사 겸 실버 연극단을 이끄는 단장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치매, 그리고 봉사…
석수2동에서 20년 동안 한 자리에서 고깃집을 운영해온 그. 고향인 전라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부터 이웃에 품앗이 하고, 새마을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등 자연스럽게 봉사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통장이면 통장, 이것저것 안 해본 것 없는 그가 치매 어르신 봉사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 때문이었다.
“치매라면 초기부터 말기까지 제가 다 경험을 했어요. 돌아가실 때까지 치매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고 여기 저기 교육도 많이 받고 그랬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 그는 노인 요양에 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성결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노인요양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진행하는 치매예방 교육도 받았다. 서울대병원 교육 과정은 170명이 정원인데 10:1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들어갔다고 했다. 그 후에도 무언가 부족한 듯싶어 웃음치료사 자격증도 땄다고 하니 열정이 참 대단한 셈이다.
“저 때문에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죠. 제가 아침저녁으로 봉사를 나가니 가게는 온전히 아내 몫이었어요. 이제 고생 그만 시켜야죠. 앞으로는 큰 아들에게 가게 맡기고 저랑 봉사 다니자고 했어요(웃음).”
실버 연극단 꾸려 안양의 역사 주제로 공연 펼쳐
현남수 씨는 “봉사의 참맛을 알게 되면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뀐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하루에 2~3군데, 복지관이나 노인요양원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일손을 놓더라도 찾아간다는 그는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보람을 느끼기에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독특한 또 다른 이력은 안양문화원에서 예절강사로 활동하는 것. 아이들에게 다과 예절, 인사법 등을 가르치는 한편, 소위 안양 ‘팔경(八景)’에 대한 문화재 해설 봉사도 그의 몫이다.
그가 이끄는 실버 연극단은 관내 복지관이나 문화원에서 안양의 역사를 주제로 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평균 연령 60~70대, 연극이라면 의상과 조명, 앰프, 마이크 등 필요한 시설이 많을 텐데 전부 자비량으로 충당해 차에 싣고 다니며 공연을 한다. 즐거워서 하는 일이지만 돈도 많이 든다. 현남수 씨는 “그동안 연극 준비에 쏟아 부은 돈만 100여만 원이 훌쩍 넘는다”며 “내 용돈 아껴 쓰더라도 연극팀이 잘 돼야 한다는 게 소신이다”고 말했다.
마침 인터뷰를 한 날은 팀원들이 모여 연극 시나리오를 구상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실버 연극단이라고 해서 어설프거나 서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 얼마 전 안양시 사회복지의 날(9월 7일)에는 연극 공연으로 금상을 받기도 했다.
“물질의 여유가 있어야 봉사할 수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게 바로 마음의 여유죠. 하지만 돈이 많아서 봉사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돈만 있지 여유는 없는 사람이 많거든요.”
“봉사자는 자기 권리가 없는 사람들”
현남수 씨는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은 대개 시간도 없기 때문에 봉사도 못한다”고 했다. 봉사를 하다보면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한다. 남자지만 탈의실이 없어서 옷을 갈아입을 땐 바지도 훌렁 벗을 줄 알아야 하고, 성격이 맞지 않아 다투는 봉사자들을 중재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시간 약속을 칼 같이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봉사라서 이렇게 대충 하는 거냐”는 말을 듣는 건 봉사자들의 가장 큰 수치다.
“어떤 분은 공연연습 때문에 대구에 볼 일 보러 갔다가 밤기차를 타고 오기도 해요. 참 감동적이죠. 누구는 꼭 그렇게까지 봉사를 해야겠느냐고 묻겠지만, 봉사는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나면 참맛을 알게 되죠.”
그는 진짜 봉사자들은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끼니를 김밥으로 때울지언정 자기 권리를 함부로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봉사의 모양이나 외식만 갖추고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을 보면 “되게 기분이 나쁘다”고 한다.
생업을 제쳐두고 봉사에 몰두하는 그를 보면 인생 후반부를 참 가치 있게 쓴다는 생각이 든다. 환갑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젊어 보이는 외모는 아마 꾸준한 봉사 때문이리라. 그는 “봉사도 그렇지만 모든 리더들은 자신이 죽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내가 늘 바닥에서 생활한다는 마음, 자존심 버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봉사가 정말 편해진다”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