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고려개발 임훈 차장 “봉사 1만 시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고려개발 임훈 차장 “봉사 1만 시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by 안양교차로 2013.07.09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봉사팀을 꾸려 운영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기업의 봉사 역량을 결집해 시너지 효과를 내보자는 아이디어는 임훈 차장의 머릿속에서 최초로 나왔다. 안양 최초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 한림대 성심병원, 국토연구원, LG에릭슨 등 안양시 관내에 있는 9개 기업이 그의 제안을 통해 ‘기업연대봉사’라는 이름으로 모여 지난 2004년부터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인사총무팀 소속인 그가 본업과는 상관없는 봉사에 이토록 열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최초 기업연대봉사팀 결성…기업들 봉사 역량 하나로 결집
“직장생활 16년차”라고 운을 뗀 임훈 차장은 고려개발 본사에 오랫동안 몸담고 일했다. 그가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본사가 서울 용산에 있을 때 관내 형편이 어려운 가구들을 찾아다니며 각종 생필품 등을 지원했다. 회사에서 봉사팀을 꾸리라고 지시한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회사계정에서 봉사 명목으로 쓰이는 돈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약간 머리를 쓴 것뿐이다.
회사가 안양으로 이전하면서 봉사 활동에 좀 더 힘이 붙게 되었다. 당시에는 봉사 트렌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이 막 눈을 뜬 시기였다. 임훈 차장은 안양시자원봉사센터를 통해 관내 기업들의 연대 봉사를 기획했다. 기업들이 제각각 일회성 봉사로 역량을 소비하는 대신,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봉사에 뜻을 모으자는 취지였다. 2007년 결성된 기업연대봉사팀은 고려개발을 비롯해 건설기술교통평가원, 한림대 성심병원, 국토연구원 등 안양시 관내 9개 기관이 주축이 되었다.
“봉사연대를 만든 건 이권이나 대외홍보 목적이 아닌 순수 봉사를 지향하는 단체를 꾸려보자는 게 이유였어요. 그래서 이곳엔 회장이나 총무 같은 직급이 따로 없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프로젝트 형식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봉사 프로그램도 자유롭게 짜죠.”
건설, 의료 등 전문분야 살려 봉사…시너지 효과 커져
기업연대봉사의 시너지 효과는 꽤 크다. 농촌결연마을을 방문해 지원금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각자의 전문영역을 살린 봉사활동을 펼친다. 고려개발에서 평상을 짜거나 집수리를 해주고 한림대 성심병원은 건강검진을, LG에릭슨은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식이다. 매회 때마다 기업에서 500만 원씩을 걷어서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 각각 봉사를 할 때는 비용도 더 들고, 봉사 영역도 좁았지만 기업들이 모여 함께 봉사를 하다 보니 수혜자들의 혜택이 많아지고 기업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활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아이디어가 임훈 차장 개인의 노력에서 출발해 빛을 발했다는 것. 봉사 지원을 위해 각 동을 돌며 수혜자 현황을 조사하고, 기업의 봉사활동 담당자를 만나 설득하는 일이 전부 그 혼자 감당해낸 몫이다.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경기도 시?군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봉사연대를 만들기 위한 워크숍을 여는 등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부쩍 많아졌다. 안양시와 경기도에서 받은 각종 봉사 관련 상들은 회사 이름이 아닌, ‘임훈’ 개인의 이름으로 받았다.
“안양시자원봉사센터에서는 우리에게 장소를 제공해주고 행정지원만 해줄 뿐 프로그램을 짜고 직접 수요처에 가서 봉사하는 건 전부 기업들의 몫입니다. 자연스럽게 기업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죠. 기업에서 9명의 봉사활동 담당자가 모였어도 토론을 거쳐 마지막에 결론을 내리니 분쟁이 생길 게 없고요. 이런 방식의 봉사는 지금껏 그 어느 곳에서도 이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형식의 봉사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은 무조건 바보가 되어야 해요”
본업과 무관한 봉사에 개인 한 사람의 역량으로 회사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그의 의지와 열정이 경탄스러울 지경이다. 그토록 봉사에 매진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보람 있어서”라는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마라톤 마니아였던 그는 “봉사는 운동과 달리 몸이 고통스럽지 않고 즐겁다”고 했다.
“사실 제가 봉사를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건 몇 년 전 석수동의 한 ‘쓰레기 집’을 치운 게 계기가 됐어요. 센터에서 치워달라고 연락이 와서 가봤는데 도무지 엄두가 안 나더군요. 포기할까 싶었지만 팀원들과 함께 가서 큰 걸로 열 자루 정도 분량의 쓰레기를 싹 치우고 소독까지 해줬어요. 그 집에 사는 사람보다 집 주인이 더 좋아하죠. 근데 화장실 좀 쓰겠다고 했더니 ‘쓰레기 악취 때문에 바퀴벌레가 꼬이니 미안하지만 참아달라’고 하는 거예요. 집은 깔끔해져서 좋긴 한데 더러워진 몸은 싫다는 거죠. 봉사자니까 너그럽게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참 서운하더군요. 집에 와서 목욕을 3번씩 하고 혼자 결심했어요. ‘봉사자가 무시 받아선 안 되겠구나. 체계를 정해서 실수 없이 움직여야겠구나’하고(웃음).”
그는 “봉사는 나를 위해 하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주말에 시간과 가정을 포기해야 하는 일인데 누가 좋아하겠느냐는 것이다. 다만 그는 한 사람이 ‘바보’가 되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 바로 봉사라고 했다.
“일이라는 건 모름지기 자기가 좀 피곤해도 남들에겐 바보처럼 보여야 해요. 사람들은 바보를 인정해줘요. 자기는 바보가 되기 싫은데 남이 바보 됐을 때 놀려 먹는 건 쉽죠. 봉사할 때도 누가 대신 해주길 바라지 말고, 누가 차려놓은 밥상 먹지만 말고, 자기가 직접 해야 해요. 사실 봉사 1만 시간, 5만 시간, 이런 건 다 의미 없는 얘기죠.”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