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성희 라이브 포토 김기성 씨 “봉사는 숨 쉬는 공기예요. 안 하면 답답하죠”

성희 라이브 포토 김기성 씨 “봉사는 숨 쉬는 공기예요. 안 하면 답답하죠”

by 안양교차로 2013.06.28

‘성희 라이브 포토’는 사진관 이름이 아니다. 김기성 씨가 ‘부장’으로 있는 가상 스튜디오이자 그를 중심으로 모인 친구들의 봉사단체 이름이다. 김기성 씨는 건축설계학을 전공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무려 40여 가지 직업을 전전해온 재주꾼이다. 현재도 사진을 찍고 플라스틱 제품을 납품하는 등 서너 가지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중요한 건 생계로 하는 이 모든 일을 그가 봉사와 연관시킨다는 데 있다.
사진은 취미이자 봉사…즐기면서 하는 건 일이 되면 안 돼
한 눈에 봐도 사람 좋아하고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명함이 꽤 많다. 처음엔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줄로 알았는데, 사진으로는 어르신들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를 한단다. 젊은 시절엔 폐수처리 업종에서 일했지만,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직업을 거쳐 왔다. 현재는 플라스틱 사출 과정에서 배출되는 재료를 떼다가 파는 일을 프리랜서로 하고 있다.
“평생 직업이 없는 시대니까요. 저는 천연비누도 만들고, 플라스틱도 떼다 팔고 별 일을 다 합니다. 사진 찍기는 사실 취미인데요. 좋아하는 걸로는 봉사를 하고, 밥벌이는 별개죠(웃음).”
사진으로 영정사진 봉사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1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였다. 어머니의 낡은 증명사진 한 장을 들이밀면서 사진하는 친구에게 영정사진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해도 너무 한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영정사진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그때의 일을 반성하는 심정으로, 어르신들을 위해 영정사진을 찍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2007년 건강관리공단의 제안으로 서울 우면동에 사는 어르신들 영정사진을 찍어준 게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에 증명이 되는 사진을 찍어준다니 하나같이 그를 반기더라고. 사진으로 봉사를 한다는 것이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그 자신조차 즐거워지는 도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면 봉사 못 했을 것
그는 온라인 블로그에 자신의 봉사활동에 관한 소식을 올려두기 시작했다. ‘고아원에는 플라스틱 제품을 무료로 전달해드립니다.’ ‘어르신들 영정사진 필요한 곳은 말씀해주세요’ 그의 블로그를 보고 화성시 자원봉사센터 측에서도 연락이 왔다. 한 장애인 관련 행사에서 선정된 가족을 위해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기도 했다.
혼자서 활동하던 그에게 조력자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봉사처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 오며가며 일을 하다 만난 사람 등 봉사의 뜻 있는 사람들과 힘을 합쳤다. 매달 사진 봉사를 위해 돈을 털어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고 액자까지 만들어준다. 환경관리공단 지사장으로 퇴임한 어떤 이는 봉사를 위해 자신의 5인승 승합차도 11인승으로 바꾸었다. 봉사에 열심인 그는 인복도 꽤 많은 사람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네 앞가림도 못하면서 오지랖 넓게 무슨 봉사냐고, 하하. 하지만 만약 제가 단순히 직장생활만 했다면 봉사를 이렇게까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남들이 낼 수 없는 시간에 저는 일을 하며 봉사를 하고, 봉사를 통해 일을 하니 감사할 뿐이죠.”
그는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사회가 아닌 더불어 함께 살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저 긍정의 힘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엔, 그의 왕성한 ‘활동력’에서 감탄하지 않을 이가 없을 것 같다.
“모든 사람 존경하면서 살면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는 안양 은혜의 집과 행복의 집, 군포에 있는 요한의 집 등 복지시설에 빵 배달을 나간다. 지자체에 등록조차 안 된 영세한 시설, 말 그대로 ‘돈 내는 사람 없고 돈 쓸 데는 많은’ 곳을 대상으로 약 200여 개의 빵을 전달해주고 있다. 빵을 만들어 공급하는 숨겨진 봉사자는 또 따로 있다. 고아원 같은 데는 틈나는 대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각종 물품을 가져다주고 말없이 돌아오기도 한다.
“모든 사람을 존경하면서 살자는 게 제 모토예요. 저는 영정사진을 찍어줄 때 어르신들이 무척 고마워할 때가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누군가 엄청난 부자가 되고 한쪽에선 굶고 있는 것보다, 모두가 함께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이 행복한 거 아니겠어요?”
언젠가부터 헌혈도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하게 되었다고. 우연히 예비군 훈련 때 강의를 들었는데 국내에 피가 부족해서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단 말을 들었단다. 한국 사람에겐 한국 사람의 피가 좋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헌혈차만 보면 주저 없이 들어가서 팔을 걷는다. 작은 봉사지만 자신의 사소한 헌신으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즐겁다고.
“봉사도 공부인 것 같아요. 저도 예비군 훈련 때 그 정보를 못 들었다면 평생을 헌혈 차 피해 다녔을 거예요(웃음). 봉사는 ‘한 번 같이 해보면 참 좋더라’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요. 한 번 하고 두 번 하면서 나중엔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한 느낌을 받는…. 봉사란 그런 거죠. 잠시도 없으면 숨 못 쉬고 답답한 거.”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