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장애인복지관 봉사자 윤혜숙 씨
수리장애인복지관 봉사자 윤혜숙 씨
by 안양교차로 2013.06.28
“한 쪽 시력 잃어도 삶은 긍정할 수 있습니다”
윤혜숙 씨는 수리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들의 독서를 돕는 음성녹음 봉사를 하고 있다. 사업을 하며 혼자만 알고 살던 지난 날, 16억 가량의 부도가 나 전 재산을 잃고 난 뒤 봉사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 자신이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장애인으로서, 누구보다 시각장애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기에 현재 하는 일이 마냥 행복하다고 말한다.
왼쪽 눈 시력 잃은 후 봉사 시작하게 된 이유
젊은 시절 봉제회사에서 일하던 윤혜숙 씨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가 암 투병으로 병상에 있으면서 회사 일을 그만두고 간병인 노릇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사업을 떠맡아 운영하게 됐지만 회사는 점차 기울었다. 자그마치 16억 원이라는 큰 부도를 맞고 파산했을 때 그는 충격을 받아 왼쪽 눈을 다쳤다. 병원에서는 약물 치료로 고칠 수 있다고 했지만, 상태는 점점 더 심해졌다. 급기야 각막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한 쪽 눈을 잃고 말았다. 병명조차 없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질병이라고 했다.
“그때가 40대 초반이에요. 운전하다가 앞 유리에 흙탕물이 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스테로이드 성분의 약제로 치료를 받았는데 몸무게가 12kg나 늘더라고요. 지금도 그때 살이 좀 남아 있어요.”
웃으면서 말하지만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날 한쪽 눈을 잃고 6급 장애인이 된다고 상상해보라. 초점이 맞지 않아 운전 중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고, 지금도 계단에서 발을 자주 헛디딘다고. 때마침 간 절제 수술을 받아서 기력이 떨어진 그는 우울증에 걸려 한 동안 집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남편이 저에게 봉사를 권유하더라고요. 남편은 젊은 시절 봉사하면서 만났는데, 제가 힘들 때 봉사가 약이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시작한 봉사가 바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한 시각장애인 부부를 상대로 봉사를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듣기 좋으니 녹음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듣게 됐다고.
윤혜숙 씨는 수리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들의 독서를 돕는 음성녹음 봉사를 하고 있다. 사업을 하며 혼자만 알고 살던 지난 날, 16억 가량의 부도가 나 전 재산을 잃고 난 뒤 봉사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 자신이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장애인으로서, 누구보다 시각장애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기에 현재 하는 일이 마냥 행복하다고 말한다.
왼쪽 눈 시력 잃은 후 봉사 시작하게 된 이유
젊은 시절 봉제회사에서 일하던 윤혜숙 씨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가 암 투병으로 병상에 있으면서 회사 일을 그만두고 간병인 노릇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사업을 떠맡아 운영하게 됐지만 회사는 점차 기울었다. 자그마치 16억 원이라는 큰 부도를 맞고 파산했을 때 그는 충격을 받아 왼쪽 눈을 다쳤다. 병원에서는 약물 치료로 고칠 수 있다고 했지만, 상태는 점점 더 심해졌다. 급기야 각막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한 쪽 눈을 잃고 말았다. 병명조차 없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질병이라고 했다.
“그때가 40대 초반이에요. 운전하다가 앞 유리에 흙탕물이 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스테로이드 성분의 약제로 치료를 받았는데 몸무게가 12kg나 늘더라고요. 지금도 그때 살이 좀 남아 있어요.”
웃으면서 말하지만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날 한쪽 눈을 잃고 6급 장애인이 된다고 상상해보라. 초점이 맞지 않아 운전 중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고, 지금도 계단에서 발을 자주 헛디딘다고. 때마침 간 절제 수술을 받아서 기력이 떨어진 그는 우울증에 걸려 한 동안 집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남편이 저에게 봉사를 권유하더라고요. 남편은 젊은 시절 봉사하면서 만났는데, 제가 힘들 때 봉사가 약이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시작한 봉사가 바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한 시각장애인 부부를 상대로 봉사를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듣기 좋으니 녹음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듣게 됐다고.
봉사의 이름으로 나를 사랑하다
“제가 목소리가 ‘솔’보다 조금 낮은 저음이라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됐죠. 장애인복지관에서 녹음 봉사를 하려면 시각장애인들의 테스트를 거쳐야 해요. 다행히 통과가 돼서 2년 전부터 봉사를 시작했어요. 매주 한 번씩 2시간 녹음하고 있어요. 에세이도 있고 소설도 있는데 주로 제가 읽고 감명 받은 책을 위주로 선정하죠.”
봉사를 하고 난 뒤 오히려 자신의 상처가 치료가 되고, 삶에서 위로받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힘이 드는 일이 아니라서 자신처럼 수술 이후 몸이 약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봉사라고. 책 한 권 분량을 테이프 앞뒤로 녹음하면 4개 분량이 나오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장애인들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마냥 흐뭇하다며 웃는 윤혜숙 씨.
그는 적십자를 통해 독거노인 반찬봉사도 하고 있다. 자신의 차를 이용해 반찬을 배달하고 시각장애인들은 원하는 목적지까지 차로 데려다주기도 한다. 그는 “봉사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만 결국은 내 인생을 위한 것”이라며 “남은 한쪽 눈이 보이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에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을 위해 밥 한 끼 사줄 수 있다면…인생은 행복한 것
그는 청소년들을 위한 미술치료 봉사도 한다. 평일에는 생명보험 상품을 팔면서 독거노인을 위한 전화봉사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수영이나 운동을 한다고 하니 봉사하는 사람치곤 스케줄이 꽤 빠듯한 셈이다.
“사업할 때부터 시간을 빠듯하게 썼어요. 몸은 제가 관리하지 않으면 봉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거니까 하죠. 남들은 저보고 의지가 꽤 강하다고 하는데, 어릴 때부터 지기 싫어했어요. 40대 때 전신마취 4번하고 수술한 여자는 꽤 드물잖아요?(웃음) 저는 남은 인생 덤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있어요.”
“제가 목소리가 ‘솔’보다 조금 낮은 저음이라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됐죠. 장애인복지관에서 녹음 봉사를 하려면 시각장애인들의 테스트를 거쳐야 해요. 다행히 통과가 돼서 2년 전부터 봉사를 시작했어요. 매주 한 번씩 2시간 녹음하고 있어요. 에세이도 있고 소설도 있는데 주로 제가 읽고 감명 받은 책을 위주로 선정하죠.”
봉사를 하고 난 뒤 오히려 자신의 상처가 치료가 되고, 삶에서 위로받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힘이 드는 일이 아니라서 자신처럼 수술 이후 몸이 약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봉사라고. 책 한 권 분량을 테이프 앞뒤로 녹음하면 4개 분량이 나오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장애인들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마냥 흐뭇하다며 웃는 윤혜숙 씨.
그는 적십자를 통해 독거노인 반찬봉사도 하고 있다. 자신의 차를 이용해 반찬을 배달하고 시각장애인들은 원하는 목적지까지 차로 데려다주기도 한다. 그는 “봉사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만 결국은 내 인생을 위한 것”이라며 “남은 한쪽 눈이 보이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에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을 위해 밥 한 끼 사줄 수 있다면…인생은 행복한 것
그는 청소년들을 위한 미술치료 봉사도 한다. 평일에는 생명보험 상품을 팔면서 독거노인을 위한 전화봉사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수영이나 운동을 한다고 하니 봉사하는 사람치곤 스케줄이 꽤 빠듯한 셈이다.
“사업할 때부터 시간을 빠듯하게 썼어요. 몸은 제가 관리하지 않으면 봉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거니까 하죠. 남들은 저보고 의지가 꽤 강하다고 하는데, 어릴 때부터 지기 싫어했어요. 40대 때 전신마취 4번하고 수술한 여자는 꽤 드물잖아요?(웃음) 저는 남은 인생 덤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있어요.”
의왕에서 월세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살 정도니 형편이 넉넉지 않은 건 여전하다. 빚을 갚는 데만 10년이 걸렸는데 이제는 적은 돈벌이나마 용돈으로 쓰고 있으니 무조건 감사하단다.
“영업하면서 버는 돈 얼마 안 되죠. 몸이 약하니까 일도 많이 못하고…. 그래도 누구한테 밥 한 끼 사줄 정도는 버니까요. 그게 얼마나 큰 마음의 여유인가요?”
현재 윤혜숙 씨의 오른쪽 눈은 시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왼쪽 눈을 잃기 전에는 1.5였는데 0.8에서 최근에는 0.6으로 떨어졌다고. 고칠 수 있는 방도가 없기에 그냥 두고 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윤혜숙 씨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내 할 일이 있어야 하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며 “남을 배려하는 데서 삶의 완성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럴수록 더 크게 웃고 삶을 긍정한다는 윤혜숙 씨. 그가 말하는 봉사는 첫째도 둘째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봉사는 돈도 안 받고 하는 일이라고 무작정 하면 안 돼요. 한 번 시작하면 꾸준하게,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봉사가 다 끝난 뒤에도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할 수 있게끔, 그래서 살면서 언젠가 한 번쯤 나를 찾을 수 있게끔.”
취재 오혜교 기자
“영업하면서 버는 돈 얼마 안 되죠. 몸이 약하니까 일도 많이 못하고…. 그래도 누구한테 밥 한 끼 사줄 정도는 버니까요. 그게 얼마나 큰 마음의 여유인가요?”
현재 윤혜숙 씨의 오른쪽 눈은 시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왼쪽 눈을 잃기 전에는 1.5였는데 0.8에서 최근에는 0.6으로 떨어졌다고. 고칠 수 있는 방도가 없기에 그냥 두고 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윤혜숙 씨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내 할 일이 있어야 하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며 “남을 배려하는 데서 삶의 완성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럴수록 더 크게 웃고 삶을 긍정한다는 윤혜숙 씨. 그가 말하는 봉사는 첫째도 둘째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봉사는 돈도 안 받고 하는 일이라고 무작정 하면 안 돼요. 한 번 시작하면 꾸준하게,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봉사가 다 끝난 뒤에도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할 수 있게끔, 그래서 살면서 언젠가 한 번쯤 나를 찾을 수 있게끔.”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