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행복한 사과나무 서상현 “사건 처리할 때도 봉사정신이 필요합니다.”

행복한 사과나무 서상현 “사건 처리할 때도 봉사정신이 필요합니다.”

by 안양교차로 2013.06.28

서상현 경사는 광진경찰서 통합형사팀 소속으로 올해로 10년 차 경력을 가진 베테랑 형사다. 살인, 강도, 강간 등 흔히 중범죄라고 부르는 것들을 일선에서 처벌까지 마무리하는, 그야말로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투박하지만 선한 심성을 가진 그가 범죄자들을 대할 때는 범죄 동기의 질을 칼같이 구분하는 매의 눈을 갖고 있다. 서상현 씨는 “피의자들 중에는 생계형 범죄로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많은데, 역지사지의 자세로 임하려고 노력한다”며 봉사활동이 마음의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형식적인 봉사보다 몸으로 뛰는 봉사가 좋다
서울 세종고등학교 출신인 그는 봉사라곤 교내 봉사동호회인 ‘개미회’에서 활동한 게 전부다. 선배들이 참여하니 뭣 모르고 시작했지만, 좋은 일 한다는 생각에 머물렀다고. 그랬던 그가 안양의 행복한 사과나무를 만나게 된 것은 한국다문화연대를 통해서다. 국내 거주하는 소외된 외국인가정을 돌보면서 조금씩 봉사의 숨은 보람을 알게 됐단다.
“평소엔 ‘봉사가 봉사지. 뭐 별게 있나’하는 생각에 별 뜻 없이 동참했죠. 하다 보니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 게 진짜 봉사구나’싶은 게 바빠도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하루걸러 밤샘근무를 하며 온갖 험한 범죄자들과 부대끼는 그의 직업이야말로 ‘봉사 정신’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딜 가도 내세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동료 형사들도 그가 봉사활동을 하는 줄 몰랐다고 했다.
“경찰서 내에 봉사동호회처럼 운영되는 조직이 있죠. 저도 때마다 끼어서 생활필수품 같은 거 배달하고 사진 찍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좀 형식적이란 느낌은 있죠. 일회성 봉사니까요. 행복한 사과나무에서 봉사한 이후로 진짜 봉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한 계기가 되었어요.”
“판사님, 저 분 어렵게 사시는데 잘 좀 봐주세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꽤 있다. 그것도 아주 많다. 서상현 씨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현미경을 들이대 관찰하는 사람이다. 관찰만 하는 게 아니라 문제점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이다.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온갖 인간군상이 모여든 경찰서에는 스트레스가 늘 위험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범죄자들 중에는 대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한 번의 실수로 쇠고랑을 차요. 그런 분들을 ‘사건 처리’한다는 생각으로 대충 대충 넘겨버리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최대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원만하게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봉사하면서 그런 게 참 바뀌더라고요.(웃음)”
한 번은 과도한 음주로 행패를 부리다 공무집행 방해죄로 붙들려온 중년의 남성을 상대하게 됐다. 서너 시간을 고함을 지르며 경찰들에게 주먹을 휘두른 그 남자를 동료들은 “당장에 구속영장 넣어라”하고 말했다. 하지만 서상현 씨는 그를 어르고 달래 술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사과를 받았다. 그래야 훈방 조치하고 돌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아무래도 봉사 경험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오죽하면 제가 판사님한테 그래요. ‘저 사람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서 어렵게 사는 사람이니까 잘 봐달라고.’ 하하.”
험한 세상에 봉사하며 사는 일 가치 있어
베데스다 집을 비롯해 그가 봉사한 곳은 꽤 다양하다. 행복한 사과나무에서는 법률봉사 부문에서 활동하며 안양의 소외된 이웃들과 법을 모르는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홍천에 위치한 삼덕원에서 봉사하며 장애우들을 처음 만났다.
“장애우 분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요. 특별하잖아요(웃음). 웃는 것도 어린아이 같고, 굉장히 순수하죠. 그런 분들 보면서 ‘아, 내가 사람들 조사할 때도 그 분들 마음을 최대한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국립의료원 정의식 박사는 서상현 경사를 두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부당하게 피해를 당한 분들 사정을 하나하나 다 들어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옆에서 봐도 사명감으로 일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봉사든 일이든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서상현 씨는 “세상에는 정말 태어날 때부터 사악한 사람도 분명 있는 것 같다”며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존심 때문에 정말 끝까지 가보자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쌍방이 우연한 다툼으로 맞고소를 해서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소를 접수하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는 게 드러나는데 당사자들의 고집 때문에 괜한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다.
그는 “험한 세상에 살면서 봉사를 하고 산다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매일 깨닫는다”며 “봉사활동을 낮춰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봉사의 가치를 알면 힘든 상황에서도 봉사를 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