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거래소 이종호 씨 "사람 속은 모르지만, 봉사는 하는 사람만 합니다"
한국전력거래소 이종호 씨 "사람 속은 모르지만, 봉사는 하는 사람만 합니다"
by 안양교차로 2013.06.28
“사람 속은 모르지만, 봉사는 하는 사람만 합니다”
한국전력거래소 노조위원장인 이종호 씨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웃는 얼굴이었다. 노조하면 흔히 떠올리는 매서움이나 결연함은 찾을 수 없었다. 공기업의 노조위원장이라는 직위에 있으면서도 그는 안양에서 틈틈이 봉사를 실천하고 있었다. 사내에서는 ‘반디봉사단’을 결성해 안양 베데스다 등에서 봉사하며 오랫동안 활동해오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 노조위원장인 이종호 씨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웃는 얼굴이었다. 노조하면 흔히 떠올리는 매서움이나 결연함은 찾을 수 없었다. 공기업의 노조위원장이라는 직위에 있으면서도 그는 안양에서 틈틈이 봉사를 실천하고 있었다. 사내에서는 ‘반디봉사단’을 결성해 안양 베데스다 등에서 봉사하며 오랫동안 활동해오고 있다.
시간 흘러도 봉사현장 늘 새로워…후원처 선정은 가장 큰 고민
안양교도소와 베데스다는 봉사자들이 한 번쯤은 들러 가는 코스인 것 같다. 이종호 씨도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두 군데서 봉사를 했다. 20년을 넘게 봉사를 했으니 이젠 무덤덤할 것 같지만 봉사현장은 늘 새롭다고 한다. 현재는 회사 차원에서 매년 3차례 몇 개의 시설을 선정해 후원금을 지원하는 일을 도맡고 있다.
“후원금으로 지원한다는 게 참 그래요. 어려운 곳이라고 해서 가면 기관장이 나와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합니다. 설명을 들을 땐 ‘정말 도움이 꼭 필요한 곳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뒤돌아서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도 있거든요. 사람 속은 정말 모르겠어요(웃음).”
회사에선 사회공헌활동으로 진행되는 봉사의 영역을 그 덕분에 넓힌 효과를 봤다. 봉사팀을 직접 꾸리고, 꼭 필요한 곳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그의 역할은 노조위원장이란 직책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상조회 운영하다보면 직원들 경조사 챙기면서 봉사 일도 자연스럽게 맡았다”며 “노조라는 게 너무 한쪽으로만 이미지가 치우쳐 오해를 산다”고 설명했다.
“한 달에 회식 한 번 덜하면, 어려운 학생 장학금은 되니까요”
그는 봉사 이력을 말하면서 늘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어진 직책이고 일이기에 봉사를 하는 것 같지만, 봉사를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지 않다는 게 좀 더 정확한 속내다. 이미 개인 봉사자로서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통해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터라 봉사와 그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봉사 인원이 몇 명 필요할 때는 직원들을 주선해줄 수 있으니 제 역할이 참 중요하죠. 안양 쪽에 있는 시설은 거의 다 돌아본 것 같아요. 요즘 봉사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예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방식이 바뀐 것 같아요. 그래도 뭐…, 봉사는 여전히 하시는 분들만 하죠.”
이종호 씨는 몇 해 전부터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관내 고등학생 1명에게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다. 매달 10만 원씩 1년이면 그리 큰돈은 못 되지만, 어른들이 회식 한 번 안하면 학생 한 사람 장학금은 될 것 같아서 떠올린 아이디어다.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과는 일면식이 없지만, 수도권의 알 만한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는 친아빠처럼 뿌듯한 마음이 든단다.
한 번의 봉사, 사람의 인생 바꿀 수 있어…아름다운 노년 위해 봉사하시라
봉사는 오랜 경험을 가진 그에게도 매번 새로운 교훈을 준다. 한 단체의 수장이나 봉사단체의 일원이 아닌, 개인으로 봉사를 할 때의 그의 모습은 평범한 시민일 따름이다.
안양교도소와 베데스다는 봉사자들이 한 번쯤은 들러 가는 코스인 것 같다. 이종호 씨도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두 군데서 봉사를 했다. 20년을 넘게 봉사를 했으니 이젠 무덤덤할 것 같지만 봉사현장은 늘 새롭다고 한다. 현재는 회사 차원에서 매년 3차례 몇 개의 시설을 선정해 후원금을 지원하는 일을 도맡고 있다.
“후원금으로 지원한다는 게 참 그래요. 어려운 곳이라고 해서 가면 기관장이 나와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합니다. 설명을 들을 땐 ‘정말 도움이 꼭 필요한 곳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뒤돌아서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도 있거든요. 사람 속은 정말 모르겠어요(웃음).”
회사에선 사회공헌활동으로 진행되는 봉사의 영역을 그 덕분에 넓힌 효과를 봤다. 봉사팀을 직접 꾸리고, 꼭 필요한 곳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그의 역할은 노조위원장이란 직책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상조회 운영하다보면 직원들 경조사 챙기면서 봉사 일도 자연스럽게 맡았다”며 “노조라는 게 너무 한쪽으로만 이미지가 치우쳐 오해를 산다”고 설명했다.
“한 달에 회식 한 번 덜하면, 어려운 학생 장학금은 되니까요”
그는 봉사 이력을 말하면서 늘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어진 직책이고 일이기에 봉사를 하는 것 같지만, 봉사를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지 않다는 게 좀 더 정확한 속내다. 이미 개인 봉사자로서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통해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터라 봉사와 그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봉사 인원이 몇 명 필요할 때는 직원들을 주선해줄 수 있으니 제 역할이 참 중요하죠. 안양 쪽에 있는 시설은 거의 다 돌아본 것 같아요. 요즘 봉사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예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방식이 바뀐 것 같아요. 그래도 뭐…, 봉사는 여전히 하시는 분들만 하죠.”
이종호 씨는 몇 해 전부터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관내 고등학생 1명에게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다. 매달 10만 원씩 1년이면 그리 큰돈은 못 되지만, 어른들이 회식 한 번 안하면 학생 한 사람 장학금은 될 것 같아서 떠올린 아이디어다.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과는 일면식이 없지만, 수도권의 알 만한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는 친아빠처럼 뿌듯한 마음이 든단다.
한 번의 봉사, 사람의 인생 바꿀 수 있어…아름다운 노년 위해 봉사하시라
봉사는 오랜 경험을 가진 그에게도 매번 새로운 교훈을 준다. 한 단체의 수장이나 봉사단체의 일원이 아닌, 개인으로 봉사를 할 때의 그의 모습은 평범한 시민일 따름이다.
“한 번은 고등학생인데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남학생이 혼자 사는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뭐, 말할 것도 없죠. 특히 독거 어르신들 장판 깔아드리러 가면 마음이 아파서 말문이 탁 막힙디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어려운 분들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건 봉사자들이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는 여전히 “봉사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실제 봉사자들 중에는 형편이 어려운데도 남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서는 사람이 많다며, “나이 들수록 더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종호 씨. 아직은 직장에 매인 몸이라 지역 봉사에 적극적이지 못한 아쉬움도 크지만, 은퇴 이후에 봉사하며 살겠다고 작정한 터라 애착이 간다고. 현재 직함은 노조위원장이지만 은퇴를 하고 나면 평범한 봉사자의 신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은퇴 이후 밑천이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몸 관리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 들어서 육체적인 봉사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는 봉사에 몸을 사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참 봉사는 뿌듯한 것인데 많은 분들이 그 맛을 모른다는 게 아쉽죠. 저처럼 은퇴 이후 계획을 세우고 계신 분들은 꼭 한 번 봉사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공식처럼 다들 그러더라고요. 처음엔 힘들지만 나중엔 중독된다고(웃음).”
취재 오혜교 기자
그는 여전히 “봉사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실제 봉사자들 중에는 형편이 어려운데도 남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서는 사람이 많다며, “나이 들수록 더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종호 씨. 아직은 직장에 매인 몸이라 지역 봉사에 적극적이지 못한 아쉬움도 크지만, 은퇴 이후에 봉사하며 살겠다고 작정한 터라 애착이 간다고. 현재 직함은 노조위원장이지만 은퇴를 하고 나면 평범한 봉사자의 신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은퇴 이후 밑천이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몸 관리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 들어서 육체적인 봉사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는 봉사에 몸을 사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참 봉사는 뿌듯한 것인데 많은 분들이 그 맛을 모른다는 게 아쉽죠. 저처럼 은퇴 이후 계획을 세우고 계신 분들은 꼭 한 번 봉사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공식처럼 다들 그러더라고요. 처음엔 힘들지만 나중엔 중독된다고(웃음).”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