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택시기사 김형준 씨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러니 봉사하는 것이죠."

택시기사 김형준 씨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러니 봉사하는 것이죠."

by 안양교차로 2013.06.28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러니 봉사하는 것이죠.”

택시기사란 으레 ‘먹고 살기 빠듯하다’거나 ‘근무강도가 센 일’로 대체로 여유가 없는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택시기사들 중에도 말없이 봉사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택시도 아니고, 매일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회사에 자기 돈을 입금해야 하는 처지지만 평일 귀한 시간을 쪼개 봉사에 임하는 김형준 씨 같은 이들이다.
사납금 못 채워도 봉사하는 게 더 행복해
풍채가 좋은 김형준 씨는 훤칠한 외모만 보면 택시기사처럼 안 보인다. 어쩐지. 택시 일을 하게 된 지는 얼마 안 됐단다. 지난해 12월, 어렵게 운영하던 사업을 정리한 뒤로 새로 시작한 일이 택시기사였다. 그 전엔 부인과 함께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을 운영하며 횟집을 경영했다. 사업수완이 썩 좋아보이진 않는데 김형준 씨 말에 따르면 “돈이 그냥 들어왔던 운 좋았던 시절”이었단다.
현재는 부인만 피아노 학원을 유지하고 있고 그는 사업에서 손을 완전히 뗐다. 그래도 먹고 사는 덴 지장이 없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진 못하지만, 뒤늦게라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이 택시 일 아니던가. 그런데 사납금 채우기에도 빠듯한 처지에 봉사라니 좀 의외였다.
“봉사를 해야겠다는 동기 그런 거 없어요. 젊은 시절엔 나 먹고 살기 바빴죠. 돈 욕심도 많았고(웃음).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현재 의왕시니어클럽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도시락 반찬 배달을 한다. 10시부터 2시까지 동료 택시기사와 함께 10여 가정을 돌면서 60km쯤 돈다. 한창 일할 시간에 봉사한다고 가스를 쓰고 있으니, 당일 사납금은 별 수 없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그거 벌어서 뭐하게요. 저는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지만, 돈에 매여 살진 않아요. 그 시간에 돈 버는 것보다 봉사하는 게 좋으니까 하는 거죠. 다른 날에 더 열심히 뛰면 잔금이 또 메워지고, 그래요.”
“저만 빼놓고 다들 봉사하며 살고 있더라고요”
그는 2009년부터 아름채 복지관을 통해 꾸준히 봉사해왔다. 주간노인보호, 어르신목욕 등의 봉사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절친한 친구 소개로 시작하게 됐지만, 봉사를 하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더란다. 사업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하루는 꼭 비우곤 했는데, 정작 김형준 씨는 자신이 하는 일은 봉사가 아니라면서 손사래를 계속 친다.
“제게 봉사를 권한 친구는 공무원 퇴직한 친군데 젊은 시절부터 봉사를 꾸준히 했어요. 제가 하는 건 그냥 저 좋자고 하는 거지 봉사는 아니죠. 주변에 둘러보세요. 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협의회 이런 데서 계신 분들 다 봉사하는 거예요. 제가 보니까 저만 빼고 다들 그렇게 봉사하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지금 하고 있는 도시락배달은 얼핏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꽤 막중한 일이다. 시니어클럽에서 만든 반찬을 아름채에서 도시락으로 만든 다음, 관내 30여개 가정을 도는데 택시 2대 지원으로 배달 일이 한결 손쉬워진다. 차가 없으면 어르신들 각자가 손에 도시락을 들고 집집을 방문하는 식이라고 하니 이해가 금방 된다.
“어르신들은 운전 못하는 분들도 많고, 걸음도 느리시니 도시락 배달이 쉽지 않죠. 하지만 이렇게 동료랑 제가 하루만 시간을 내주면 배달 봉사하시는 분들 일손을 덜 수 있는 거예요. 작지만 이 일에서 제가 큰 보람을 느끼는 이유죠.”
봉사한 뒤로 일하는 자세 바뀌어…“세상살이 각박하지만은 않다”
도시락 배달을 가면 대개 어르신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더러는 ‘사장님’이라고 하고, 더러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통점은 자신이 받는 것에 고마워할 줄 안다는 것. 어렵게 사는 이들이 많다는 걸 봉사하면서 새삼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입에서 “어르신”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자신의 뻣뻣함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제가 참 목이 굳은 사람이었어요. 봉사 하면서 사람 됐죠. 택시나 버스기사들 있잖아요. 혹여 목발 짚은 사람이 타려고 하면 절대 안 세워요. 그런데 저는 다른 손님 다 제쳐놔도 목발 짚은 손님은 차에서 내려서 직접 태워드려요. 이것도 봉사하면서 바뀐 점이죠. 그래도 여전히 술 잔뜩 취한 사람은 안 태워요. 하하”
택시를 몰면 험한 세상에 각박한 현실, 온몸으로 느낄 텐데 봉사할 마음의 여력도 있다니 그는 참 품이 넓은 사람 같다. 하지만 김형준 씨는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더 많기에 잘 돌아가는 것”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세상살이가 꼭 그렇게 각박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택시기사도 봉사의 정신이 있어야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신호가 걸려 있어도 생계를 위해선 손님이 서 있는 곳으로 가는 것, 그 자체가 벌써 마음을 비운 봉사정신이라는 얘기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는 놀러가고 즐기는 것보다는 봉사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것뿐이죠. 어려운 사람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과 자기 돈을 갖고 즐기는 것, 어떤 게 더 보람과 가치가 있겠어요? 봉사는 돈 있어도 못하는 겁니다. 자기 마음이 필요하거든요.”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