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대학 사회복지과 안보름 '공부방 봉사로 사회복지사 꿈꾸게 됐어요'
대림대학 사회복지과 안보름 '공부방 봉사로 사회복지사 꿈꾸게 됐어요'
by 안양교차로 2013.06.28
“공부방 봉사로 사회복지사 꿈꾸게 됐어요”
대림대학 사회복지과 안보름 양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가는 대신 공부방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있다. 남들처럼 성적 올리기에 목을 맬 수는 없지만, 이중엔 공부방에서 봉사를 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된 경우도 있다. 올해 대림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안보름 양은 공부방 자원봉사로 ‘국회의원상’까지 받았다. 새내기 대학생으로 한창 바쁜 보름 양은 “막상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나니 ‘봉사시간’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대림대학 사회복지과 안보름 양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가는 대신 공부방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있다. 남들처럼 성적 올리기에 목을 맬 수는 없지만, 이중엔 공부방에서 봉사를 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된 경우도 있다. 올해 대림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안보름 양은 공부방 자원봉사로 ‘국회의원상’까지 받았다. 새내기 대학생으로 한창 바쁜 보름 양은 “막상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나니 ‘봉사시간’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우연히 들른 공부방서 행정보조 봉사 경험
조부모와 고모까지 얹힌 일곱 식구 대가족. 맡언니인 보름 양은 일찍부터 조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맞벌이를 했던 터라 학교가 끝나면 안양 5동 지역 공부방으로 향했던 보름 양. 처음엔 심심해서 동생 손 붙잡고 갔었지만, 어느덧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 행정보조 봉사자로 일을 거드는 처지가 되었다.
“그 전까지는 늘 받는 것에 익숙해 감사할 줄 몰랐죠. 봉사를 하면서 문화체험도 하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사무도 배우니까 철이 들더라고요(웃음).”
중학교 때부터 다닌 공부방에서는 사소한 복사 심부름부터 아이들 돌보는 일, 각종 행사 때 팔 걷어 부치고 일한 것까지 많은 일들을 했다. 일하면서도 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건 그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좋았고,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제가 되게 힘이 좋거든요. 연약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대신 짐도 나르고 연말에는 산타 복장하고 동네 아이들 찾아다니면서 선물도 나눠줬어요.”
씩씩하고 구김살 없어 보이는 보름 양이지만 공부방에 와서 성격이 많이 변했단다. 그 전까진 수줍고 말이 없는 아이였는데,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우면서 활동적으로 변했다.
“아이들 행복해하는 모습에 감동…어려운 사람 돕는 게 사명 같아”
보름 양이 꿈꿨던 장래희망은 어찌 보면 공부방 내에서 꾸는 꿈이었다. 사회복지사들을 보고 자랐지만, 처음엔 연극배우가 되고 싶기도 했다. 매년 공부방 내에서 연극행사를 하는데, 2년 동안 ‘고정출연’하면서 박수를 받았다고. 하지만 사회복지의 꿈이 더 컸던 터라 고등학교 때는 아예 진로를 굳혔다.
“부모님께서는 사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보니 물리치료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제가 워낙 봉사를 많이 하는 걸 보고, 공부방에서 종일 있다오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셨죠.”
조부모와 고모까지 얹힌 일곱 식구 대가족. 맡언니인 보름 양은 일찍부터 조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맞벌이를 했던 터라 학교가 끝나면 안양 5동 지역 공부방으로 향했던 보름 양. 처음엔 심심해서 동생 손 붙잡고 갔었지만, 어느덧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 행정보조 봉사자로 일을 거드는 처지가 되었다.
“그 전까지는 늘 받는 것에 익숙해 감사할 줄 몰랐죠. 봉사를 하면서 문화체험도 하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사무도 배우니까 철이 들더라고요(웃음).”
중학교 때부터 다닌 공부방에서는 사소한 복사 심부름부터 아이들 돌보는 일, 각종 행사 때 팔 걷어 부치고 일한 것까지 많은 일들을 했다. 일하면서도 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건 그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좋았고,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제가 되게 힘이 좋거든요. 연약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대신 짐도 나르고 연말에는 산타 복장하고 동네 아이들 찾아다니면서 선물도 나눠줬어요.”
씩씩하고 구김살 없어 보이는 보름 양이지만 공부방에 와서 성격이 많이 변했단다. 그 전까진 수줍고 말이 없는 아이였는데,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우면서 활동적으로 변했다.
“아이들 행복해하는 모습에 감동…어려운 사람 돕는 게 사명 같아”
보름 양이 꿈꿨던 장래희망은 어찌 보면 공부방 내에서 꾸는 꿈이었다. 사회복지사들을 보고 자랐지만, 처음엔 연극배우가 되고 싶기도 했다. 매년 공부방 내에서 연극행사를 하는데, 2년 동안 ‘고정출연’하면서 박수를 받았다고. 하지만 사회복지의 꿈이 더 컸던 터라 고등학교 때는 아예 진로를 굳혔다.
“부모님께서는 사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보니 물리치료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제가 워낙 봉사를 많이 하는 걸 보고, 공부방에서 종일 있다오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셨죠.”
보름 양의 아버지는 사업실패 이후 당뇨 때문에 집에서 지낼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생활도우미나 간병인 일을 하면서 집에 없을 때가 많았다. 혼자서 동생을 돌보며 공부방을 오가는 생활이 사춘기 때는 못마땅하고 불편했을 수 있다.
“제가 성격이 좀 욱하고 그래요(웃음). 예전에 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셔서 술만 드실 땐 소리도 괜히 꽥 지르고 그랬죠. 하지만 크게 부모님 속 썩였던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어머니는 공부방에서 밥 먹고 오면 집에 쌀 떨어질 일 없다고 좋아하셨죠. 하하.”
보름 양은 왜 봉사에 큰 매력을 느꼈을까. “어울려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게 좋다”는 것이 그 이유다. 조용한 성탄절에 산타 복장을 하고 몰래 동네 아이들을 찾아가 선물을 나눠주면,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다고.
“저는 학교에 가도 친구들이랑 음식 싸와서 나눠 먹는 게 참 좋아요. 어릴 때부터 내 것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어려워도 대식구니까 나눠 먹는 습관이 몸에 배기도 했고. 사회복지사가 돈 많이 못 번다는 것 저도 알아요. 그래도 돈 욕심은 없어요. 제가 하는 일을 통해서 어려운 사람들이 기쁘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한 거죠.”
시간보다 봉사하는 마음이 중요…“힘들 줄 알면서도 열심히 하는 게 봉사”
보름 양에게도 사회복지사의 꿈을 심어주었던 롤모델이 있었다. 자신이 고등학교 때 속 얘기를 기탄없이 들어주고, 소꿉친구처럼 눈높이를 맞춰줬던 사회복지사. 그처럼 상대방에게 친구 같은 복지사가 되는 것이 보름 양의 목표다. 이제 막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그에게 생각했던 것과 실제 공부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저는 사회복지사가 그냥 어려운 사람 연결해주는 일인 줄 알았어요. 아직 잘 모르지만 복지사도 전문성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입학한 동기들 중에 봉사 오래 하셨던 이모님들도 계신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봉사활동이 전부는 아니라고.”
보름 양은 벌서부터 학과 내에서 성격 좋은 아이로 이름났다. 목소리 크고 씩씩하게 잘 웃는 사람은 늘 친구가 많은 법이니까. 사려 깊게도 보름 양은 어느새 봉사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정의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조금씩만 남에게 나눠주는 일이라는 것. 제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최소한 한 개쯤은 있다는 것이다.
“봉사해서 가장 좋은 점은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한 거예요. 정말 기뻐요. 그게 참 좋은데 뭐라고 표현이 안 되네…. 아, 힘들 줄 알면서도 그 시간에 무조건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그게 봉사인 것 같아요(웃음).”
취재 오혜교 기자
“제가 성격이 좀 욱하고 그래요(웃음). 예전에 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셔서 술만 드실 땐 소리도 괜히 꽥 지르고 그랬죠. 하지만 크게 부모님 속 썩였던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어머니는 공부방에서 밥 먹고 오면 집에 쌀 떨어질 일 없다고 좋아하셨죠. 하하.”
보름 양은 왜 봉사에 큰 매력을 느꼈을까. “어울려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게 좋다”는 것이 그 이유다. 조용한 성탄절에 산타 복장을 하고 몰래 동네 아이들을 찾아가 선물을 나눠주면,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다고.
“저는 학교에 가도 친구들이랑 음식 싸와서 나눠 먹는 게 참 좋아요. 어릴 때부터 내 것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어려워도 대식구니까 나눠 먹는 습관이 몸에 배기도 했고. 사회복지사가 돈 많이 못 번다는 것 저도 알아요. 그래도 돈 욕심은 없어요. 제가 하는 일을 통해서 어려운 사람들이 기쁘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한 거죠.”
시간보다 봉사하는 마음이 중요…“힘들 줄 알면서도 열심히 하는 게 봉사”
보름 양에게도 사회복지사의 꿈을 심어주었던 롤모델이 있었다. 자신이 고등학교 때 속 얘기를 기탄없이 들어주고, 소꿉친구처럼 눈높이를 맞춰줬던 사회복지사. 그처럼 상대방에게 친구 같은 복지사가 되는 것이 보름 양의 목표다. 이제 막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그에게 생각했던 것과 실제 공부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저는 사회복지사가 그냥 어려운 사람 연결해주는 일인 줄 알았어요. 아직 잘 모르지만 복지사도 전문성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입학한 동기들 중에 봉사 오래 하셨던 이모님들도 계신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봉사활동이 전부는 아니라고.”
보름 양은 벌서부터 학과 내에서 성격 좋은 아이로 이름났다. 목소리 크고 씩씩하게 잘 웃는 사람은 늘 친구가 많은 법이니까. 사려 깊게도 보름 양은 어느새 봉사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정의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조금씩만 남에게 나눠주는 일이라는 것. 제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최소한 한 개쯤은 있다는 것이다.
“봉사해서 가장 좋은 점은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한 거예요. 정말 기뻐요. 그게 참 좋은데 뭐라고 표현이 안 되네…. 아, 힘들 줄 알면서도 그 시간에 무조건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그게 봉사인 것 같아요(웃음).”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