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실버플래너 허찬복 씨 “인생은 ‘삼모작’, 봉사로 노년 준비하세요”

실버플래너 허찬복 씨 “인생은 ‘삼모작’, 봉사로 노년 준비하세요”

by 안양교차로 2013.06.28

평균 수명이 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노년이 늘고 있다.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대비하는 이들은 대개 봉사나 취미활동에 눈을 돌린다. 허찬복 씨가 택한 건 노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가꿔주는 ‘실버플래너’였다. 전직 교감이었던 그는 30년 공직생활을 하며 노인세대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고 직접 이 일에 뛰어들었다. 노인들의 이성관계 ,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돌아보는 ‘웰다잉’ 등 그가 강의하는 내용들은 모두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노후설계 지침서’다.
‘웰빙’은 알아도 ‘웰다잉’은 잘 모른다
허찬복 씨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30여 년 동안 교직에 몸담고 있다 지난 99년 교감으로 퇴직했다. 퇴직 전부터 은퇴 이후의 삶을 봉사로 채우리라 결심했던 터라 큰 고민은 하지 않았다. 서울의 종로시니어클럽에서 숲해설가 교육과정을 수료한 그는 2005년 중앙노인회 의왕시지회를 통해 정식으로 숲해설가협회를 만들었다. 관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숲 체험을 지도하고 인솔하는 일이다.
“의왕에서는 모락산을 중심으로 초등학생들에게 숲해설을 하고 있어요. 현재 3팀이 지역별로 나눠서 움직이고 있는데, 일거리도 생기고 운동도 되니까 좋죠.”
주변에서는 그를 일컬어 ‘실버플래너’라고 부른다. 노인들의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요컨대 노후설계 전문가다. 관내 노인정과 복지관의 노인대학을 돌며 노인들에게 레크레이션, 건강체조, 강의 등의 활약을 펼친다. 그중에서 늘 주목 받는 부분은 바로 ‘웰다잉’, 즉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허찬복 씨 강의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상당히 무겁잖아요. 듣는 사람도 ‘저 양반이 와서 뭘 가르치려나’하고 궁금해 하죠. 저는 음복과 유언장에 관한 내용을 설명해줍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나이인데도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에게 유언장을 쓰게 하고 발표하게 하는 것이죠.”
노인들 이성관계, 자식들이 반대해도 되는 건가요?
재미있는 것도 있다. 의왕시 복지관 아름채에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심리극을 펼친다. 주제는 ‘노인들의 이성관계’. 20분가량의 연극은 노년의 만남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세인들에게 눈총 받지 않는 이성관계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등 많은 질문을 던지는데 연극을 관람하는 노인들조차 호기심을 갖고 참여한다고. 허찬복 씨는 연극에서 주연인 ‘김 선생’ 역할을 맡았다. 내용은 이렇다. 퇴직한 김 선생이 어느 날 복지관에서 이 여사를 만나 친분을 쌓게 된다. “날씨도 좋고 식사라도 한 번 합시다”하며 시작된 관계는 어느 덧 깊어지고, 두 사람은 그 관계를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지 알지 못해 갈등을 겪게 된다는 것.
“노인들끼리 문제가 아니죠. 두 사람이 결혼을 할 수도 없고, 자식들이 어떻게 여길지 걱정되는 거예요. 집에 가서 자식들한테 얘기하니 ‘절대 반대다. 만나는 건 좋은데 결혼은 안 된다’는 거예요. 재산문제가 걸려 있는 거죠. 참, 너무 현실적인 내용이라서 연극하면서도 씁쓸했어요(웃음).”
연극을 보는 노인들은 민감한 화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극에 몰입한다. 연극은 따로 결론을 내지 않은 채 문제의 해답을 관객들 몫으로 넘긴다. 허찬복 씨는 “실제로 연극과 같은 사례가 많은데, 본인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토론도 해보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노인 문제에 대해 비로소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노년은 봉사하면서 웃고 즐기는 것
‘웰다잉’을 강의하는 그 역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한 사람이다. 허찬복 씨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노년이란 무엇일까.
“노인이 되면 그저 즐겁게 지내는 게 최고죠. 복지관에 와서 탁구도 치고, 스포츠댄스도 추고, 구구단도 외면서…그런 게 즐거움이죠. 사별한 뒤 혼자 된 노인들은 갑자기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 자칫 잘못하면 자살을 선택할 위험도 있죠. 그걸 방지하기 위해선 노인들끼리 모이는 자리에 가서 즐겁게 지내야 하죠. 저는 복지관이나 노인정이 큰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할 거고….”
허찬복 씨는 앞으로 평균연령이 더 높아지면, 은퇴 이후 제2의, 제3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했다. 그럴수록 더욱 가치 있고 보람찬, 사회에 유익이 되는 일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봉사란 다름 아닌 “노인의 인생을 활기차고 즐겁게 해주는 일”이다.
“가만히 집에 있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봉사를 하면서 내 건강도 챙기고 인생을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누구나 실버플래너, 숲해설가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나이 들어도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봉사를 하면 하루가 짧아요. 저는 젊을 때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하하하.”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