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노인들을 위한 천국이죠. 봉사자가 있으니까요"

의왕보건소 옆에 위치한 노인복지관 '아름채'. 한적하고 아담한 건물 안에는 하루 일과를 함께 나누는 노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숨은 봉사자들이 있다. 다른 노인들과 같은 연배로 얼핏 센터를 이용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만, 말없는 섬김의 손길을 통해 센터를 지켜주는 행복한 봉사자들. 이상순 씨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소수정예 봉사단 '실버플래너'란?
아름채에서 뽑은 소수 정예 노인들은 이른바 '실버플래너'라고 한다. 레크레이션을 비롯해 5가지 파트로 나뉘어 관내 경로당이나 병원 등에서 봉사를 하는 노인봉사단이다. 아름채에서 자체 교육을 거쳐 배출한 봉사요원들인 만큼 면면도 남다르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상순 씨만 해도 그렇다.
"아름채와 바로 옆에 있는 수련관에서 행사가 굉장히 많아요. 방학 때는 아이들 성년식을 해주고 휴가 시즌엔 외국인 관광객들 인솔도 해주죠. 저는 일흔이 넘은 노인이지만 이래 뵈도 아이들 예절교육 담당하는 강사로 통하고 있답니다."
아름채는 이상순 씨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엔 노인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동아리 운영은 물론, 센터 내 휴게실 등도 꽤 잘 갖춰져 있어 경기도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안양에 살던 이상순 씨는 우연한 계기로 아름채 봉사를 시작해 지금은 노인들 도우미 역할로 이름난 유명 봉사자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 교직에 있었어요. 초등학교에서 6년을 일했는데 가정 형편 때문에 퇴직했죠. 그때 경험을 살려서 봉사하고 있는데 참 행복해요. 그렇다고 멀끔하게 강의하는 봉사만 하는 게 아니라, 청소면 청소, 식당 봉사 등등 안 하는 게 없죠. 연령대가 비슷해 봉사해도 부담도 없고 무척 재미있어요. 나이 들면 모든 걸 내려놓게 되니까요(웃음)."

쓸쓸한 노인 마음, 봉사로 채워주고파
아름채 봉사단은 의왕시의 노인 일자리 창출사업과도 연계돼 어떤 이들은 매월 20만 원의 수당을 받고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순 씨가 노인 봉사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젊은 시절,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면서 봉사의 열심을 품어온 그는 남 몰래, 틈틈이 봉사를 해온 세월이 근 30년이 넘는다.
"한 번은 아이들 데리고 공원 나들이 봉사를 갔는데, 벤치에 어떤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앉아 계시더라고요. 이유를 물었더니 말 못할 사정 때문에 집밖을 겉돌게 된 거였어요. 그때 제 나이가 마흔이었는데, 그 이후로 종종 돌봐드리면서 말벗이 되 주곤 했죠. 고부간의 갈등부터 노인들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 슬픈 것 같아요."
'쓸쓸한 노인의 마음을 채워주고 싶다는 것' 이상순 씨가 노인봉사를 하는 이유인 셈이다. 아름채에는 그와 같은 열정을 가진 노인들이 꽤 많다. 난타와 레크레이션, 한국 고전무용 등을 담당하는 예술봉사단은 아름채가 개척한 새로운 봉사영역이다. 실버플래너는 KBS 방송 프로그램인 <언제나 청춘>에 출연한 적도 있다고.
이상순 씨는 봉사단에서 기본 체조 파트를 맡고 있다. 노인들이 레크레이션을 하기 전 기본 몸 풀기를 이끌어주는 일이다. 양치질 할 때 손으로 꼭 잇몸을 닦아주는 것, 눈이 흐릴 때는 안약 대신 세수하면서 헹궈주는 것, 생활 속의 사소한 일이지만 노인들에겐 꽤나 유용한 생활습관인 셈이다. 오랫동안 봉사하면서 레크레이션 자격증도 땄다. 숲해설가 과정도 수료했다. 식사봉사, 발 마사지 등 웬만한 젊은 사람 3인분 몫을 혼자 해내니 누가 그를 노인이라 부를 것인가.

스포츠댄스, 노래교실 참여하며 봉사 배워보세요
"저는 힘든 거 없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뭘. 누가 '이것 좀 해주세요'하면 다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싶어요. 그거 외에 다른 이유는 없어요."
이상순 씨는 봉사를 시작한 이후로 늘 마음이 포근하다고 한다. 그 자신이 건강한 몸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침 9시부터 오후까지 아름채에서 활동하니, 웬만한 직원 못지 않는 것 같다.
이상순 씨는 올해 봉사 폭을 좀 더 넓혔다. 3월부터는 주간보호센터 노인들 휠체어 끌어주는 봉사를 시작할 예정이고, 어르신 영화 관람 안내 봉사도 계획돼 있다. 지난해까지 안마 봉사를 했으니 봉사 분야가 해마다 다양해지는 것이다.
"봉사 계속 하고 싶어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진. 봉사하는 노년이 아름답잖아요. 봉사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들도 많으니까. 저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또래 노인들과 어울리니 축복 받은 거죠."
아름채는 노인들을 위한, 노인들에 의해 운영되는 공간이다. 건강한 노인들이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곳이고, 대개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봉사의 길로 접어든다. 스포츠댄스, 노래교실, 고전무용 등 배울 것도 꽤 많다. 이상순 씨는 봉사하기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우선 프로그램을 들어볼 것을 권한다.
"봉사 오래 하다보면 외로움도 없어져요. 만날 아름채에 있으니 노인들이 '어제는 왜 안 나왔냐'고 걱정도 해주지요(웃음). 봉사하다보면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어지는 것 같아요. 옹졸한 마음도 싹 가시고요. 봉사하시고 싶은 분들은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입니다."
고립되고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작은 쉼터, 아름채에 이상순 씨 같은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한층 더 밝아지는 것은 아닐까.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