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의왕시 동백아파트 이정량 씨 "봉사는 내면의 어둠을 거두는 일이죠"

의왕시 동백아파트 이정량 씨 "봉사는 내면의 어둠을 거두는 일이죠"

by 안양교차로 2013.06.28

맡은 일을 조용히 하지만 은연 중 그 빛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다. 이정량 씨는 "봉사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나서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라는 분명한 원칙을 가진 사람이다. 2003년부터 의왕시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말벗봉사, 식사봉사 등을 꾸준히 해오며 경험을 쌓은 그는 이제 함께 봉사할 친구들을 모으는 중이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에 대한 책임
누군가의 권유로 봉사를 하는 사람은, 비록 타의에 의해 시작한 일이지만 마음속엔 이미 봉사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다. 이정량 씨는 젊은 시절 간호사로 일했다가 결혼 이후 부녀회 회장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발을 넓히기 시작했다. 간호사도 봉사 정신으로 하는 일이라면, 이정량 씨는 애초 봉사하기에 적합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의왕시자원봉사센터 소장님을 통해 봉사를 시작했어요. 정신보건센터와 병원 등지에서 식사 봉사, 호스피스 봉사, 말벗봉사 등을 했죠. 봉사는 꼭 남을 위한 것만은 아니에요.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봉사할 때 약속시간은 꼭 지키려고 해요."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젊은 시절엔 몸이 아팠던 적이 있다. 이유 없이 몸이 붓고 팔 다리가 쑤셔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오갔는데, 결국은 갑상선 문제였다. 하지만 봉사를 시작한 뒤로 몸도 예전보다 가벼워지고 병세도 호전되었다고 한다. 함께 봉사를 받은 친구들과 활동하기 때문에 외로울 틈도 없다.
"노인병동에서 봉사하면서 느끼는 게 참 많죠. 나이를 먹으면 인생에 회의를 느낄 때도 있지만, 치매가 없어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면 참 가슴 아픈 것 같아요."
봉사하면서 듣는 일의 소중함 배워
병원 봉사는 일이 힘들어서인지 그만두는 사람들도 꽤 많다. 젊은 사람들은 개인 사정이나 경제적 여건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도 체력 문제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 처음에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봉사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난 뒤에도 이정량 씨는 꿋꿋하게 봉사를 해왔다. 그러다보니 봉사의 진짜 보람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봉사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활의 만족감이나 행복감이 더 큰 것 같아요. 또 보면 항상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있죠(웃음). 저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보면 참 밝은 사람들이에요. 그러고 보면 봉사는 자기 내면의 어두움과의 싸움인지도 모르겠네요."
동네 부녀회 활동할 때는 주로 말하는 일이 많았지만, 말벗봉사를 시작한 뒤로는 듣는 일의 소중함도 알았단다. 했던 얘기 거듭하는 어르신들이지만, 토라지지 않도록 또 물어봐주고 열심히 들어주는 게 그렇게 중요할 수 없다고. 이정량 씨 자신도 알고 보면, 스스로가 이렇게 봉사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노년에 행복감을 찾으려면, 돈이 있든 없든 건강한 몸으로 타인을 위해 사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인생에서 돈도 물론 있어야 하지만, 진짜 행복을 위해서는 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돈도 벌어야겠지만 그게 우선순위가 될 순 없겠죠.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여유로운 사람들이에요. 제가 원하는 노년이 그래요. 쓸 데 쓰고 즐길 줄 아는 노년."
노년의 진정한 즐거움? 봉사가 보약!
봉사는 한없이 주는 것이다.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물질적으로도 그렇다. 내 몸 갖고 봉사하러 가는데 차비 들어가는 건 당연하지만, 돈 든다는 이유로 봉사를 망설이는 이들이 이정량 씨는 몹시 안타깝다. "그럼 돈 많은 사람만 봉사해야겠네?" 이렇게 묻는 이들에게 그는 또 이렇게 대답해준다.
"봉사는 정말 큰돈을 들여서 한다는 것보다 작은 돈을 들여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내 욕심만 조금 내려놓으면 조금씩 떼어서 남과 나누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솔직히 돈 안 들고 하는 봉사란 없어요. 그렇다고 자선사업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정말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아니고선 누구든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는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봉사를 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 번 돈이 더 귀할 텐데 그 돈으로 아낌없이 주변을 위해 쓴다. 하지만 이건 곧 이정량 씨 자신에 대한 투자라고 믿기에 아깝진 않다고 한다. 불필요한 사치에 돈을 쓰는 것보다, 인생 노년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기 위해선 그의 말마따나 봉사가 정답인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저랑 같이 봉사할 분, 계시면 꼭 연락주세요. 약간의 교통비와 한 끼 식사비, 이거 결국은 나를 위해 쓰는 돈이니까요. 작은 씨앗을 심어서 봉사로 인한 더 큰 만족감을 누린다는 생각으로 봉사 한 번 안 해보실래요?"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