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천국사다리센터 배미향 씨 '봉사하면 행복하냐고요? 이게 최선입니다. 확실해요'

천국사다리센터 배미향 씨 '봉사하면 행복하냐고요? 이게 최선입니다. 확실해요'

by 안양교차로 2013.06.28

"봉사하면 행복하냐고요? 이게 최선입니다. 확실해요"

최근 석수동 월세방에 살던 한 시나리오작가가 숨진 사건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최소한의 생계를 잇는 일조차 어려워하는 이웃들이 많다. 부양가족이 있지만 실질적 경제능력이 없는 차상위 계층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배미향 씨는 가정방문 호스피스 활동을 통해 반찬배달을 하며 이런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봉사를 한다. 그는 석수동에서 작가가 숨진 사건을 듣고 "봉사단의 존재를 알고 도움을 청했다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면서 무척 안타까워했다.
강제 퇴원한 말기암 환자 돌보기,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국내 호스피스 활동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병원 호스피스 활동이고 또 하나는 가정방문 호스피스다. 칭찬릴레이에 소개된 적이 있는 김승주 목사가 전자라면, 배미향 씨는 후자에 속한다. 미국이 체계적인 호스피스 네트워크로 가정방문과 병원 호스피스가 연계된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가정방문 호스피스 활동이 미미한 실정이다.
"한 번은 말기암 환자가 병원에서 강제퇴원을 당한 뒤에 집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아프긴 한데 병원에서도 딱히 해줄 처방이 없고, 게다가 돈이 없으니까 억지로 퇴원을 한 거예요. 아플 때마다 119를 불러서 응급실에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하는데 그야말로 지옥 같은 생활을 하는 거예요. 가정방문 호스피스는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활동이죠."
그는 안양을 거점으로 전국을 종횡무진하며 봉사를 한다. 호스피스 봉사자 단체인 천국사다리센터를 연 뒤에는 전국에 호스피스 센터를 세우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현재 경기도 의정부, 전북 군산 등에서 그의 도움을 얻어 차례로 호스피스 단체가 설립되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한 일이지만,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만의 노하우가 쌓여 호스피스 활동을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빨리 알지 못했을까' 후회된 적이 많아요. 지금보다 젊었을 때 시작했다면 훨씬 힘을 가질 수 있었겠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서류를 만들고 봉사자들을 관리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10년 전, 옥상에 올라가 메트로병원 보며 봉사 결심
천국사다리센터는 현재 안양, 군포, 의왕에서 전문 봉사요원 40명이 흩어져 활동한다. 다음과 네이버 카페를 통해 접수된 사연을 검토한 뒤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면 봉사자들을 배치시킨다. 꼭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환자의 심리적?육체적 안정과 함께 목욕과 청소, 음식배달 등의 지원을 해준다. 음식이나 돈 같은 물질적인 후원은 지역 기관이나 푸드뱅크에서 도움을 받아서 해결한다. 센터에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는 더 큰 기관을 연결해주기도 하니, 안양 지역을 대표할 만한 호스피스 단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가정에 있는 분들은 병원에 있는 환자들과 상태는 똑같은데 서비스는 거의 못 받고 있거든요. 때문에 이들을 찾아가는 도움의 손길이 정말 절실한 상태죠. 국립암센터 자료에 의하면 국내 호스피스 활동이 필요한 환자들 중 절반 가까이가 가정에 방치된 상태라고 해요. 그러니 더욱 사명감을 갖고 일하지 않을 수 없죠(웃음)."
배미향 씨가 10년 전 봉사를 결심한 계기도 역시 매우 극적이다. TV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호스피스 봉사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메트로병원 바로 앞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옥상에 올라가 운동을 하고 있는데 메트로병원 불빛이 유난히 밝게 느껴지더란다. '저곳에서 호스피스 병동이 있을까?' 의문을 갖고 이튿날 병원을 찾았는데 마침 3층에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대표인 김승주 목사의 도움으로 봉사를 시작한 게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치마 대신 청바지 입지만, 봉사가 행복해요
"방문 가정엔 암환자도 있지만 차상위계층 등 독거노인들의 비중도 꽤 많아요. 이들은 서류상으로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에서 제대로 된 혜택을 못 받고 있죠. 이들을 위해 반찬배달을 하고 청소해주는 일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호스피스 봉사는 일반 봉사에 비해 사명감과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배미향 씨는 "암환자의 심리상태를 알지 못하면 봉사하기 어렵다"며 "그분들은 방문을 오히려 꺼리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무작정 달려들기보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봉사 10년차, 득달같이 말리던 남편도 이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정도로 주변에 인정도 받았다. 가장 많이 변한 건 외모라고.
"옛날엔 손톱 기르고 매니큐어 바르고 치마도 입었죠. 보통 엄마들이 좋아하는 걸 한 건데 환자에게 가려면 그렇게 못 하잖아요. 처음엔 재킷 입고 가도 문 앞에서 벗었는데 이젠 아예 편하게 스웨터 입고 가요(웃음). 편안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거죠."
그는 가정방문 호스피스 봉사는 약속이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일이 힘들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으면 오래할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때문에 배미향 씨 또한 주변에 6~7년차 봉사자들에게 "봉사만 하지 말고 취미생활도 많이 하라"고 권한다. 그래야 봉사를 오래, 길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호스피스 봉사하면 무조건 행복해져요. 그렇게 안 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내 환경이 감사하고, 가정이 감사하고 확실히 낮아지게 되니까요. 봉사하면서 불행한 사람 봤어요? 행복하고 싶으면 호스피스 봉사하세요. 그럼 확실히 그렇게 돼요."
호스피스 봉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는데,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배미향 씨는 "암은 우리 가족 중 한 명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호스피스 교육을 배워두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된다"며 "나중에 암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도움 받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봉사에 꼭 나와보시라"고 권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