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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클럽 봉사단 우종만 씨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 봉사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시니어클럽 봉사단 우종만 씨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 봉사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by 안양교차로 2013.06.28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 봉사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시니어클럽 봉사단 우종만 씨
평생을 몸담은 직장에서 퇴직하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인생 2막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누구 못지않게 치밀한 준비와 마음가짐이 있어야만,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된 인생의 노년을 보람되게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봉사가 값진 이유는 타인을 자연스럽게 도우면서도 보람과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종만 씨의 봉사는 이를 자연스럽게 증명해주는 하나의 모범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인생 2막 열어준 '3박 4일의 기적'
2000년 1월, 우종만 씨는 무릎까지 쌓인 눈으로 차량 통행마저 금지된 낯선 마을을 향해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지땀으로 온몸은 흠뻑 젖었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포기할 수 없다'고 이를 악물었다.
한국방송에서 일하던 그는 퇴직 후 10여년의 세월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오면서 살았다. '마음 붙일 데가 이리도 없을까.' 이미 20년이 넘게 호스피스 봉사를 하던 아내는 그에게 퇴직 후 봉사를 권했었다. 우종만 씨는 아내를 존경했지만 봉사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기에 처음엔 주저했다. 무력한 세월이 쏜살같이 흐른 어느 날, 그는 아내를 따라 낯선 꽃동네에 봉사여행을 떠났다.
"돌이켜보면 3박 4일 동안 물만 먹으면서 어떻게 봉사할 수 있었나 아찔해요. 도무지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참여했던 그 일이 제 남은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죠."
2003년, 호스피스 봉사자교육을 이수한 그는 산본에 있는 한 병원에서 목욕봉사를 시작했다. 내 몸을 남의 몸처럼 맡기는 환자들을 씻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두 명을 씻기고 나자 온몸이 쑤셔왔고, 어렵게 씻겨 놓으면 서서 대변을 보는 환자들에게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이상한 건, 그 자신이 땀에 흠뻑 젖어 돌아오는 내내 남모를 희열과 벅차오르는 기쁨이 가슴 한가득 밀려오곤 했다는 것이다.
생은 뿌린 만큼 돌아온다…남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봉사를 계속 하면서 제가 가진 재능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더군요.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던 터라 오금정보화마을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강의를 했죠."
이후 우종만 씨는 봉사단체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봉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시니어클럽에서 노인의 사회인식과 참여를 조사하는 동안엔 노인들의 숨겨진 삶의 애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노인은 그저 주변 환경에 쓸쓸하게 묻히고, 그들 스스로가 쓸쓸함을 먼저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어 마음 한 구석이 내내 착잡했다고 한다.
이후 노인전문요양시설에서 발 마사지 봉사를 3년 넘게 해오는 동안, 그는 노년의 고독감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개 경제적으로 무력한데다, 자신감까지 상실한 노인들은 늘 현실의 뒷전에서 무료한 시간만 보내기 일쑤였다.
"왜 그 분들이라고 드라마틱한 인생이 없었겠습니까. 시니어클럽에서 기자단으로 일하면서 여러 분들을 인터뷰하는 동안 참 많은 걸 느꼈죠. 불치의 병으로 다리를 잃고 한이 맺혀 사는 할머니, 젊은 시절 휘황찬란했지만 목소리를 잃어버리신 어르신…. 모두 젊을 땐 내로라하는 거목들이었을 텐데 무상한 세월과 함께 모두 지나가버린 겁니다."
하지만 그는 인연이란 참 오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안 볼 것 같은 사람들 피할 수 없는 자리에서 만나거나, 보잘 것 없는 친절이 큰 축복으로 이어지는 걸 그 자신이 봉사를 통해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봉사가 그에게 가르쳐준 건, 인생은 뿌린 만큼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남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아름답다는 것.
봉사의 삶으로 실버의 표본이 되고 싶다
"방송국 근무 경력에 전문대 그래픽디자인강사 자격으로 어느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노년에 참 운이 좋아서 월급도 통장에 따박 따박 들어오고 행복했죠. 그런데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사장이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늙은 제가 젊은이들의 앞길을 위해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지금은 오직 봉사에만 전념하고 있어요. 이게 훨씬 더 행복해요(웃음)."
세월 따라 늙는 걸 어쩌겠는가. 그는 젊음의 열정과 재치에 견줄 순 없지만, 오랜 세월 숙성된 된장 같은 구수함이야말로 봉사에 적격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실버의 표본으로 남고 싶다는 우종만 씨. 내 맘 같지 않은 삶이지만, 함께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노인의 편견을 허물고 봉사하는 '인생 2막의 아름다운 변신'을 그는 날마다 꿈꾸고 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