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오금정보화마을 심윤근 씨 '아름다운 노년을 완성하는 마지막 매듭은 봉사'

오금정보화마을 심윤근 씨 '아름다운 노년을 완성하는 마지막 매듭은 봉사'

by 안양교차로 2013.06.28

"아름다운 노년을 완성하는 마지막 매듭은 봉사"
-오금정보화마을 심윤근 씨
정부에서 진행하는 정보화마을 사업이라는 게 있다. 대개 농촌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자기계발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노인들도 꽤 많다. 군포시 오금동에 있는 율곡아파트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일들을 해왔다. 이곳 오금정보화마을의 교육부장을 맡고 있는 심윤근 씨는 디지털 가족앨범 제작, UCC 동호회 등을 주도하며 '컴퓨터 전도사'로 불리고 있다.
독학으로 배운 컴퓨터, 이젠 남을 위해 봉사할 차례
1936년생, 충남 보령시 대천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생 때 6.25를 겪었다. 평소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전쟁 당시 미군들이 갖고 다니던 '달러 카메라'를 얻어 촬영을 하곤 했다. 그는 집에서 암실을 만들어 놓고 직접 현상할 만큼 유난했다. 86년도엔 당시 1백만 원을 호가하던 286컴퓨터를 선뜻 구입했다. PC통신을 배우고 MS-DOS를 배우며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컴퓨터를 붙들고 늘어질 정도로 오기가 있었다. 용산 전자상가에 가서 어깨 너머로 컴퓨터 수리기술을 배운 적도 있다.
퇴직 전 그의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평소 전산 관련 부서에 일하며 컴퓨터 쓸 일이 많았던 그는 누구보다 먼저 소프트웨어를 배웠고, 부서 내 소식지를 직접 만들 정도로 역량이 뛰어났다. 97년 정년퇴임을 한 뒤에는 2년 동안 한글사랑회 등 인터넷 동호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안철수를 비롯해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인물들과 서슴없이 교류하던 그는 "이제 나는 봉사를 할 나이"라는 생각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 봉사를 시작했다.
"저는 컴퓨터를 독학으로 배웠어요. 평생을 공무원으로 녹을 먹었으니, 봉사를 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죠. 내가 가진 재주라곤 컴퓨터밖에 없더라고(웃음). 율곡아파트에서 노인들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시작한 게 국가에서 인정을 해줄 만큼 많이 성장한 것이죠."
영정사진 촬영 봉사에서 단편영화 출연까지
시에서 인정받기 전까지 교재를 만들고, 전기세를 내는 온갖 비용은 자비로 댔다. 그는 아파트 단지 내 작은 공간을 마련해 노인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심윤근 씨가 생각했던 건 누구나 갖고 있는 '가족앨범'이었다.
"이게 옛날엔 보물이지만 지금은 애물단지죠. 이걸 어떻게 생산적으로 바꿀 것인가, 그 고민에서 비롯된 게 바로 디지털 앨범입니다. 노인들이 갖고 있는 가족앨범 사진을 CD에 담는 교육을 시작했어요. CD 한 장에 10권 이상 들어가니 다들 신기해하지요."
사진이 자동으로 재생되면서 음악도 나오게 하는 일은, 젊은 사람들에겐 쉽지만 노인들에겐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다. 심윤근 씨는 컴퓨터로 사진이나 자료들을 디지털화하는 '가공처리' 작업이 요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집에 있는 재료로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것처럼 컴퓨터 작업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는 2003년부터 영정사진을 촬영해주는 봉사도 하고 있다. 관내 각종 행사를 취재해 사진 앨범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컴퓨터와 영상에 관한 봉사라면 주저 없이 나서고 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하니, 이곳저곳에서 관심도 받고 있다. KBS 등 방송에서 7번이나 나왔고, 홈페이지 경연대회 입상을 포함해 각종 표창도 일곱 차례나 수상했다. 120여 명의 수강생들과 UCC동호회를 만들고, 2009년에는 군포문화원에서 주최한 '군포설화 감투봉 명당싸움' 단편 영화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컴퓨터 할 줄 아는 노인들, 할 일이 왜 없겠어요?
"컴퓨터로 노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사실 우린 정보화마을과 달리 교육뿐 아니라 생산적인 일을 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컴퓨터와 영상을 활용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는데 시에서 디지털 영상 제작이나 컴퓨터 작업을 거들 일이 참 많아요. 그 일에 교육 받은 노인들이 나설 수 있다면 참 보람 있는 일 아니겠어요?"
군포에서 그를 모르는 노인이 있을까. '명품노년'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노(老)클럽'을 만들어 운영하는 심윤근 씨는 누구보다 부지런한 사람이다. 나이 들었다고 자기계발을 포기하지 않는 것. 놀거나 쉬지 않고 공부를 하고 술 먹는 일을 줄이면 소프트웨어에 투자할 수 있다. 운전을 하는 대신 지하철 안에서 신문과 책을 본다. 요즘 젊은이로 치자면 취미생활에 관심이 많은 '초식남'이랄까. 만약 봉사가 없었다면, 자기 취미로 다른 사람과 함께 행복한 노년을 만들 수 없을 거라고 말하는 심윤근 씨.
"인생을 아름답게 늙으려면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건강이요, 둘째는 돈이고, 셋째는 할 일입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돈이 많아도 할 일이 없으면 노년이 추해져요. 저는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며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살았고, 그래서 건강하고 비교적 여유로운 편입니다. 그러니 남을 돕겠다는 여유도 생긴 거겠죠. 봉사가 아름다운 노년을 완성하는 마지막 매듭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고, 8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난방시설과 영상 관련 장비들이 갖춰지게 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아이처럼 웃는 심윤근 씨. 그를 보면서 의식하지 않는 봉사야말로 추진력 있고 마음 상하지 않게 일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배움을 얻게 된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