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안양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 박성진 씨 "손주 잘 보는 법, 아름답게 늙는 법…다 봉사에서 배웠죠"

안양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 박성진 씨 "손주 잘 보는 법, 아름답게 늙는 법…다 봉사에서 배웠죠"

by 안양교차로 2013.06.28

박성진 씨는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청소년상담분과위원을 맡고 있다. 몹시 무게 있는 일 같지만 실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청소년을 엄마처럼 상담해주는 것이다. 고등학교 어머니회장 몫으로 추천받았는데 6명 중 2명을 뽑은 자리에 들어서 14년 동안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녀를 키워본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외려 배우는 게 많았다고.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사 먹이는 엄마에서, 아이들의 진로를 도와주면서 그는 참 많이 변했다.
'어차피 버린 몸'이라 하는 아이들에게 "네 인생 안 끝났다"
"처음엔 무서웠어요. 포승에 묶여 나온 아이에게 상담을 하라니, 겁이 덜컥 난 거죠. 아무런 전문 지식이 없는데 잘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어요."
청소년 범죄라는 게 오토바이 절도나 폭행, 절도 등 어른 뺨치는 사례도 많다. 박성진 씨는 그중 집행유예를 받은 청소년들의 계도 활동을 돕는 일을 한다. 담당 검사는 "이분 말 잘 안 들으면 너 감방 갈 줄 알아라"하고 아이를 넘겨줬다. 박성진 씨는 어떻게 다뤄야할지 망설이다가, 손을 잡고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정신없이 햄버거를 먹는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와 소통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아이는 처음에 수퍼마켓에서 장난삼아서 물건을 훔쳤대요. 그런데 사장님이 얘가 상습범인줄 알고 범죄를 뿌리 뽑겠다면서 경찰에 넘긴 거예요. 풀려난 뒤에도 '누가 나를 인정해주겠어?'하고 범죄를 계속해요. 그러다보면 정말 중범죄자가 되고 '어차피 버린 몸'이라면서 인생을 막 살기 시작하죠."
탈선한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의문점이 들기도 했단다. 성관계서 비롯된 잘못을 타일러야 하지만, 막상 상담을 하다 보니 "다음부턴 꼭 피임해라" 하는 식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줘야 했던 것이다. 범죄를 선도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에게서 배웠던 셈이다. 전문지식의 공백을 사랑으로 채우겠다는 그의 노력은 검찰청장과 법무부장관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시급 7만원보다 자유로운 봉사가 더 좋아요"
봉사 덕분에 그는 만학도로 대학에도 갔다. 대림대 아동보육과를 전공하는 그는 2009년 2월 성결대학교에 편입했다. 처음엔 청소년과 아동 문제에 대한 관심이었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사회복지 전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행정학과 사회복지를 복수전공하고 올해 늦깎이 대학생으로 졸업을 했다.
현재는 청소년분과위원 봉사를 하면서 관내 어린이집에서 동화구연을 해주고, 만안구노인보건센터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웃음치료와 체조강사로 봉사를 한다. 누군가는 "대학도 졸업했는데 직장 잡아서 일해도 되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봉사로 하는 것과 돈 받고 하는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돈이 더 좋은 것 같지만 그게 단순하지 않다. 돈 받고 하는 일은 마음껏 하지 못하고 일에 얽매이기 때문이란다.
한 번은 센터 측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담당 직원이 "강의를 하셔야 할 분이 여기서 이렇게 봉사만 하고 있으면 어떻하냐"면서 웃음치료사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단다. 1시간에 7만원. 시급으로 따지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돈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닌 만큼 발이 묶이지 않았다고. 박성진 씨는 돈을 주는 곳보다 자신을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이 나이에 무슨 떼 돈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편하게 활동하는 게 홀가분해요.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특히 봉사는 부담을 느끼고 억압되면 일이 잘 안 되거든요."
"남편과 아이들도 내 모습에 변해…봉사는 대학보다 값진 평생학습"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박성진 씨가 봉사를 하고 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건 남편과 가족들의 지원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런 후원을 받으려면 내가 10배 정돈 노력해야 한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봉사 다닌다고 후줄근하게 다니지 않고, 때마다 화장하고 옷 잘 차려입고 다녀서 주변에서 '만날 화장하고 다니는 여자'란 별명이 붙을 정도. 남편과 가족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얕잡아 보이지 않도록,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집안일도 아이들 교육도 결코 대충 해본 적이 없다.
"아침에 봉사 가기 전에 와이셔츠 3개쯤은 다려놓고 가요. 남편한테는 '여보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은데 미안해요. 이렇게 준비해두었으니 챙겨 드시고, 퇴근하면 아이들 숙제 좀 봐 주세요' 쪽지 써서 양말에 곱게 끼워두죠. 남편은 여자 하는 일에 결코 거저 협조 안 해요. 저는 봉사를 하는 점이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자랑스러운 일이 되도록 하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다. 봉사 하는 엄마 본을 받아 아이들도 학생회장을 연달아 했고, 남편과는 시에서 주최하는 '부부 김치 담그기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가화만사성, 어쩌면 박성진 씨는 봉사를 통해 평안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비결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봉사란 '지혜가 솟는 샘'이다. 다방면의 봉사를 하는 동안 그 자신 주부로 살았다면 알지 못했을 여러 가지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고. 어르신들을 보며 10년 뒤 나의 모습을, 어린이집 아이들을 보며 손주 잘 보는 방법을, 동료 봉사자들을 보면서는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박성진 씨는 "자원봉사는 대학보다도 값진 평생학습이라고 생각한다"며 "수혜 받는 사람에게 내가 받는 가치를 생각하면 자원봉사는 해도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