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파마 헤어 김경숙 원장> ˝제 얼굴보면 '봉사전도사' 같대요˝
<미스파마 헤어 김경숙 원장> ˝제 얼굴보면 '봉사전도사' 같대요˝
by 안양교차로 2013.06.28
"제 얼굴 보면 '봉사전도사' 같대요"
안양 중앙시장 성당사거리에 위치한 미스파마 헤어는 10평 남짓한 작은 가게지만 생긴 지는 30년이 넘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김경숙 원장이 손님 퍼머를 해주고 있었다. 10년 된 단골이라고 했다. "봉사 갈 때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외출' 붙여놓고 나갔다 오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오후엔 손님 안 받기로 했으니까요." 그는 인근 중앙시장 상인들은 물론 옆 동네인 안양5동에서도 암암리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오는 손님들과 동료 상인들에게 봉사를 적극적으로 '전도'한다.
안양 중앙시장 성당사거리에 위치한 미스파마 헤어는 10평 남짓한 작은 가게지만 생긴 지는 30년이 넘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김경숙 원장이 손님 퍼머를 해주고 있었다. 10년 된 단골이라고 했다. "봉사 갈 때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외출' 붙여놓고 나갔다 오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오후엔 손님 안 받기로 했으니까요." 그는 인근 중앙시장 상인들은 물론 옆 동네인 안양5동에서도 암암리에 '봉사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오는 손님들과 동료 상인들에게 봉사를 적극적으로 '전도'한다.
"지역 어르신들 위해 15년째 무료로 커트"
"미용은 결혼하기 직전에 배웠어요. 왜 '직전'이냐고요? 저는 고생을 모르고 살았어요. 남편이 처음 유한양행에 들어갔을 땐 영업사원이었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남편 기대하고 살다간 먹고 살기 힘들겠더라고요(웃음). 오는 손님들은 최소가 10년 단골이고 대부분 15년 20년 그렇죠. 지금은 돈을 번다기보다 일을 한다는 자체에서 보람을 많이 느끼죠."
김경숙 원장은 드러내놓고 봉사하길 꺼려하는 사람이다. 처음엔 일을 하면서 틈틈이 가톨릭 단체에 미용 봉사를 가거나 보육원에 말없이 후원금을 내는 정도였다. 미용봉사도 가진 기술을 활용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라고. 어느 날엔가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돈이 별로 없으니 그냥 조금만 잘라 달라"고 해서 자리에 앉혀서 커트를 해줬다. 돈은 받지 않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안양4동 어르신은 물론 옆 동네인 5동에 사는 어르신들이 커트를 해달라고 미용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잘라드렸죠. 요즘은 하루에 2~3명씩 오시면 무료로 커트를 해드려요."
여름휴가 반납하고 진도에 미용봉사, "봉사할 시간이 부족해요"
소문은 건너 건너 주민센터에게까지 닿았다. 담당 공무원이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도 커트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전화를 걸어 왔다. 어르신들을 포함해 무료로 커트를 해줘야 할 인원이 부쩍 늘었지만 김경숙 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민센터에서 장부를 따로 적으라고 줬는데 그것조차 내키지 않았다고. 그저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한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힘이 닿는 데까지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네에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손님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들었기 때문인지도.
"단골들이 많으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사는 내막 같은 건 서로 다 알게 되니까요. 누가 30년을 어떻게 한 자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했냐고 물으면 저는 '미용은 인간관계다'라고 말을 해요. 제가 살아보니까 기술도 기술이지만, 손님들을 이해해주고 말을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사실, 뭐 '내가 저 분을 커트해줘야겠다' 마음먹으면 끝도 없죠.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해드리는 게 죄송할 뿐이죠."
김경숙 원장은 매년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교회 식구들과 진도에 4박 5일 동안 봉사를 다녀온다. 각 분야의 봉사자들이 팀을 이뤄서 진도 곳곳을 돌아다니는데, 그는 어르신들 퍼머와 커트를 맡고 있다. 팔십이 넘은 노인들에게 퍼머를 해주고 나면,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이 주머니에서 나올 때도 있다. 어떨 땐 결혼이주여성이 음료수 사드시라면서 돈을 넣어준다. 그 돈은 떠나기 전 이장이나 다른 이들에게 되돌려주고 온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단다.
"미용은 결혼하기 직전에 배웠어요. 왜 '직전'이냐고요? 저는 고생을 모르고 살았어요. 남편이 처음 유한양행에 들어갔을 땐 영업사원이었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남편 기대하고 살다간 먹고 살기 힘들겠더라고요(웃음). 오는 손님들은 최소가 10년 단골이고 대부분 15년 20년 그렇죠. 지금은 돈을 번다기보다 일을 한다는 자체에서 보람을 많이 느끼죠."
김경숙 원장은 드러내놓고 봉사하길 꺼려하는 사람이다. 처음엔 일을 하면서 틈틈이 가톨릭 단체에 미용 봉사를 가거나 보육원에 말없이 후원금을 내는 정도였다. 미용봉사도 가진 기술을 활용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라고. 어느 날엔가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돈이 별로 없으니 그냥 조금만 잘라 달라"고 해서 자리에 앉혀서 커트를 해줬다. 돈은 받지 않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안양4동 어르신은 물론 옆 동네인 5동에 사는 어르신들이 커트를 해달라고 미용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잘라드렸죠. 요즘은 하루에 2~3명씩 오시면 무료로 커트를 해드려요."
여름휴가 반납하고 진도에 미용봉사, "봉사할 시간이 부족해요"
소문은 건너 건너 주민센터에게까지 닿았다. 담당 공무원이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도 커트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전화를 걸어 왔다. 어르신들을 포함해 무료로 커트를 해줘야 할 인원이 부쩍 늘었지만 김경숙 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민센터에서 장부를 따로 적으라고 줬는데 그것조차 내키지 않았다고. 그저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한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힘이 닿는 데까지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네에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손님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들었기 때문인지도.
"단골들이 많으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사는 내막 같은 건 서로 다 알게 되니까요. 누가 30년을 어떻게 한 자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했냐고 물으면 저는 '미용은 인간관계다'라고 말을 해요. 제가 살아보니까 기술도 기술이지만, 손님들을 이해해주고 말을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사실, 뭐 '내가 저 분을 커트해줘야겠다' 마음먹으면 끝도 없죠.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해드리는 게 죄송할 뿐이죠."
김경숙 원장은 매년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교회 식구들과 진도에 4박 5일 동안 봉사를 다녀온다. 각 분야의 봉사자들이 팀을 이뤄서 진도 곳곳을 돌아다니는데, 그는 어르신들 퍼머와 커트를 맡고 있다. 팔십이 넘은 노인들에게 퍼머를 해주고 나면,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이 주머니에서 나올 때도 있다. 어떨 땐 결혼이주여성이 음료수 사드시라면서 돈을 넣어준다. 그 돈은 떠나기 전 이장이나 다른 이들에게 되돌려주고 온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단다.
봉사한 뒤부터 사진 찍으면 웃는 얼굴…봉사 때문에 삶의 만족 느껴
김경숙 원장에겐 이따금 '긴급 호출'이 온다. 메트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커트를 해주러 가는 것. 환자들 입장에선 죽음을 앞두고 일종의 '마음의 변화'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암 병동이니 만큼 보람보다는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커트해주러 가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태반이고, 이전에 커트를 해준 환자의 침대가 비어있을 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봐서 인지, 봉사하면서 팔이 쑤시고 아픈 건 누구한테 말도 못 꺼낼 일이란다. 김경숙 원장은 그저 자신이 현재 건강한 몸으로 봉사를 하고, 교회에 나가고, 자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봉사하면서 삶의 질이 달라졌죠. 예전엔 사진 찍으면 얼굴이 되게 어둡게 나왔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죠. 남편도 '당신 예전 사진과 확연하게 다르다'고 말할 정도니까요(웃음). 봉사하면서 여유로워졌어요. 이 나이에 이만큼 누리고 있으면 굉장히 좋은 거죠. 누구한테 작은 부분이라도 봉사한다는 건 정말 좋은 거예요. 아무런 보상 없고 정말 아무 것도 없지만, 돌아서서 내가 받는 보상은 엄청난 것이거든요."
김경숙 원장은 그렇게 좋은 봉사를 주변에 알리기 위해 작은 봉사부터 실천할 것을 권유한다. 중앙시장 상인은 물론 미용실에 오는 손님들에게도 호스피스 교육 신청용지를 보여준다. 알고 보니 지난 8월에 기사가 나간 윤주섭 씨도 그가 권유해서 봉사를 시작한 경우라고. 곳곳에 뿌려진 봉사의 씨앗은 이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김경숙 원장은 꼭 몸으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도, 소액의 후원을 통해서도 어려운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저는 노래방을 하면서 힘들게 사는 윤주섭 씨가 선뜻 봉사에 참여하는 걸 보면서 오히려 힘을 받았어요. 그 언니 안지도 벌써 10년이 다 됐네요. 없이 사는 사람들이 소액을 자동이체 하거나 후원금을 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이 크죠. 봉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조금만 신경 쓰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취재 오혜교 기자
김경숙 원장에겐 이따금 '긴급 호출'이 온다. 메트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커트를 해주러 가는 것. 환자들 입장에선 죽음을 앞두고 일종의 '마음의 변화'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암 병동이니 만큼 보람보다는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커트해주러 가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태반이고, 이전에 커트를 해준 환자의 침대가 비어있을 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봐서 인지, 봉사하면서 팔이 쑤시고 아픈 건 누구한테 말도 못 꺼낼 일이란다. 김경숙 원장은 그저 자신이 현재 건강한 몸으로 봉사를 하고, 교회에 나가고, 자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봉사하면서 삶의 질이 달라졌죠. 예전엔 사진 찍으면 얼굴이 되게 어둡게 나왔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죠. 남편도 '당신 예전 사진과 확연하게 다르다'고 말할 정도니까요(웃음). 봉사하면서 여유로워졌어요. 이 나이에 이만큼 누리고 있으면 굉장히 좋은 거죠. 누구한테 작은 부분이라도 봉사한다는 건 정말 좋은 거예요. 아무런 보상 없고 정말 아무 것도 없지만, 돌아서서 내가 받는 보상은 엄청난 것이거든요."
김경숙 원장은 그렇게 좋은 봉사를 주변에 알리기 위해 작은 봉사부터 실천할 것을 권유한다. 중앙시장 상인은 물론 미용실에 오는 손님들에게도 호스피스 교육 신청용지를 보여준다. 알고 보니 지난 8월에 기사가 나간 윤주섭 씨도 그가 권유해서 봉사를 시작한 경우라고. 곳곳에 뿌려진 봉사의 씨앗은 이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김경숙 원장은 꼭 몸으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도, 소액의 후원을 통해서도 어려운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저는 노래방을 하면서 힘들게 사는 윤주섭 씨가 선뜻 봉사에 참여하는 걸 보면서 오히려 힘을 받았어요. 그 언니 안지도 벌써 10년이 다 됐네요. 없이 사는 사람들이 소액을 자동이체 하거나 후원금을 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이 크죠. 봉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조금만 신경 쓰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취재 오혜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