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안양호스피스선교회 김승주 목사> ˝암 환자 돌보면 내 삶도 대충 살 수 없죠˝

<안양호스피스선교회 김승주 목사> ˝암 환자 돌보면 내 삶도 대충 살 수 없죠˝

by 안양교차로 2013.06.28

"암 환자 돌보면 내 삶도 대충 살 수 없죠"

김승주 목사는 안양호스피스선교회 팀장을 맡고 있다. 길어야 서너 달, 죽음을 목전에 둔 채 목석처럼 누워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두고 그는 '짐을 나눠지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죽음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호스피스의 개념이 여전히 낯선 우리나라에선 호스피스란 숨겨야 할 치부처럼 여겨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충격을 완화하고 건너편 죽음의 길까지 동행하며 마음을 나누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것 못지않게 귀한 것이다. "호스피스를 통해 봉사자들은 인생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는다"고 말하는 김승주 목사의 아름다운 봉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비지향적 삶에서 생산적인 삶으로
김승주 목사는 원래 관양동의 참빛교회를 담임하던 평범한 목사였다. 87년도에 처음 교회를 개척해 청년들과 학생들의 부흥을 이뤄낸 그는 90년부터 본격적인 호스피스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종교기관으로서 교회의 사회적 역할 차원에서 봉사를 했던 것이 그에게 각별하게 다가온 것은 몇 년이 지난 뒤였다. 학생들에게 목회를 하면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을 직접 받은 그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고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학생들에게 교육과정 학비를 대주면서까지 봉사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고.
"3개월 과정인데 학생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봉사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함께 걸어가고 있죠. 호스피스 활동엔 봉사자로서의 섬김의 의미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이해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색다른 경험이 숨겨져 있습니다."
김승주 목사의 인생이 바뀐 건 지난 80년 10월, 그의 나이 35살 때의 일이었다. 신아화학공업주식회사의 총무과장으로 일했던 그는 젊은 날 누구 못지않게 물질적 부유와 성공에 탐닉했다.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지극히 소비지향적인 삶"을 살았다던 그는 아내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서 결국 목사까지 됐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었죠. 소비지향적 삶이라는 게…. 뚜렷한 가치관이 없었고 삶을 그냥 본능적으로만 살았죠. 나머지 인생만큼은 정말 생산적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무엇보다 후세대 아이들에게 좀 더 제대로 된 인생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죠. 섬김의 삶은 말로만 해서 실천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중년 넘긴 봉사자들, 환자 돌보며 인생의 가치 돌아봐
98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샘물호스피스에서 학생들과 자원봉사를 하고 있을 때 안양 메트로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병원 호스피스 병동을 직접 맡아달라는 거였다. 김승주 목사는 처음에 거절했다. 자신의 소임은 목회고, 순수한 봉사가 아닌 전문 경영은 자기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엔 호스피스의 개념이 정립되지 못했던 때라 그의 역할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결국 김승주 목사는 '이것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다'라는 마음으로 98년 6월 안양호스피스선교회를 정식으로 설립하고 메트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됐다.
"호스피스는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나눠지자는 운동입니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남은 생존기간이 6개월 미만인 환자들이 해당되는데 대개 암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들은 무기력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호스피스 봉사자들을 통해 종교적 힘을 얻고 죽음을 돌파해 주어진 현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벌써 햇수로만 13년째, 그동안 김승주 목사와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손길을 거친 환자만도 1700여명에 이른다. 그동안 24기 호스피소 봉사자들이 배출돼 현재 호스피스선교회에 등록된 봉사자수는 약 2천여명 정도. 봉사자들은 의료적 치료 외의 사회적 돌봄, 경제적 돌봄 등 환자의 심리적.정서적 활동을 위한 모든 일들을 지원한다. 대부분 중년을 넘긴 봉사자들은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신이 직접 미래의 죽음을 준비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봉사자나 환자나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겁니다. 거기엔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 뿐이죠. 봉사자들 중엔 도중에 암에 걸려서 다른 봉사자들의 손길을 받다가 돌아가신 분도 계세요. 여기 있는 저도 언젠간 그런 처지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될 테니까요. 때문에 봉사자들은 모두 한 가족 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돌봅니다. '빚 진자의 마음'을 갖고 겸손해지는 것이죠."
암 환자들 위한 쉼터 마련…심신 평안 누리는 모습에 큰 보람
김승주 목사는 심지어 가족들마저 돌보기 어려운 암 환자들을 수용하는 쉼터시설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아내와 함께 산다. 쉼터는 호스피스선교회를 후원하는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지었다. 아침에 병원에서 예배를 보고 환자들을 돌보다가, 오후엔 쉼터에 머무는 환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쉼터엔 주로 암 선고를 받았지만 거동이 자유로운 이들이 심신의 평안을 찾는 공간이다. 메트로병원의 주치의가 매주 쉼터를 다녀간다. 그러다 주사를 맞고 입원할 상황이 되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주는 것이다.
"목욕이나 이발을 해주고…. 웃음치료도 해주고 있죠. 예배를 함께 드리다보면 다들 눈가에 눈물이 맺혀요. '감사하다고, 덕분에 마음이 평안해졌다고. 죽음이 조금 덜 두렵게 되었다'고 고마워하는 것이죠. 그럴 때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인간은 전인적 존재예요. 육체적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영혼까지 죽는 건 아니니까요. 호스피스 봉사자들 덕분에 환자들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는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적극적 의료행위를 중단했다고 해서 환자의 삶이 끝난 건 아닌 것이다. 그들 또한 인간답게 자신의 죽음을 존엄하게 받아들일 권리가 있고,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 싸울 자격이 있다. 김승주 목사는 아울러 중년을 넘긴 여성들은 반드시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누구든지 자기 인생에 죽음만큼 중요한 주제는 없는데 아무런 준비가 없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호스피스 봉사를 온 분들은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란 걸 인식하고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게 되죠. 죽음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은 결코 대충대충 살 수 없을 겁니다.(웃음)"
취재 오혜교 기자